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11월16일 수 맑음
이삭줍기
가을걷이가 한참 지나간 들녘을 아내와 같이 이삭줍기를 간다.
밤 기온은 쌀쌀했지만 아침 해가 뜨면서 대지는 겨울 속에 초여름 날씨로 바뀌어 따사로운 겨울 전원에 나를 이끌어 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남한강 산책로를 걷다가 창대리 방향으로 길을 바꾸어 한 십여 분을 걷으니 군부대가 나왔다. 높다란 은행나무 위에 노란 은행이 내 시선을 잡아끌고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나무 밑에는 많은 알들이 떨어져 있었다. 군부대나 군인 아파트의 사는 사람들은 은행에 대한 관심이 없을게 분명했다. 사실 은행은 노란색 잎은 아름답다고 하지만 열매가 떨어지면서 고약한 냄새가 좋을 리가 없다. 잠시 주운 것이 한 봉지가 되었다.
아내는 은행이 몸에 좋은 점을 내내 이야기 하였다.
은행은 특히 혈액 순환에 좋다고 한다. 그리고 오줌소태에도 효능이 탁월하다고 한다. 이 좋은 열매를 하루에 열다섯 알을 넘기지 말고 잘만 복용하면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과다 복용은 도리어 독이 된다고 했다. 내가 어릴 때 할머니가 내게 먹여주던 추억을 더듬어 보니 나는 그때 늦게까지 오줌을 가리지 못하고 자주 옷에 실례를 하는 일이 빈번했던 것 같기도 했다. 은행 알은 할머니의 모습처럼 내게 눈을 맞추곤 했다. 어쩌던 몸에 좋다고 하니 내킨 김에 많은 량의 은행을 주울 수 있어서 횡재를 한 기분이다.
돌아오는 길에 산수유가 빨갛게 익은 작은 나무가 풀숲에서 반겼다.
말랑말랑하게 잘 익은 열매는 보기만 해도 입에서 군침이 돌아났다. 누구도 관리하지 않은 나무라 몇 주먹을 딸 수 있었다. 이놈은 말려서 차를 끊여 먹어야 갰다고 아내는 말했다. 나는 밥에 넣어 해 먹어도 된다고 하니 이를 농담으로 두어 넘기는 아내의 무표정에 괜히 한 말 같아 후회스러웠다. 한약재로 쓰이는 놈이니 어찌 먹어도 몸에는 좋으리. 행각하니 이 순간 이 시간만큼은 행복하다.
양평에 온지 첫 번째 막는 가을이다.
집에서 조금만 나가면 강이고 산이다 사이사이 논밭에선 우리네 같은 사람들의 심심풀이 이삭이 즐비하다. 60년대 만해도 먹고 살기 힘들 때 벼이삭도 주워 봤다. 초등학교 시절 주운 벼 이삭으로 학급 문고를 마련한 추억이 오늘따라 새롭게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권창환 선생님은 유득히 책에 관심을 두시고 우리에게 책을 많이 읽으라고 누누이 하심 말씀을 아직 나는 기억하고 있다. 이제 나는 글쟁이가 되었다. 선생님이 보고 싶다. 지금쯤 선생님은 구십을 넘긴 연세일 텐데 어디서 건강히 계시는지 만난다는 것이 아득하기만 하다.
산책삼아 오늘 이삭줍기의 의미를 부여 한다면 내 삶을 뒤집어 사이사이에 산소방울을 불어넣어주는 것 같았다. 운동도 하고 버려지는 이삭을 갈무리하는 순간에 유년기 어릴 때의 추억을 되살려 생각하니 한결 더 몸은 젊음으로 다져지는 것 같아 좋았다. 이래서 전원에서 사는 것이 축복이라고 했던가. 이젠 나도 자투리 이삭과도 같아 남은 삶을 알뜰하게 살며 세월을 허비하지 말고 살아야 갰다는 생각을 또 한 번 하게 된다.
2011.11.16
'연필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흔들리는 좌표 (0) | 2011.11.22 |
---|---|
삿갓 쓰고 가는 길 (0) | 2011.11.20 |
가슴을 비워 우주를 품어라 (0) | 2011.11.15 |
시인의 말, 단칸방 (0) | 2011.11.11 |
시인이 보는 전(錢)의 전쟁 (0) | 2011.11.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