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파의문학공간

https://tank153.tistory.com/

노파의문학공간

수필

진리(眞理)와 선(仙)

노파 2011. 6. 16. 07:47

 

진리(眞理)와 선(仙)

장지원

 

 

진리란 무엇인가?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요1:17)

예수 그리스도가 말하는 진정한 진리는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진리의 반대말은 불의다. (롬2:8) 사도바울은 ”진리를 가진 자로서 소경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두움에 있는 자의 빛이“(롬2:19)라 했다. 진리의 규모는 하나님의 자비, 예수 그리스도의 선(仙)에 우리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다.

 

유월절 전날 예수께서 폭도들에게 잡히시던 밤, 빌라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메시아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에게서 그 선한 모습이 진리라고 외친다.

그의 말은 “가로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이르되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노라.” (요 18:38) ‘너희가 고소하는 예수에게서 선한 모습만 볼 뿐이라’라고 말한다.

사도바울은 예수를 힘 있게 전파할 수 있었던 것은 “그리스도의 진리가 내 속에 있으니 아가야 지방에서 나의 이 자랑이 막히지 아니하리라” (고후 11:10)

부끄럼 없이 각 사람의 양심에 호소할 수 있었다고 회고한다.

 

자유란 무엇인가?

자유란 행위를 구속받지 않는 것이다.

진정 우리가 사는 사회나 단체 속에서 나는 행복 한가?

나라와 민족 계층 간의 균형은 언제나 깨어질 수 있다.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게 되는 현상의 지도를 그리게 된다. 지금도 지구상에는 자유 수호라는 명분을 앞세워 전쟁과 살상 약탈이 자행되고 있다.

진정한 자유란?

보호라는 테두리 안에 지배하는 힘의 논리가 아니라 진리의 깃발이래서 누리는 자유가 진정한 자유다. 하나님은 그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진리는 선의 규모를 언급하였다시피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시더라.” 마 8:20) 진정한 자유는 선에서 비롯되고 선은 마음을 비우고 낮추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예수의 선은 만물을 포용하고 마음에 수용하므로 참다운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사도바울은 이와 반대로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판단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 롬 2:2)

진정한 자유는 이를 선호하는 사람들의 선이 얼마나 규모 있게 유기적인 연합을 이루어 가느냐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조화를 역행하여 사회와 교회를 혼란과 위험에 빠지게 하는 경우 진리의 심판을 받게 된다. 그 배심원으로 나가는 자들은 예수의 진리와 선을 추구하는 구원받은 성도들이다. 자신의 자유마저 지키지 못하면서 이웃의 자유 권리마저 강탈한 죄가 얼마나 큰지 그때 알게 될 것이다.

 

선을 추구하라.

“우리는 진리를 거슬러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할 뿐이니” (고후 13:8)

잘못된 진리를 우상화하여 자신을 죄 아래 속박한다. 이들은 시간과 재물을 낭비할 뿐 아니라 사회와 교회 정서를 흔들어 발전을 해치거나 후퇴시킨다. 자가당착(自家撞着)에 빠져 모순된 행동에도 서슴없이 일관하게 된다. 천사 장 루스벨은 자신의 야욕을 채우기 위하여 여호와를 매도한다. 수많은 천사를 자신에게 복종시켜 끝내 죽음으로 내모는 악의 괴수가 됐다.

 

퇴계 선생은 죽을 임시 제자들에게 자신의 묘에 비석도 세우지 말라고 했다.

세월이 지나도 옛날이나 지금이나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인간의 기념비는 늘어만 간다. 그런 자들을 향한 침례 요한의 분노는 “독사의 자식들이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마 3:7)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마 12:34)

 

‘얼마나 답답하였을까?’ 감히 교회의 권위에 도전하는 자들에게 질타하는 외침이다. 사도바울은 믿음 있고 지위와 양식이 있다고 공언하는 자들에게 신앙의 양심을 걸고 말한다. “나는 저희가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로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을 좇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갈 2:14)

 

진리와 선은 하나이다.

진리의 범주 안에서 선을 완성해 보라. 제발 모두에게 떳떳하라.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지 마라.” 주를 거슬리는 자를 엎으시나이다, 주께서 진노를 발하시니 그 진노가 그들을 초개와 같이 사르니 이다.” (출 15:7)

그들에 대한 응징을 예고하셨다. “그러므로 내가 그들을 사막 바람에 불려 가는 초개와 같이 흩으리라“(렘 13:24) 독사의 독을 품고 선을 흉내 내는 너희가 어떻게 진리의 판결을 피할 수 있겠느냐.

 

“요한이 침례받으러 나오는 무리에게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눅3:7)

누가 그렇게 진리를 설명하였으며 누가 그렇게 너희를 가르쳤느냐? 하나님의 말씀에 그렇게 기록하였더냐? 주께서 그렇게 가르치더냐? 전도자 요한의 분노는 쉽게 가라앉을 줄 모르고 있다. 오늘날 예수를 사랑하는 사람들 앞에는 선과 악의 투쟁은 항상 있다. 진리 안에서 선하게 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질타는 계속될 것이다.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들이 안가는 길  (0) 2011.06.21
휴일 풍경  (0) 2011.06.17
아침의 태양  (0) 2011.06.12
나의 기도  (0) 2011.06.09
재림교회는 文化가 없다.  (0) 2011.0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