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파의문학공간

https://tank153.tistory.com/

노파의문학공간

테마

소크라테스를 죽게 한 궤변론

노파 2020. 6. 6. 13:20

소크라테스 죽게 한 궤변론

[중앙일보] 2020.05.23. 11:00 윤석만 기자/일부,캡쳐한 글

 

-소크라테스의 독배

 

 

이제 각자의 길을 떠나자. 나는 죽기 위해, 여러분은 살기 위해. 어디가 옳은지는 오직 신만이 알 것이다.”

 

기원전 399년 아테네 재판정의 한 노인은 이 같은 말을 남긴 채 독배를 들었습니다. 배심원 500명 중 280명이 첫 평결에서 유죄를, 360명이 다음 평결에서 사형을 언도했기 때문입니다. 신에 대한 불경 및 청년들을 타락시켰다는 프레임이 씌어졌죠. 훗날 플라톤의 표현대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이는 소크라테스였습니다.

 

이날 재판은 젊은 시인 멜레토스의 고발로 열렸습니다. 배후는 30인 참주정을 무너뜨린 민주정의 권력자 아뉘토스였고요. 정치적 반대파인 소크라테스를 제거하려던 의도였습니다. 시민들은 아뉘토스가 퍼뜨린 ‘가짜뉴스’를 진실로 생각해 ‘불경’이라는 추상적 죄목으로 사형을 내렸죠.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오래전부터 거짓으로 고발돼 왔다. 그러나 정말 위험한 것은 거짓말로 여러분을 사로잡고, 있지도 않은 죄로 나를 비난한 사람들이다. (거짓 고발이기 때문에) 그림자와 싸워야 하고 대답할 자가 없는 상태에서 논박해야 한다. 내가 파멸 당하면 그것은 비방 때문이며, 앞으로 더 많은 선량한 사람을 죽게 할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변론』)

 

-유죄도 무죄로 만들던 궤변론자

 

스승의 죽음을 지켜본 28세의 청년 플라톤은 어리석은 대중을 증오하게 됩니다. 훗날 그가 민주주의를 중우정치로 비판하고 ‘철인정치’를 내세우게 된 결정적 사건이었죠. 그리스 고전의 권위자인 서울대 인문학연구원의 김헌 교수는 “시민이 지성과 인격 모두 합당한 자질을 갖출 때 민주주의가 가능하다는 게 플라톤의 생각이었다”며 “모두의 권리를 존중하는 것과 모두가 권력 주체가 되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말합니다.

 

소크라테스가 죽고 14년 뒤(기원전 385년) 크세노폰은 『소크라테스 회상록』에서 무죄를 규명합니다. “그가 불경한 짓이나 말을 하는 것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청년들에게도 솔선수범을 보이며 스스로 희망을 품게 했다, 그런 그가 어떻게 젊은이들을 타락시키겠는가?”

 

당시 아테네는 직접민주주의로 의사결정을 내렸습니다. 의회·행정·사법의 3권이 모두 시민들의 아고라에 있었죠. 그런 이유로 대중을 설득하는 ‘수사학’이 발달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시민이 이성적이고 논리적이진 않았습니다. 그 때문에 궤변론자로 불린 일부 소피스트는 돈만 주면 공공연히 있는 죄도 없게 해주겠다고 광고했죠.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에서 설득의 3요소로 에토스(품성), 파토스(감성), 로고스(이성)를 꼽았습니다. 그러면서 “모든 사람이 논리적이면 로고스만 있으면 된다”고 했죠. 하지만 사람은 늘 감정과 편견에 휘둘립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말은 팥으로 메주를 쑨대도 곧이듣고, “고통스럽거나 즐거울 때 각기 다른 판단을 내리듯 감성에 끌려 결정”을 내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