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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기도가 있는 휴일 새벽/시 장지원

노파 2023. 11. 19. 08:17

 

기도가 있는 휴일 새벽

장지원

 

 

경인년庚寅年 그날 새벽

평온한 일상의 일과표에 등잔불을 밝히는 시간

침침한 눈앞에서 등잔불이 흔들린다

신이 주신 이 하루의 일과표가 바람에 날려 마당에 내동댕이쳐진다

그 위로 장마전선은 기운을 당겨 비를 뿌린다

시작도 못 한 일과표에 잉크가 퍼렇게 번진다

백두대간의 등 굽은 허리가 눈에 어른거린다

새벽의 싸늘한 기운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1950년 6월 25일 새벽

휴일 새벽 3.8선 철조망 위에서 여명이 요동친다

새벽안개가 용트림한다

초롱초롱하던 천진한 눈망울에 태양마저 불안한 심기를 드러낸다

이 땅을 노리는 악마의 저주가 지경을 넘는 시각

6월의 싱그러움이 아련한 추억 속으로 사라지는 순간

두려움과 공포만이 이 땅에 있을 뿐, 그 누구도 참담한 현실 앞에 사시나무가 된다

 

놀라운 사실은 상황극도 아니면서 눈을 의심케 하는 행동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준비했는지도 모를 인공기의 등장

우리를 속이고 기만한 이념의 가치를 앞세우는 파렴치한 무리

그들이 우리 가운데서 잡초처럼 자라고 있었으니 통탄할 노릇이 아닌가

6월의 빗물에 씻겨나가는 수많은 젊음의 피,

무고한 사람들의 넋이 흙 속으로 잦아들 뿐, ……

단적인 교훈을 남기는 전쟁의 아픔을 맨몸으로 맞닥뜨려야 했다

 

73년이 지난 오늘

그 악의 그루터기에서 돋아나는 움, 감춰진 싹들 사이 이 강산은 여상히 푸른 것 같다

가을이 되어도, 겨울이 되어도 내놓고 사는 그들이 싫다

허약한 나무는 자신의 자리를 내어주게 되고,

나약한 사람 역시 지경을 지키지 못하여 터전을 빼앗긴다

끝나지 않은 이 땅의 전쟁,

그 피해자는 누군가?

그 수혜자는 누군가?

이 나라는 우리가 지켜야 하지 않을까? 묻고 싶은 기도

 

2023.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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