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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양골 산책로를 걸으며...

노파 2011. 10. 14. 12:34

 

양골 산책로를 걸으며

장지원

 

 

이른 봄 산 구석구석이 파릇파릇 살아난다.

양골 산책로를 걷다 보면 겨우내 움츠렸던 몸에도 생기가 돌아 너무 행복하다. 양지바른 곳에서부터 새싹들이 하나둘 키 재기를 하듯 분주한 길에 산책 나온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만 간다.

 

겨우내 굳었던 몸을 풀기 위해 운동 나온 가족들이 늘어간다.

오래간만에 새로운 얼굴들이 여럿이 보인다. 나도 그들 틈에서 오가는 사람들에게 다정하게 인사를 나눈다. 나이가 지긋하신 할아버지도 가볍게 답례한다. 처음 보는 아주머니한테서도 인사가 올 땐 서로의 얼굴은 밝게 빛난다.

 

한적한 산길에서 서로가 마주칠 때는 표정을 밝게 해 주는 것이 좋겠다.

기본적인 매너라고 생각한다. 사나흘 전 한 아주머니와 인사를 나눈 적이 있다. 여자 혼자 오기는 너무 으스스하고 무서워요. 산책하며 운동도 하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다니겠어요. 자신의 애로를 푸념처럼 토하여 낸다.

 

며칠 전 이곳에서 얼굴이 다 가릴 정도의 마스크에 모자를 깊숙이 눌러쓴 청년을 만난 적이 있다. 산행에서 흔히 주고받는 짧은 인사를 건넸다.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 그 젊은 남자는 대구도 없이 지나쳤다. 순간 내 자존심에 약간의 상처를 냈다. 조금 언짢은 입속말로 ‘저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내 인사를 씹는 거야’ 같은 남자인 나도 순간 무섭고 섬뜩한 생각이 들었다. 여자들이야 얼마나 무섭고 잔인한 산책길이 되겠는가. 안 그래도 며칠째 보이지 않는 얼굴이 여러 사람이 되어 궁금하기도 하다. 그래서 언제나 나는 통상의 등산복에다 마스크나 모자는 될 수 있으면 착용하지 않는다. 내가 그렇게 생각한 것은 이 길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 작은 배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길은 너무 아름다운 길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들어내 놓고 마음껏 즐기는 것 또한 자신의 건강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 산책길을 소개하고 싶어 잠깐 소개한다.

남양주시 청사 뒤편에 있는 천마산 줄기로, 봄에는 온갖 야생화들이 풀잎에 싸여 저마다의 색과 멋을 뽐낸다. 여름이면 우거진 숲속에선 산새들의 은어가 장관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간혹 뱀이 소리 없이 나타나 놀라게 한다.

나도 놀라고 뱀도 놀라서 서로가 애꿎은 표정에 숨을 몰아쉬곤 한다. 머리카락이 있는 대로 하늘로 고슴도치 가시처럼 치솟는다. 사나이 가슴도 콩알만 해지고 콩닥콩닥 뛰면서 한 참 진정을 해보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뱀의 처지에서 생각해보니 그놈은 얼마나 놀랐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너를 먼저 보고 말을 걸지 못한 것이 내 잘못이다. 사람들이 다니는 산책길엔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길을 비켜주는 뱀이 어쩌던 고맙다. 뱀도 산책 나온 길이면 피차 시비를 가리기조차 어려울 것 같다. 나를 보고 놀라 꽁지가 빠져라. 도망치는 뱀도 영문을 모르는 돌발 상황을 나라도 그렇게 대처했을 것이다. 역지사지로 식은땀을 흘려 보지만 역시 여름은 살맛 나는 계절임이 분명하다.

 

내가 이 길을 걸으며 작은 소망이 있다.

올해 가을도 이 길을 걸어 보는 것이다. 단풍이 든다고 하더니 어느새 산책길엔 나뭇가지마다 두 팔을 툭툭 떤다. 어느새 떨어지는 낙엽으로 양탄자를 깐다. 가을의 낭만이 가슴까지 차오른다. 이곳만 한 산책길이 또 있을까? 지난가을을 잊을 수가 없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 시구가 가슴에 차곡차곡 낙엽처럼 쌓이더니 시 한 수가 흐른다.

 

마음을 잘라

자신을 갈무리하는 가지마다

산산한 바람 불어

고단한 삶을 다듬어 간다.

 

시련을 견디기에 거추장스러워

영욕(榮辱)의 가지 떨어내는 성숙함

미련을 벗고

두 눈 꼭 감은 채

온갖 풍상(風霜)의 그림을 그려 본다.

 

에덴에 노을이 질 때

낙조가 헤집고 지나간 자리마다 단풍이

연한 햇살에도 추워 떨다

생명 싸개 안에

중생(衆生)의 고통이 시작되는 찌어진 수채화

 

창조주 하나님은

피 묻은 십자가를 붙들고

부활이라는 소망을 찍어

가을 동화에 낱낱이 기록하여

올해에도

단풍잎 포장지에 곱게 싸 보내신다.

(老波의 시 에덴의 가을)

 

또 다른 나를 만들어 살찌게 하는 것 같다.

올해 가을에 이 길을 같이 걸고 싶은 사람이 있다. 그에게 꼭 권하고 싶다. 눈 덮인 겨울은 더 아름답다.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하얀 눈으로 덮어 티 하나 찾아볼 수 없는 도화지 같다.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나의 발자국을 남기며 가슴을 열어 낭만이란 그림을 그린다.

 

파란 하늘에 바람이 일 때

연을 날린다.

 

꽃잎처럼 파르르 떨다.

넌 날아가고

방황은 하늘을 떠돌다.

장독 위에 하얗게 쌓이는데

자를 수 없어 긴 시간

마른 구름이 되

늘 목말라

 

남빛 바람에

물든 낙엽도 떠나고

첫눈이 오는 날이면

사립문 뜯어

모닥불 집혀놓고 널 기다린다.

(老波의 시 첫눈 오는 날)

 

순간 세월의 먼지 묻은 자신이 한없이 부끄럽기도 하다.

나뭇가지에 쌓였던 눈이 머리 위로 쏟아진다. 뭐 그리 놀라나. 무엇인가 찔리는 듯 나 자신이 자연의 섭리 앞에서 창피하도록 맥 못 추게 하는 순간이다. 나는 이곳에서 건강도 챙긴다. 마음의 여유도 찾을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 자신의 편이만 생각하면 많은 사람에게 알게 모르게 피해를 준다는 것 잊지 말자. 아직도 성숙지 못한 자신을 한 번 더 돌아보게 한다. 모두가 놓치기 쉬운 작고도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서로의 벽을 허물고 산책길을 가꾸어 가야 하겠다. 쾌적한 명품 도시 남양주가 더 아름다운 도시로 멋지게 발전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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