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에 위인전> 예수의 탄생
장지원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¹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²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³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⁴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이 모든 일이 된 것은⁵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⁶ 이르시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⁷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⁸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⁹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¹⁰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¹¹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¹²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박사들이…갈새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서 있는지라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그들이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이르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하시니
요셉이 일어나서 밤에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떠나가
헤롯이 죽기까지¹³ 거기 있었으니
헤롯이 죽은 후에
주의 사자가 애굽에서 요셉에게 현몽하여 이르되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
아기의 목숨을 찾던 자들이 죽었느니라 하시니
요셉이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니라
그러나 아켈라오¹⁴가
그의 아버지 헤롯을 이어 유대의 임금 됨을 듣고
거기로 가기를 무서워하더니
꿈에 지시하심을 받아 갈릴리 지방으로 떠나가¹⁵
나사렛¹⁶이란 동네에 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¹⁷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
<노트> 신약 성서 마태복음 1장, 2장은 메시야로 이 땅에 오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이야기로 되어있다.
그의 어머니 마리아¹; 예수는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오셨다(롬8:3). 마리아도 아담의 다른 자손들과 같이 그녀도 죄로부터 구원이 필요했다(롬3:10,23).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이다(딤전2:5).
성령²: 성령은 하나님의 창조적인 힘과 생명력이 발휘되는 매개자(媒介者)이다(창1:2, 욥33:4, 요3:3-8, 롬8:11). 예수의 탄생에서 성령의 역할을 마태보다 누가가 좀 더 명확하게 언급한다(눅1:35). 성령의 중개로 “말씀이 육신이 되”(요1:14)었으며, 마리아의 아들이 “하나님의 아들”(눅1:35)로 불릴 수 있었다.
다윗의 자손³: 요셉은 자신이 왕가의 후손임을 알고 있었다. 마태의 족보가 암시하는 대로라면 그는 어쩌면 그는 다윗 왕위의 직접적인 계승자일 수도 있다.
이름을 예수라 하라⁴: 요셉은 그의 “아들”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특권을 가졌는데(눅1:59-63), 마리아 역시 예수의 이름을 짓는데 참여했다(눅1:31). 유대의 어린이들은 태어난 지 1주일 후 제8일에 할레 의식을 행할 때 공식적으로 이름을 부여받는다(눅2:21).
이 모든 일이 된 것은⁵: 예수의 생애와 봉사에 나타난 모든 중요한 국면-그의 본성, 탄생, 생애의 사건들 그리고 특별히 그의 고난과 죽음-은 옛 선지자들이 이미 모두 예언한 일들이다(시대의 소망 242,820). 그뿐 아니라 그의 생애는 영원 전부터 존재했던 한 계획의 성취로서 수행되었다. 그가 이 땅에 오기 전에 그 계획은 그 앞에 상세히 공개되었다. 모든 사건은 정해진 시간이 있었다(시대의소망 147,451, 신18:15, 눅2:49).
이루려 하심이니⁶: 정해진 시간에 “이루려 하기 위해”, “결과적으로 이루어졌으니”, 그리스도에 관한 예언은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선포되었다. 그러나 그 성취는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는(단4:17, 시대의 소망 147, 눅2:49) 분이 준비한 사건과 함께 인간이 볼 수 있는 일반적인 방법으로 실현되었다.
처녀가 잉태하여⁷: 누가가 증거하는 대로 성령으로 잉태하여(눅1:35), “때가 차매”(갈4:4) 하나님이 아들을 세상에 보냈고 그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했다(히10:5).
임마누엘⁸: 히브리어 임마누엘(Immanu El)을헬라어로 음역한 것. 문자적으로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 하나님의 아들은 단지 우리 가운데 거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인간 가족과 동일하게 되기 위해 오셨다(요1:1-3,14, 롬8:1-4, 빌2:6-8, 히2:16,17, 시대의 소망 23, 요1:1-3,14). 임마누엘은 그의 개인적인 이름이 아니라 사명을 묘사하는 칭호였다(사9:6,7, 고전10:4).
베들레헴⁹: 문자적으로는 “떡집”.초기의 이름은 “풍요”를 의미하는 에브랏(창48:7) 또는 에브라다(미5:2, 창35:19)였다. 포도와 무화과 곡식이 풍성한 베들레헴은 유다의 곡창지였다. 룻이 보아스를 만난 곳(룻2:4)도 다윗이 아버지의 양떼를 돌보던 곳도 이곳이다(삼상16:1-11, 17:15). 또한 사무엘이 다윗에게 왕으로 인정하는 기름을 부었다(삼상16:13). (참고 창35:19, 룻3:3, 4:1)
박사들¹⁰: 그리스도를 찾아왔던 “박사들”은 우상 숭배자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올바르며 고결한 인격을 지닌 사람들이었다(시대의 소망 59, 61). 그들은 히브리인의 경전을 연구했으며, 구약에 나타난 메시야에 관한 예언들이 그들의 주의를 끌었다. 그 가운데 발람이 말한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민24:17)라는 말씀을 발견했다. 그들은 아마도 다니엘서에 기록된 예언적인 시간(단9:25-26)을 알고 이해했을 것이며, 메시야가 오실 때가 가까웠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리스도가 탄생한 밤에 신비한 빛이 하늘에 나타났으며, 반짝이는 별이 되어 서쪽 하늘에 머물러 있었다(시대의 소망 60). 그 의미심장한 비춤에 깊이 감동하고, 박사들은 다시 한번 거룩한 두루마리를 살펴보았다. 그 거룩한 깨닫기 위해 살폈을 때, 꿈속에서 메시야를 찾아가라는 지시를 받았다. 아브라함처럼 처음에 그들은 갈 바를 알지 못했으나 별이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 전승에 의하면 그들의 이름이 가스파르(Gaspar), 발타사르(Balthasar), 멜키오르(Melchior) 였다고 한다. 그들이, 왕이었다는 생각은 사60:3에서 유추한 것이다(계21:24).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¹¹: 동방 박사들이 유대인이 아님을 암시한다. 그들이 유대인이었다면 “우리의 왕”이라고 했을 것이다(시대의 소망 60-61).
동방¹²: 헬라어 아나톨러(anatole), 문자적으로는 “떠오름”을 의미한다. 박사들이 출발한 동쪽 나라를 가리키지 않고 “떠오름”을 뜻하는 “우리가 그 별이 떠오를 때 보았노라”라고 번역할 수 있다. “우리가 그 별을 동방지역에서 보았다”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그 별은 ‘멀리서 빛을 발하는 천사의 무리“였다(시대의 소망 60).
헤롯이 죽기까지¹³: 그는 B.C. 4년에 베들레헴의 유아들을 살해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매우 고통스럽고 진절머리 나는 병으로 죽었다.
아켈라오¹⁴: 헤롯은 자기 뜻에 따라 다스리던 지역을 네 지역으로 나누어 두 지역을 안티파스와 빌립에게 각각 나누어 주었다. 아켈라오는 헤롯의 아들 중에 가장 악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학정과 무능력으로 유대인과 사마리아인들은 그가 다스린 지 10년 되던 해인 A.D.6년에 그의 퇴진을 로마에 요청한다. 아구스도는 그를 지방(현재의 프랑스)으로 유배시켜 거기서 죽는다.
떠나가¹⁵ 아마도 요셉과 마리아는 메시야를 다윗의 자손으로 말하는 예언을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베들레헴에서 거처를 마련하려고 했을 것이다.
나사렛¹⁶: 여기서 처음으로 나사렛이란 이름이 언급된다. 그곳이 지난날에 별로 중요하지 않았거나 존재하지 않았음을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요세프스는 갈릴리 지방 200여 리를 마을의 목록에 포함하지 않았다. 이곳은 그들의 사악함 때문에 갈릴리 사람들 사이에서조차 속담 거리가 되었다(눅1:26).
나사렛 사람¹⁷: 다른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나사렛 사람으로 말하는 마태의 진술에서, 처음에는 나사렛이라는 동네에, 후에는 예수와 그의 추종자들에게 쏟아지는 비난에 대한 언급을 발견했다. 나사렛에 대한 일반인들의 태도는 요 1:46절에서 명백히 들어난다(요7:25). ”메시야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들에게 실어버린바“ 될 것이었다(사53:3, 시22:6-8). 예수는 유명한 통치자가 아니라 사람 중에 비천한 자로 나타날 것이며 베들레헴 사람으로 알려지지 않을 것이며, 다윗의 동네의 주민으로서 갖게 될 어떤 영광도 취하지 않을 것이었다.
2024.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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