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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양평 5일장

노파 2011. 12. 19. 09:38

 

양평 오일장

장지원

 

 

넓은 장마당에 빼곡히 들어선 난전들만큼이나 제각기 다른 호객 소리도 다르다.

형형색색의 빛깔과 모양, 맛과 크기, 향과 끼가 어우러져 사람들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사람들은 이리저리 흥정한 물건으로 장바구니를 채운다. 꼼꼼함과 상기된 표정들이 너무나 진지하다.

 

좋은 물건을 권하고 고르는 표정과 손길은 추위 정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어느새 장터 간이음식점은 시장기 달래는 사람들로 앉을 자리가 없다. 난전의 추억을 달래는 사람들도 많아 보인다. 장터 음식은 별난 맛과 저렴한 가격이 특색이다. 나도 아내와 같이 한쪽 귀퉁이에 자리를 잡고 오랜만에 즐겨 맛보는 잔치국수다. 따끈한 멸치 육수가 추운 몸을 녹이더니 긴 면발은 자를 사이 없이 목구멍을 지나 위에 차곡차곡 쌓이는 게 금세 포만감을 느끼는 나는 억만장자 부럽지 않다. 이것이 장마당에서 찾는 작은 행복이다.

 

하나라도 더 팔려는 장사꾼들은 밥그릇을 손에 들고 허기를 달랜다.

아내와 함께 몇 가지 식재료를 사고 내 솜바지도 샀다. 장마당은 싸면서도 푸근하고 넉넉한 인심이 있어 좋다. 중앙선 전철이 생기고부터는 서울과 구리, 남양주 지역의 사람들이 여가를 이용해 양평의 오일장을 단골로 이용한다는 고객층이 두꺼워지고 있다고 한다.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왜 없겠는가.

 

파장되면서 미처 못 판 물건들이 한 묶음씩 몸집이 불어나고 값도 내려간다.

이때부턴 알뜰 주부들의 눈빛은 걸음걸이부터 다르다. 분에 넘치게 사는 이들의 말은 싸게 넉넉히 사서 이웃과 나누어 먹는다고 한다. 차가운 겨울 장마당에 살아나고 묻어나는 인심이 맞아떨어지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아직도 많은 물건이 발길을 기다리고 있는데 하루해는 뉘엿뉘엿 남한강에 손을 닦느라 둔한 몸을 놀리는 게 아쉽기만 하다.

 

장마당에도 어둠이 내려앉을 채비한다.

하나둘 빠져나가는 장터는 북적대던 하루가 비워준 공터 위에 불통이 등장하고 추위를 녹이는 난전의 상인들이 모여 막걸릿잔을 돌린다. 이는 오늘 장사를 잘 한 사람이 한턱을 내는 자리다. 모두가 하루에 만족과 감사를, 격려와 위로의 익숙한 잔이 한 순배 돌고 입가 볼엔 붉은 잉걸불이 타 오른다. 두 손으로 얼굴을 쓱쓱 훔치며 장사꾼들이 아쉬운 하루의 작별을 하며 하나둘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지친 개펄처럼 까맣게 남은 장마당은 앞으로 5일간 그의 기를 살려내는 동안 다음 장날을 또 맞게 될 것이다. 분명 눈 익은 장사꾼들 그들은 다시 이 장터를 다시 찾게 될 것이고 이 장터는 다시 활기를 되찾게 될 것이다. 양평 5일 장은 언제나 사람 사는 냄새가 묻어나기에 삶이 쉬어가기에 부족한 구석이 없는 것 같다. 다음 장날에도 연만하신 그 할머니가 난전을 펴 놓으시는 고즈넉한 삶을 보아야 할 텐데…

 

*양평 오일장 : 매월 3일, 8일, 13일 18일, 23일, 28일에 선다.

 

2011.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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