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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속에 위인전> 다른 지파들의 정복/장지원

노파 2024. 12. 20. 00:02

 

<성경 속에 위인전> 다른 지파들의 정복

장지원

 

 

요셉 가문도¹

벧엘²을 치러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시니라

요셉 가문이

벧엘을 정탐하게 하였는데

그 성읍의 본 이름은 루스라

정탐꾼들이

그 성읍에서 한 사람이 나오는 것을 보고 그에게 이르되

청하노니 이 성읍의 입구를 우리에게 보이라 그리하면

우리가 네게 선대하리라 하매

그 사람이 성읍의 입구를 가리킨지라 이에

그들이 칼날로

그 성읍을 쳤으되 오직

그 사람과 그의 가족을 놓아 보내매

그 사람이

헷 사람들의 땅에 가서 성읍을 건축하고³

그것의 이름을 루스라 하였더니

오늘까지 그 곳의 이름이 되니라

 

⁴므낫세가

벧스안⁵과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과 다아낙과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과 돌과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과 이블르암과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과 므깃도와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들을 쫓아내지 못하매,

가나안 사람이 결심하고 그 땅에 거주하였더니⁶

이스라엘이 강성한 후에야

가나안 족속에게 노역을 시켰고

다 쫓아 내지 아니하였더라⁷

 

에브라임이

게셀⁸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못하매

가나안 족속이

게셀에서 그들 중에 거주하였더라

 

스불론은

기드론 주민과 나할롤 주민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⁹

가나안 족속이

그들 중에 거주하면서 노역을 하였더라

 

아셀이¹⁰

악고 주민과 시돈 주민과 알랍과 악십과 헬바와 아빅과 르홉 주민을 쫓아내지 못하고

아셀 족속이

그 땅의 주민 가나안 족속 가운데 거주하였으니

이는 그들을 쫓아내지 못함이었더라

 

납달리¹¹는

벧세메스 주민과 벧아낫 주민을 쫓아내지 못하고

그 땅의 주민 가나안 족속 가운데 거주하였으나

벧세메스와 벧아낫 주민들이

그들에게 노역을 하였더라

 

아모리 족속이

단 자손¹²을 산지로 몰아넣고

골짜기에 내려오기를 용납하지 아니하였으며

결심하고 헤레스 산과 아얄론¹³과 사알빔에 거주하였더니

요셉의 가문의 힘이 강성하매

아모리 족속이 마침내는 노역을 하였으며

아모리 족속의 경계¹⁴는

아그랍빔 비탈의 바위부터 위쪽이었더라

 

<노트> 구약 성서 사삿기 1장 22-36절에는 나머지 다른 지파들의 정복에 관한 이야기들로 되어있다.

요셉 가문¹: 서부 팔레스타인에 있는 에브라임 족속과 므낫세 반 지파, 또 다른 므낫세 반 지파는 요단 종편에 정착했다.

벧엘²: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 중앙 산맥에 위치한 예루살렘 북쪽 약 16.4km 지점에 있다. 이 성읍들은 야곱이 사닥다리 이상을 본 장소로 알려졌는데, 그 사건에서 벧엘이란 이름을 따 왔다(창28:10-22). 훗날 이곳은 여로보암이 확립한 우상 숭배지로 유명해졌다. 그곳은 북방 이스라엘의 국가적인 신당 가운데 하나로 만들었다(왕상12:29).

그 사람이 헷 사람들의 땅에 가서 성읍을 건축하고³: 이 사람이 건축한 성읍에 대서는 알려진 게 없다. 아마도 그 자신의 배반 행위 때문에 양심을 진정시키기 위해 먼 지방으로 가서 성읍을 건축하고 자신이 배반한 성읍의 이름을 따라 개명했을 것이다.

⁴므낫세…가 못하매: 므낫세가 쫓아내지 못한 거민의 성읍들은 모든 통로를 지켜주는 일련의 요새 성읍들로 구성되어 있다.

벧스안⁵ 고대 도성 벧스안은 가나안 경계의 동족 끝에 있었다. 이스르엘 골짜기 끝에 있는 비교적 평평한 지역이 요단강 쪽으로 기울기 시작한 곳에 벧스안이 있다. 이곳은 팔레스타인의 가장 오래된 성읍으로 여러 세대를 통해 이방 신들을 섬기는 중심지였고 높은 곳에 있는 가장 강력한 요새화 된 성읍이다.

가나안 사람이 … 거주하였더니⁶: 가나안 사람들은 자신들을 몰아내려는 히브리인들의 시도에 강력히 저항했다. 그들은 요새들을 이용해 여행과 교역을 위한 주요 도로를 모두 지배하므로 지파들 사이를 갈라놓고 히브리인들의 연합 동맹을 저지할 수 있다는 것을 정확히 인식했다. 그들은 분열시킨 다음에 정복하는 전법을 적용했다.

다 쫓아내지 아니하였더라⁷: 히브리인들은 우세한 지역에서도 자신들의 촌락에서 농장의 강제 노역을 감수한 결과 가나안인들이 그들 중에 머물러 살 수 있도록 하여, 이스라엘에 종교와 도덕의 위기를 직면하게 되었다. 후에 역사가 증명하게 되었다.

게셀⁸: 블레셋 지방 근처 에브라임 남서쪽 경계에 있던 고대 가나안의 성읍으로 예루살렘 북서쪽 30.8km 지점에 있었다. 열왕기 상에도 이 성읍이 등장하고 가나안 사람이 이 성읍을 소유하고 있었다고 한다(삼상27:8, 삼하5:25, 대상20:4). 그 후 솔로몬이 국경 요새로 재건 했다.

스불론은 …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⁹: 히브리인들은 자신들이 할당받은 영토에 있는 요새들을 공격하기에 역부족이었다. 그들은 산지에서조차 지배권을 차지하지 못했다. 가나안 족속들은 작은 틈만 있으면 끼어들어 영역을 넓혀 갔다.

아셀이¹⁰: 아셀 지파도 영토 확장에 성공하지 못한다. 그들의 영토는 해안 평지와 갈멜 북쪽의 낮은 언덕들로 이루어졌다. 상시 이 지역은 해상 무역 상인들로 명성을 떨치지 않았던 베니게인들의 영토였다. 짧은 시간 안에 히브리인들은 종교적 영향을 상실하고 있었다. 드보라가 지파들의 연합을 동요했을 때 “아셀은 해변에 앉고 자기 시냇가에 거하도다”(삿5:17).

납달리¹¹: 납달리가 정복에 실패한 성읍들은 여신 아나트(Anath)와 태양신 세메쉬(Shemesh)를 위한 유명한 신전들의 이름을 딴 고대 성읍들이다. 히브리인들은 이 성읍들에서 조공을 강요할 정도로 강했다. 납달리는 후에 갈릴리지방으로 알려졌고, 수많은 이방적인 요소들이 들어와 “이방의 갈릴리”(사9:1) “외지”로 불리게 되었다.

단 자손¹²: 단 자손의 영토는 에브라임과 유다 사이에 있는 골짜기와 낮은 언덕들로 이루어졌다. 단 사람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자신들의 경계를 바다까지 확장했어야 했다. 그러나 원 거주민들이 단 사람들을 산지로 밀어냄으로, 그들은 소라와 에스더올 성읍 근처에 진지를 구축했다. 삼손이 블레셋 사람들을 급습하여 공훈을 세운 곳이 바로 단 지파의 이 지역이다(삿13-16장). 사삿기에서 이 지역 원주민을 아모리 족이라고 하고 있다.

헤레스 산과 아얄론¹³: 셔팔라에 있는 벧세메스와 동일한 곳이다. 아얄론은 예루살렘에서 서북서쪽으로 약 20.8km 지점에 있는 성읍이다(수10:12).

아모리 족속의 경계¹⁴: 아모리의 영토가 전에는 주로 멀리 남쪽에 에돔 국경 지역에 있는 이곳들에까지 뻗어 있었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이스라엘 남쪽 지파들은 이 옛 경계에 이르는 남쪽까지 영토를 점령했다. 이곳엔 아그랍빔 비탈로 바위들로 에돔과 나바테아인들의 암벽 요새인 페트라를 가리킨다고 간주하지만, 아라바의 유대 편 지계표를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그러나 본문 전체가 다소 모호하다.

 

2024.1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