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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내가 사랑하는 사람

노파 2011. 9. 6. 12:25

 

 

내가 사랑하는 사람

장지원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다.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 보다, 사랑한다고 표현하면, 그 진실성에 태클을 걸고 나올 사람이 있을까. 한 대상을 놓고 좋아하는 것, 사랑하는 그것을 혼동할 때도 있다. 이를 공과 사를 구별하듯이 명확히 구분하여 표현하기 어려운 상황을 놓고 우리는 종종 시시비비에 오르내릴 때도 있다. 일상에서 좋아해야 할 때가 있다. 이럴 때 시큰둥하면 사람이 우습게 보인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사랑을 요구받고 내 진심을 표현해야 하는 자리에서 강 건너 불구경하듯 애정의 온도를 느끼지 못한다면 이보다 답답하고 짜증스러운 일은 없을 것이다.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그것을 정리해 보자.

사물을 놓고는 좋아한다는 표현이 어쩌면 더 잘 어울리는 말일지도 모른다. 사물에 대한 관점은 인간의 지식과 지혜를 통하여 걸러 내기도 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 사람은 선택할 수 있는 자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의 연결고리는 사랑이다. 조물주가 사람을 만들고는 ‘심히 좋았다’라고 하였다. 여기서 심히라는 말은 조물주 당신의 마음의 표현을 사랑으로 연결 지어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분의 속성은 사랑이라고 한다. 인간의 이해관계는 사물에 영향을 받는다. 이를 떠나 사람의 상호 만나고 교류하는 것은 신의 역력에서 활동하는 일련의 행위라 한다. ‘생각은 사람이 하지만 이를 주장하는 이는 신이라’라고 한다. 그래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의 표현은 사랑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더 고무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나는 내 고향 부석을 좋아한다.

나이를 먹을수록 고향에 관한 생각에 더 골똘한 이유가 무엇일까. 성경에서는 ‘너희가 나온바 고향을 생각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다 누구나 고향이 다 있다. 고향은 나를 생산하여 어느 정도 키워준 인큐베이터와도 같은 곳이다. 미숙아를 보호하고 성장에 지장이 없도록 어머니 자궁과 똑같은 환경을 만들어 아가의 성장 활동을 도와주는, 인간이 만든 기구이다. 나는 부석에서 태어나 초등학교와 중학교 학업을 마치도록 아무 탈 없이 크고 자라서 지금도 고향에 대한 안 좋은 기억 같은 것이 없다. 문득문득 생각나는 고향의 산하는 어머니의 몸을 나와 내가 자란 인큐베이터와 같아 늘 내 육신에 신선한 공기와 물을 공급해 주었다. 지금도 아름다운 고향 땅을 지키며 갈고 가꾸는 흙의 사나이들 친구가 있어 고향이 좋다. 얼굴에 주름만 없으면 우리는 시간을 초월한 공간에서 얼마든지 우리의 우정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 고향이기도 하다.

 

나는 고향을 좋아하는 이유가 있다.

1979년 서울에서 중매로 지금의 아내를 만나서 결혼했다. 나의 허전한 옆구리의 갈 비대 하나를 찾았다는 기쁨과 감격은 결혼으로 이어졌다. 신혼여행을 마치는 부산에서 중앙선 열차를 타고 영주에 내린 우리는 곧장 부석으로 가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께 큰절을 올리고, 신혼의 사랑을 자랑스럽게 표현하였다. 아버지 어머니의 사랑이 또 다른 사랑의 이미지로 사랑할 이유가 생긴 것이다. 아버지가 보여주시는 호적등본을 보는 순간 아내에겐 부석을 고향으로 둔 딸이 됐다고 생각하니 내 고향이 더 크게 생각돼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이후 우리는 사랑하는 아내와 고향을 찾는 일은 삶의 활력소가 되었다. 우리 둘의 사랑은 하나의 고향으로 출발한 만큼 멋진 삶을 꿈꾸어도 보았다.

 

내 고향에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평생을 고향이라고 떠나면 죽는 줄로 생각하시던 부모님의 산소가 있다. 부모님 사랑은 콕 찍어 설명할 수는 없지만 나에게는 우주와도 같아 크고, 넓고, 바다보다도 더 깊어, 한마로 위대한 사랑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2년, 잠시 어머니는 셋째아들 집에 와 있었다. 시골보다는 영 못한 마음 모르는 이 없다. 한 번은 통장을 내놓으시며 모두 찾아오라고 하시어 며느리가 찾아왔다. 당신 수중에 10만 원을 남기신 다음 나머지를 며느리 손에 쥐여 주시며, ‘그간 애비 어미가 보내준 용돈을 모아 놓은 것이다.’ 하시며 조용히 내미시는 어머니의 마음은 조물주의 사랑을 나에게 일깨워 주시고 있었다. 나는 그 사랑의 조각으로, 그 마모되어가는 원래의 형상을 더듬고 있었다. 이 일이 있었던 후, 어머니는 120일을 더 사시지 못하시고 나와의 사랑의 끈을 잠시 놓으시고 노아의 방주로 들어가셨다.

 

내가 정말 좋아하고 사랑하는 또 다른 고향과 아버지가 있다.

예수님은 그분을 하늘에 계시는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셨다. 그래서 나도 하늘 아버지로 부른다. 모든 이의 아버지시고 나를 내 부모님에게 부탁하신 위대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나는 또다시 사랑하는 아내와 같이 우리 조상이 떠나온 고향 그 나라로 아바 아버지를 찾아 신혼 때처럼 지금까지 성숙한 사랑을 인정받고 싶고, 자랑하고 싶은 것이다. 하늘 아바 아버지는 호적부가 아닌 하늘 생명책에서 우리의 근본이 당신의 아들임을 확인해 주실 것이다. 나는 내 고향 부석을 좋아하는 만큼, 실낙원을 더 좋아한다. 내 생이 얼마나 남았을까를 생각하면 조급하기도 하지만, 하루의 행복을 햇볕과 공기 마음대로 마실 수 있는 물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찾고, 깨닫고, 느끼면서 아바 아버지를 향한 사랑을 가꾸어 가기를 나 자신에게 다짐해 본다.

 

201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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