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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박인환 문학제를 걷다

노파 2011. 11. 8. 12:49

 

박인환 문학제를 걷다

장지원

 

 

늦가을답지 않게 태양은 뜨거운 에너지를 분출하고 있다.

정오의 태양이 머리 위에서 술래잡기하듯 머리카락을 헤집는다. 나는 손사래를 저어 오늘도 한판승으로 졌다는 신호를 보낸다. 겨드랑에서는 축축이 여름이 다시 오는 것 같아 조금은 부담스러운 날이다. 그런 모습의 나를 敬民亭은 한여름같이 살갑게 끌어 앉히고 가을을 비웃기라도 하듯 겉저고리를 벗어 여름이란 무늬 위에 놓는다. 양평군청 앞마당은 휴일이라 한산한 휴일의 인심을 느끼게 한다. 박인환 선생 문학제를 가는 오늘 날씨는 가을의 연장선상에서 좋은 길벗이 될 것 같다.

 

한참 만에 만나는 文友들이 각자 개성 있는 모습으로 얼굴을 드러낸다.

얼마만의 반가운 인사가 오가고 출발을 위해 이성준 작가의 차에 오르려는 순간 생각지 않은 일이 발생했다. 30도가 오르내리는 뜨거운 날씨가 이 작가의 애마 엉덩이를 주저앉히고 만 것이다. 오후 3시까지는 인재 행사장에 도착해야 하는데 일정에 차질이 예상되는 순간이다. 절름거리는 차를 몰아 펑크 집으로 가는 푸른색 차위로 여름은 마지막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 같았다.

 

6번 국도를 달려 용두리에서 44번 국도로 갈아타고 달린다.

일행이 탄 차는 언제 펑크가 났느냐. 앞의 시간은 벌써 잊은 듯 힘이 넘쳐 달리고 있었다. 차 안에선 조곤조곤 이야기가 이어진다. 가끔은 웃음도 터져 나와 도시의 긴장을 허물고 있었다. 생리적 호소가 1시간을 못 참고 백기를 들고 길을 막아 세운다. 일행의 모두가 배신자 없이 투항하기 위해 화양강 휴게소에 애마의 무릎을 꿇린다. 남몰래 찾는 해우소의 고마움은 장거리 여행에서만 느끼는 특별한 만족감이라고 할 수 있다. 일행의 얼굴에서 충분히 확인할 수 있어 다행이다.

 

‘인재 가면 언제 오나.’ 우리 일행은 이 길을 가기 위해 베이스캠프에 도착한 것이다.

6.25 전, 후세대 젊은이들이 지금도 조국의 마지막 보루인 휴전선을 지키기 위해 이 길에서 얼마나 많은 눈물과 피를 흘렸는지, 시원하게 뚫린 4차선 도로는 그 시절의 애환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늘 우리 일행을 바로 안내하고 있었다. 준비해온 도시락으로 늦은 점심을 간단히 때우고 나니 인재가 아니라 원통까지도 단숨에 달려갈 것 같았다. 먹는 것은 병법에서 가장 기본이라고 했던가. 일행의 사기도 진작된 것을 확인하고 남은 길을 재촉이라도 함은 무리가 아니리라 애마가 기다리고 있었다.

 

‘하늘 내린 인재의 늦은 가을이 옷깃에 매달린다.

낮은 하늘 아래 백두대간이 누렁이 등처럼 남북으로 뻗어 듬직한 어미의 품 안에서 젖을 빠는 송아지 같은 인상을 주는 인제에 도착한 것이다. 이 고장의 인심과 풍습은 어떨까 하는 생각은 이제 곧 만나는 박인환 문학제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선생은(1926.8.15~1956.3.20) 일제 강점기 이곳 인재에서 태어나 1950년대 대표적인 모더니즘 시인으로 활약했다. 그의 31세의 짧은 생의 마감은 오늘 우리의 마음을 안타깝게 안내하고 있어 가을이 더 쓸쓸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선생의 유작으로 ‘세월이 가면’ ‘목마와 숙녀’ ‘검은 강’ 등은 여전히 우리 가슴에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으니 선생을 향한 우리의 감동이 문학이란 뿌리에서 지금도 꽃피우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싶다.

 

시간이 흐르면서 해는 선생의 가신 길을 따르듯 서산으로 숨어버린다.

인재의 산 읍 촌은 다시 적막감에 빠져 마치 박인환 선생의 잠자리를 보살피는 것 같았다. 조금은 들떴던 마음들도 차분히 가라앉으며 찾아오는 시장기마저 다시 우리 일행의 발길을 붙잡는다. 인재에서 먹은 저녁은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기도 하다. 오늘 여행의 모든 범주를 벗어났다고 생각하니 모두의 긴장이 풀린 듯 오는 길목에서 차를 멈추고 작은 주막에 들렸다. 맥주가 한 순배 돌아가고 문우로서의 우리들의 이야기가 격의 없이 흐르는 시간, 하룻밤을 더 이어도 끝장을 내기에 모자랄 것 같았다. 그때 누군가 서두르는 바람에 미련을 길섶에 묶어 두고 각자는 새로운 문학을 꿈꾸는 밤의 한 자락을 붙들고 수많은 별을 세다 잠이 든다.

 

201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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