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파의문학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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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同行) /Going Together

동행(同行) /Going Together 단편소설/장지원 오늘 마지막 수업이 끝나기 무섭게 선영은 무거운 가방을 들고 급히 강의실을 빠져나간다. 오늘따라 말쑥한 차림에 중요한 약속이라도 있는 듯 평상시보다는 멋도 내고 시간을 주름잡듯 서두르는 것이 예사롭지 않다. 선영이 현관을 막 나서려고 할 때 갑자기 굵은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진다. 미처 우산을 준비하지 못한 학생들이 현관에서 소나기를 피하기 위해 조밀하게 모여들었다. 선영이 그 틈에서 시계를 드려다 보고 있었다. 태민이와 데이트가 있는 날이다. 일분 이분이 선영에겐 중요한 시간이다. 여름 날씨조차 그에게 도움이 안 된다니 하늘이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혼잣말로 “큰일 났네. 이럴 줄 알았으면 마지막 강의를 빼먹을걸” 선영의 얼굴에 수심이 소나기를 퍼붓..

소설 2011.06.01

품의와 항명

품의와 항명 장지원 다산 정약용 선생은 목민심서에서 항명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상관의 명령이 공법(公法)에 어긋나고 민생에 해를 끼치는 것이면 굽히지 말고 꿋꿋이 자신을 지키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하였다. 지금 세상에서도 다산의 말을 뒤엎을 사람이 없다고 본다. 역사 속의 실례를 보기로 하자. 조예(趙豫) 상소 “명나라의 조예(趙豫)가 송강부(松江府)를 맞고 있는데, 청군어사(淸軍御史) 이입(李立)이 와서 군대의 수를 늘리는 데만 몰두하여 백성들을 마구 동원하였다. 이에 조금이라도 항변하면 독하게 곤장을 치니, 인심이 크게 소란해지고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람이 천여 명이나 되었다. 또한 소금 생산을 맡은 관리가 소금 굽는 인부들을 긁어모으니 백성들에게 크게 해가 되었다. 조예는 글을 올려 이 ..

테마 2011.06.01

홍, 유릉에서

홍, 유릉에서 장지원 신록, 그 계절의 문턱을 넘어 왕릉에 선다. 햇살은 소나무 숲 사이를 바쁘게 오간다. 발자국 하나하나도 놓치지 않고 땅바닥에 기록한다. 홍, 유릉은 역사가 쉬는 공간답게 엄숙하면서도 질서정연하게 배열된 정원을 보는 것 같다. 그 시대의 주인을 섬기고 배알하는 듯 착각마저 들 정도로 사적 207호인 금곡릉의 정취는 아름답다. 오월의 태양은 수고하는 모두에게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따뜻하면서도 의미를 부여하는 손길로 어루만지고 조용히 보듬어 주는 것 같다. 매표소를 들어서는 순간 잠시 고개를 숙여 묵념한다. 왕릉을 찾는 최소한의 예를 갖추기 위해서다. 산새들의 소리는 궁중 제례악을 연주하는 것 같았다. 주변에 서 있는 크고 작은 소나무들이 걸음을 멈추고 왕의 행차를 시립하는 것도 같았다..

수필 2011.0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