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신이냐? 공신이냐!
장지원
난세에 영웅이 난다는 옛 성인들의 말이 생각난다.
고려 말기 사대부를 중심으로 국정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선비 관료 중 고려에 충성을 다하겠다는 수상 파 “이색”을 중심으로 목숨을 던져 충신 반열에 오른 관료들이 있었다. 반면 몰락하는 고려를 따갑게 비판하고 조선의 새 왕조를 세운 창업 파 “정도준”을 중심으로 모인 선비들, 조선에서는 개혁 공신의 반열에 올라 역사에 길이 추앙받는 인물로 기록되었다.
한 시대를 동문수학하면서 그 시대의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충직한 관료들, 사대부가의 자존심 강한 선비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이 두 사람 중 “이색”은 한 시대를 마감하는데, “정도준”은 새 시대를 여는데, 그들의 각각 다른 면의 지혜로 오늘도 우리 역사를 빛낸 인물로 낯설지 않은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다.
충신과 공신은 역사의 냉엄한 평가에는 애매모호한 대목도 있지만 역사에서 이 두 사람 사이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사회적 성향에서 정치적 노선이 달랐고 인간적으로는 자신의 주관이 확실했다”라는 것이다. 수성 파를 이끄는 “이색”은 인재를 등용하는데 음서제(조상의 음덕으로 과거에 합격하여 관료가 되는 제도) 와 좌주문생제(과거의 시험관이 문생의 뒤에서 부모 자식처럼 돌봐주는 제도-오늘날 개인과외)를 주장한다. “이색” 자신 일찍이 부모의 후광으로 15세 어린 나이에 별장이라는 벼슬로 관료의 길을 시작하기도 했다.
반면 창업 파 공신“정도준”은 음서제와 좌주문생제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이를 비판하기를 “공적인 선발로서 사사로운 은혜를 삼은 것”이라고 이 제도를 따갑게 비판하였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창업 파를 추종하는 많은 관료 선비가 지방으로 한직으로 내몰리는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 공민왕 20년 “남재”는 과거에 급제하고도 정9품에서 9년간 억울하게 일했음은 옛날이나 오늘이나 다를 바 없는 것 같아 “역사의 수레바퀴”라는 말이 생겨난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남재”는 조선의 개국공신으로 등용하게 된다.
오늘 우리 시대의 지도자상이라면 - 안에서 밖으로 문을 열어줄 수 있는 자 - 조선의 개국공신 “정도준”을 떠올릴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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