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파의문학공간

https://tank153.tistory.com/

노파의문학공간

수필

나의 기도

노파 2011. 6. 9. 08:11

 

 

나의 기도

장지원

 

 

나만의 기도가 있다면

비들기호 3등 칸 바닥에 주저앉아

한 권의 소설책에 빠져 부산까지 가보는 것이다.

 

30년 전 12월 00시 청량리역을 출발하여

부산으로 가는 비둘기호로 열차에 의도적으로 몸을 실었다.

비좁은 의자가 어색해 내 자리가 아닌 것 같아

엉거주춤 일어서니 기다렸다는 듯이

젊은 아줌마의 엉덩이가 매몰차게 충돌하고

눈 깜짝할 사이 나는 튕기어 3등 열차에 3등 인생으로 전락하고 만다.

 

어쩌면 내 기도의 소원 되로

분위기에 더 어울리게 됐는지도 몰라 감사를 하며

문 앞 화물을 싣는 바닥에 자리를 잡았다.

 

역마다 열차는 섰고 문이 열리면서

팔도의 사투리가 밀물처럼 몰려오는데

모자를 눌러쓰고 흐르는 발길만을 볼뿐이다.

 

잠깐 정신을 놓았던 모양이다.

뚝뚝 치는 바람에 정신을 차려 눈을 뜨니

정복한 역무원이다.

“여보시오 어디까지 가는 손님이요”

“네 부산까지 갑니다.”

“부산이라고요, 급행을 타시지”

“그런데 여기가 어디입니까?”라고 묻자

“부산까지 가자면 아직 10시간은 더 가야 할꺼요.”

열 시간이라 그사이 무수한 사람들이 타고 또 타고 내릴 것이 아닌가.

 

숱한 사람들은 시간과 세월의 흐름 속에서 바쁘게 움직이는데

나는 정체된 시, 공에 묶이어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나의 정체성이다.

넝마나 낭만을 즐기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무수한 말속에 피어나는 사람들의 내면적 정서를 읽을 수 있었고

외적인 모습에서는 삶의 애환을 담은 얼굴 얼굴을 보았다.

 

시골을 달릴 때는 내 어릴 때의 모습이 싫었고

도시의 변두리 역에선 올 막 졸 막한 삶의 봇짐들이 피난길을 방불케 했으며

도시의 역은 나에게 이방인처럼 홀대받게도 했으니

짐짝처럼 바닥에서 자리를 뜰 줄 모르는 내가

숱한 사람들에게는 당연하지 않으면 도리어 이상한 것이다.

 

지금 나는 그때의 그 시간 속으로 유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제 나는 내 옆에 누군가가 있으면 더 행복할 것 같다.

철없을 때의 철학도 낭만도 언젠가 KTX에 실어 보낸 지 오래되었다.

느림의 미학 따위는 다시 쓰는 공상 소설에서나 어울릴지

아무리 맵시를 내보려고 해보아도 지금은 맞지 않은 퇴물이 된 지 오래다.

몸도 마음도 지쳐 느린 시간은 이제 내 기도의 대상이나 주재가 될 수 없으니

아득한 옛 추억의 시간일 뿐이다.

나는 이제 그때 그 3등 열차를

내 이름이 걸린 박물관에 보관하고 싶은 생각에

골똘한 나머지 자료를 수집하고 고증하기 위하여

그 열차를 다시 한번 타고 싶어질 뿐이다.

 

2007.1.24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진리(眞理)와 선(仙)  (0) 2011.06.16
아침의 태양  (0) 2011.06.12
재림교회는 文化가 없다.  (0) 2011.06.08
양골 산책로를 걸으며  (0) 2011.06.07
‘時兆’에 푹 빠진 두 사람  (0) 2011.0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