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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벌초 길 고향

노파 2011. 8. 31. 16:48

벌초 길 고향

장지원

 

 

추석이 다가오니 더는 미룰 수 없는 벌초, 고향 가는 열차표를 예매하였다.

풀을 자를 수 있는 낫, 나무를 자르는 톱, 만약을 위해 토치램프를 배낭에 챙겨 메고 집을 나섰다. 오랜만에 타보는 새마을호 열차는 쾌적한 환경에서 고향 가는 내 마음을 들뜨게 하고도 남았다. 차창밖에 경치와 풍광은 내 눈에서 떨어질 새 없이 머릿속에 하나하나 기록되고 있었다. 단선 철길을 달리는 열차이었지만 거침없이 나를 고향으로 인도하고 있었다.

 

몇 시간을 달려온 열차는 잠시 후 풍기역에 도착한다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온다.

죽령 터널을 빠져나오는 감회! 그간 도시의 속박에서 벗어나 고향이란 품을 파고드는 한 편의 드라마를 연출하고 있었다. 44년 전 차표 한 장 들고 서울 가는 완행, 비둘기호를 기다렸다 타고 간 그 자리에 내렸다. 나를 내린 열차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 모두가 빠져나간 플랫폼에 혼자 남아 무엇인가를 찾고 있었다. 그때 그 자리에서 묵묵히 나를 반기는 소백산 비로봉, 낯설지 않아 좋았다.

 

고향 생각이 간절할 때 써 두었던 시가 생각이 난다.

“하늘 보다가 파랗게 물드는 가슴. 떠나자고 바람은 성화를 부린다. 떠날 수 없는 시간에 나는 붙들려 가슴 풀어헤치고 추억의 물레를 잤는다.”

“저녁노을 보다가 생각하는 고향. 서산은 어두운 거적 내리고 서성이는 바람 소리 놀라, 보내야 하는 널 붙들고 그리움에 몸부림치다, 빛바랜 사진 녹여 차 한 잔 내린다.”

“5백 리 먼 길 단숨에 달려, 덜커덩거리던 기차가 숨을 고르며 멈춘다. 나의 유령은 텅 빈 정거장에 내린다. 코스모스 꽃잎 따 가슴에 담으며, 흙냄새 진한 고향 생각 달랜다. “ (老波의 시, 고향이 그리워서)

 

어떤 때는 고향 생각, 부모님 생각에다, 친구 생각까지 간절할 때가 있다.

가던 날이 장날이라 했다.

내 기억에도 없는 풍기 장날이다. 역 앞에서부터 인도를 빼곡히 점유한 난전이 옛날 시골 난장을 그대로 재현이나 한 듯 이상스럽기까지 했다. 부석까지 가자면 20km는 족히 버스를 타야 한다. 1시간은 더 기다려야 하기에 장 구경을 하기로 했다. 상설 시장 안 가게마다 풍기의 명물 인삼이 넘쳐나고 있었다. 수삼, 백삼, 술 삼, 홍삼이 있는가 하면 인삼을 원료로 가공한 건강보조식품들의 종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쌓여있어 사람들의 눈길을 유혹하고 있었다. 호객하는 젊은 아주머니가 따라주는 쌉쌀한 인삼차를 한 잔 먹고 나니 짧은 여독이 잠시나마 풀리는 것 같았다.

 

난전을 한 바퀴 돌았다.

소백산에서 직접 캐 왔다는 자연산 더덕의 냄새는 내 후각을 통해 외지에서 잠자던 세포를 흔들어 깨우기에 충분했다. 벌써 구미를 돋우는 싸리버섯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그 모양과 맛이 같으리라. 조금 있으면 버섯 중에 으뜸인 송이버섯이 나온다고, 그때 꼭 다시 오라고 일러주는 할머니의 얼굴에선 돌아가신 어머니 생전의 모습이 순간 떠오르기도 했다.

 

버스 정거장에 돌아와 남은 시간을 기다리기 위해 간이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서울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나를 포함해 여러 명이 되었다. 개중에 젊은 학생들도 부석사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모양이다. 11시 15분이 지나도 정해진 시간의 버스가 오지 않아 잠시 작은 소동이 일어났다. 다들 어리둥절한 모습은 서울 촌놈이 따로 없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 시간표는 영주 출발 시간이라고 한다. 영주와 풍기는 10여km는 떨어져 중간 정류장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역시 시골은 시골 버스구나! 여러 사람의 한결같은 푸념을 토해 낸다.

 

옆에 앉아 있는 우리 또래 되어 보이는 부부도 부석까지 간다고 했다.

외지 고향 까마귀를 만나 반갑던 터라 이야기를 건넸더니, 47년 전 부석초등학교 제39회 졸업생 동기생 친구 권문흠이다. 초등학교 졸업 후 고향을 떠났다고 했다. 우리 둘은 손을 맞잡고 옛날 생각을 하나도 잊지 않고 생생하게 되새겨 내는 우리를 보고 있던 친구의 부인이 더 좋아했다. 세월의 무심함이 우리를 반세기나 때 놓았다. 기다리던 버스에 우리는 나란히 앉아 부석까지 가는 시종, 초등학교 시절 잊지 않은 추억을 끄집어내기에 30여 분의 시간이 훌쩍 지나 버스는 부석에 도착한다. 친구가 먼저 내리게 되었다. 서울에서 꼭 만기로 약속하고 아쉬운 작별을 한 버스는 나만 싣고 부석사를 향해 달린다. 한 정거장을 더 가 부모님 산소 앞에다 나를 내려놓고 사라지는 고향 버스

 

후덥지근한 날씨는 여름 연장선상의 불볕더위를 퍼부었다.

지난여름 장마와 폭우에도 부모님 산소는 별 탈 없이 잘 있어 감사하다. 작년에 듬성듬성하던 뗏장이 잘 살아 파랗게 덮인 유택 동산은 너무 평온해 보였다. 나는 아래 시 속에서 벌초를 마무리해 본다.

“장마에 지붕은 세지 않았을까. 바람에 집은 온전할까. 외로워 얼굴은 상하지 않았을까. 생각만 한다. 좋은 날 잡아 산소에 벌초를 간다.”

“아이 맘에 초로(草露)를 걷어 내면, 아버지 기침하시고. 문 열고 어머니 나오실 것만 같다.”

“바람에 실어 오는 햇살. 섬돌에 하얀 고무신 받쳐놓고, 버선발로 내려오는 그 옛날의 모습은 간데없고, 윙윙거리는 예초기 소리가 싫어 자리를 비웠는지, 두 분 보이지 않는 유택에서 아인 한동안 섰다가 자리를 뜬다”(老波의 시 벌초)

 

이번 벌초는 어느 해보다도 진한 고향의 맛을 담아 왔다.

문흠에게 전화라도 한번 해봐야겠다. 고향이 더 그리운 건 나이 탓일까? 더 늙기 전, 고향을 담아 간직할 수 있는 좋은 그릇이 되길 다짐해 본다.

 

201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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