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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학관 12/세월의 노래 나의 가락/一松 장지원 시인, 소설가편

노파 2016. 12. 15. 10:32

나의 문학관 12(계간 시 전문지 시세계 2016년 겨울호에 수록) 
세월의 노래 나의 가락

                                     


                                    一松 장지원 시인, 소설가편

                         





장지원 시인의 연보


아호: 一松 / 필명: 老波
詩人/소설가
영주 출생

명지대학교 사회교육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 가정의례학과 修了
삼육대학교 건축설계학과 卒業
헐리우드 에어브러쉬 메이크업(葬儀復元) 과정 修了
現代韓國人物史 2005년 등제(韓國民族精神 振興會 出刊)

2006년 월간 문예사조 시인 등단(산사의 가을, 봄, 등목)
2010년 월간 문예사조 소설 등단(길)
2010년 한국시대사전에 수록(을지출판공사 出刊)
2010년 소설가 등단(단편소설 길)
2013년 두물머리 시문학회 새미원 시화전 기획 및 총감독
2016년 한국문학을 빛낸 100인 선정(종합문예지 월간 문학세계)

(재)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재단 19년 근무
(社)韓國葬禮業協會 서울특별시지회 常務委員, 專務委員, 企劃委員長 역임
(社)韓國葬禮業協會 中央會 理事 역임
산업자원부 기술표준원, KS장례프러세스 표준화 연구 프로잭트 參與
한국문인협회 양평지부 회원
월간 문학세계 문인협회 회원
월간 문예사조 문인협회 회원
재림문인협회 회원
문학 블로그 ‘노파의 문학공간’ 운영:http://blog.daum.net/tank153


1. 문학의 기단



시인의 옆에 지인이 있었는데, 왜 하필이면 김삿갓 이냐?고 했다.
 난고는 1826년(순조23년) 약관 20세에 영월 동헌 뜰에서 시행한 백일장에서 장원으로 조선 문단에 등단을 하게 된다.
 시제가 ‘논정가산 충절사 탄 김익순 좌통우천’이다.
 그의 정의감은 ‘망군(忘君), 망친(忘親) 의 벌로 만 번 죽어도 마땅하다. 추상같은 탄핵을 하였다.
자신의 할아버지를 탄핵한 글이 장원 김병연의 시이다. 모두를 생략하고 그는 마지막 행에서 ‘너의 일은 역사에 기록하여 천추만대에 전하리라.’고 하였다.
 정의감과 두려움 없는 젊은 선비요, 시인의 기백을 보았다.
 2003년 여름 날 우연히 고향 가는 길에 영월 김삿갓 유적지를 들른 것이 내 인생의 시를 접하게 된 동기부여가 된 것 같다.
 그해 여름도 유난히도 더웠다. 문장가 김병연에 비해 그의 유적지, 묘는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유적지를 내려오면서 난고에 대한 생각으로 사뭇 일주일을 고민하며 사색 하게 된 것이 내가 시와의 인연이요 문인으로서의 출발이 되었던 것 같다.

시인은 배고픔도 잊고 삿갓 아래서 글을 쓴다
때론 사람들 가슴에
행복을 안겨주지 못하는 아픔도 있을게다
비꼬인 현실을 가격 하는 바람일 게다

시인의 글은
자신에 대한 절체절명의 삶일 게다

홀로 길을 가다
풀잎에 맺힌 한 방울의 이슬을 봐도
목을 축이기보다 마음을 씻고
소박한 붓끝으로 심령에 기록하는 영감일 게다

가슴을 풀어헤치고 어디든지 훨훨 날아
가벼운 몸은 언제나 친한 벗일 게다

시인의 머리는 깨어지는 오지병이 되어도
어디든 앉으면 글로 써 버려야하는 즉성인즉
운명의 삿갓을 썼기 때문일 게다
(장지원의 詩 ‘삿갓 시인’의 전문)
 
 주저하지도 않고 흔들리지도 않아 내 뱉고 갈기는 글귀는 훗날 시인의 문학적 기단이 되었다. 그가 죄책감에 사로 잡혀 삿갓을 평생 쓰고 유리방황하면서도 시대와 문화를 아울러 해학과 풍자를 거침없이 시로 표현함에는 부족함이 없었다고 해도 나에게는 잘못이 없으리라 한다.
 어쩌든 나도 사회생활에 미련하고 아둔한지라 힘들고 어려운 초년의 시절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스스로 유유자적 하여 시 공부를 하면 한이라도 풀어 볼 수 있으리라. 막연한 생각이 오늘의 시인 일송(一松, 필명,老波)을 세울 수 있게 된 것 같다. 애명으로 삿갓이란 이름도 얻어 즐겨 쓰고 있다.


2. 문학의 인연
 
 지혜로운 삶은 인연을 소중한 자리에서 잘 승화 할 줄 아는 사람이 아닌가 한다. 여러 위치와 여러 색깔의 인연이 우리들 사회를 구성하고 발전시키는 하나의 매개체임을 안다.
 내 생애에 특별한 인연은 문학을 통해 접한 숭고하면서도 소박한 만남이라 할 수 있다.
 그러고 보니 10년이 훌쩍 넘어 세월을 거슬러 유추해 보아야 하는 설렘도 있는 것 같다.
 내가, 시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를 때다. 당시 작품 활동을 왕성하게 하시던 채빈 선생님을 사부로 만나 나의 문학의 길을 터 준 게 오늘 나를 문단에 서게 한 특별한 인연이라 할 수 있다.
 시로 만난 인연은 시 인생의 연단의 시작이요. 담금질의 연속이었다. 남자의 자존심을 들어내 여자 선생님 앞에서 전전 긍긍 하는 시간은 퇴고를 통해 문학의 깊이를 배우게 하였고, 그 속에서 소리 없이 솟아나는 미려하면서도 신선한 생수는 신선의 놀음에 입문하게 해 주었다.
 나에게 3년은 문학의 기단을 하나하나 다듬어 놓는 문학적 건축의 일환이었다고 해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2006년1월 ‘월간 문예사조’에 작품을 내라는 사부의 말을 전해 듣고 몇날 며칠을 걱정과 고민으로 일관할 수밖에 없었다. 인연은 지혜로운 길을 열어 주었고, 내 이름 석 자에 시인이란 이름을 붙여 다시 태어나게 했다.


설악이 눈에 밟혀
백담사를 오르니
시간의 숨소리라
화답하는 화신이여
내 마음 붉게 그을려 오도 가도 못 하는데,  

벼랑에 걸린 노을
뜨겁게 포옹하자
노승이 짓궂게도 범종을 후려친다.
산새들 맨발로 달아나고,
뒹구는 갈잎깃털  

해탈한 풍경(風磬)이
문고리를 열어주면
설악의 진풍경도 좌정한 스님 모습
달빛은 창가에 걸터앉아 독경소리 듣자 한다.
(장지원의 등단작, ‘산사의 가을’ 전문)



2010년은 내 문학 인생의 가장 호사스런 한 해 이었다. 당시 ‘월간 문예사조’ 발행인 김창직 선생님을 만나게 되는 게 또 하나의 인연 이다. 이때까지 선생님과는 일면식도 없던 터라 놀라움이 컸다. 선생님은 ‘한국 시 대사전’에 나의 작품 다수를 추천해 주셨다. 선생님은 시인의 반열이라고 일축하면서 나에게 용기를 주셨다.


묵(黙)을 깨뜨려
소낙비 내리게 한들
낙산(洛山)의 바람만 같으랴

바위섬 파도 아래 귀 담그고
섬돌 구르는 산책 길 따라
차가운 등댓불 세워놓고
헝클어진 도시를 풀어 닻을 내린다.

소라 껍데기 안에 웅크려
낙산사(洛山寺)는 금 새 잠에 빠진다.
홀로
벗어 놓은 삿갓은 머리맡에 앉아
달빛에 긴 그림자 드러눕는다.

까만 밤이 하얗게 되자
정적을 깨뜨리는 목탁 소리 들리고
범종이 울려 울자
푸른 눈, 갈매기의 두 눈망울이 번득인다.

섟에 매인 뱃머리에 서서
낙산의 일출을 가슴으로 담는다.
(장지원의 詩 2010‘ 한국 시 대사전 ‘낙산사 일출’ 전문)



                                     좌측부터 : 박광호 김해숙 공혜경 박문재 한명희 장지원(2013년 세미원 시화전)


 훗날 내가 작품 활동을 왕성하게 지금까지 할 수 있었던 것은 두 분 채빈 선생님과 김창직 선생님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회고 해 본다.


3. 단편소설 ‘길’을 발표하다
 
 때는 1950년 가을 돌담 곁에 서있는 대추나무에 열린 열매가 소담스럽게 가을 햇살을 받으며 붉게 익어가고 있을 때, 고즈넉한 산촌 마을에 정적을 깨뜨리는 총성이 가을걷이에 바쁜 시골 아낙의 가슴을 휼고 지나간다.
 이놈의 세상을 한탄 하는 시골 아낙내의 한숨이 지는 해를 따라 서산으로 넘어가고 소백산 골짜기에도 어둠이 몸서리치는 전쟁의 공포와 함께 짙게 갈려 내려온다.

다른 두 길
 6.25 사변이 발발한지 벌써 넉 달이 차오른다.
 경상북도 최북단 태백산과 소백산이 만나는 조용하던 산골 마을 남대리 전쟁 통이라지만 여느 때와 별반 다른 게 없이 일상은 산속에 푹 빠져 흙냄새 초차도 드러내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이 마을 이장 댁 아주머니는 변함없이 오늘도 하루 종일 화전 밭에서 일을 하고 해 동무하여 어두컴컴한 부엌에 들어선다.
 난리 통에도 5일장에는 꼭 빠지지 않는 남편, 언제 올 란지 이장 댁 아주머니의 걱정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부석 장터를 가자면 메기재라고도 하는 마고령을 넘어 십리는 족하게 가야 하는데, 옛날엔 도적들이 자주 출몰하는 험한 길이기도 한 마고령에는 어둠이 무거운 눈꺼풀처럼 내리 덮이고 있을 때, 사립문 밖에서 인 기척 소리가 들린다.
 약간 소란스러움에 이장 댁 아주머니 저녁 짓다 말고, 생각 없이 입 속 말로
 “이게 무슨 소리지”
 이 때 낯선 남정네 의 목소리에 놀라는 이장 댁 아주머니
 “이장 동무네 있소”
 “이장 동무네 있으면 빨리 나오면 좋겠소.”
 투박한 이북 말투에 놀란 이장 댁 아주머니 떨리는 가슴을 진정이라도 하듯이 광창구멍으로 밖의 상황을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소스라치게 놀란다.
 시선이 멎는 곳에 석양에 두 눈알만 반작반작 빛나는 다섯 명의 사람들 누런 인민군복장에 별이 달린 모자를 눌러쓰고 총부리를 겨누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국군에 쫓기고 있는 괴뢰군이 분명하다.
 순간 이장 댁 아주머니는 두려움은 잠깐이고 부뚜막에 놓인 바가지를 보는 순간 여인네의 지혜와 재치가 번득인다.
 부엌 한곳에서 잠자고 있던 지혜를 붙잡는다.
 금방 길러온 물동이에서 찬물을 한 바가지 담아 재빠르게 밖으로 나선다.
 기다렸다는 듯이 살갑게 인사를 건네는 척 하는 이장 댁 아주머니
 “젊은이들 어디서 오는지는 모르지만도 여기까지 오느라 욕들봤데이”
 “우선 시원한 물 한 모금부터 마시면 좋겠데이”
 물바가지를 내미는 이장 댁 아주머니 얼굴엔 약간의 두려움과 소박한 인심이 생면부지 국군에게 쫓기는 인민군 젊은이들의 마음을 순간적으로 사로잡는다.
 그 중 한 청년이 물 담긴 바가지를 낚아채듯이 덥석 잡더니 벌컥벌컥 단숨에 들이키더니
 “야! 이레 참 맛있다야 동무네 날래 마시라야”
 물바가지를 옆에 서 있는 인민군 젊은이에게 건 내 주고는 힐 것 이장 댁 아주머니를 위 아래로 훑어보더니 입을 연다.
 “아지마이 동무 우리 며칠째 밥 못 먹었어야 밥 있으면 날래 좀 주라야”
 전쟁의 심각함을 한 마디로 말해주는 짤막한 말이 건너오고 긴장감은 잠시 수그러진다.
 이장 댁 아주머니는 긴장한 탓에 정신없이 밥을 지어 평상으로 차려 나오는데 아주머니의 다리는 후둘 후들 떨리고 있었다.
 그사이 전쟁에 지쳐있는 젊은이들 피곤에 곯아떨어진 젊은이들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군대에 동생을 보내놓고 전쟁을 맞는 이장 댁 아주머니 국군에 입대해 어디선가 이 전쟁을 치루고 있는 하나밖에 없는 남동생 생각에 잠시 가슴에 이슬이 맺힌다.
 그러다가
 “아니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젊은이들이 잡고 있는 총구멍을 보는 순간 정신이 버쩍 들어 마음을 다잡아 보는 이장 댁 아주머니 마음을 진정할 수 없는 이장 댁 아주머니의 입술은 핫 여름에 사시나무 떨듯 말마다 떨려 더듬거리고 있었다.
 “젊은이들 지 지 진지 가 가 가지고 왔으니 잠들 깨에소”
 이장 댁 아주머니의 기어들어가 모기소리 만한 작은 소리에도 젊은이들은 화들짝 깨더니 총을 잡고 사방을 경계하고는 누가 뭐라고 말 하지 않아도 밥상 앞으로 앉는다.
 “아주마이 동무 고맙습네다. 고맙습네다.”
 고맙다는 인사를 웅덩이에 돌 던지듯 던지고는 양푼에 수북한 밥을 허겁지겁 금세 말끔히 비운다.
 숭늉까지 모두 비운 청년들 급히 갈 곳이라도 있는 양 평상에서 일어서더니 그중에 한 사람이
 “동무들 시간이 없습네다. 빨리 서둘러야 해야”
 “아지마이 동무 고맙습네다.”
 “우리네 나쁜 사람 아니라요.”
 “우리네 감내다“
 젊은이들은 어둠이 짙게 내리는 마고령쪽으로 사라지고 아무도 없는 처마 끝엔 공포가 다시 짓누른다.
 가슴 한편에 찾아오는 적막감 등에서 흐르는 식은땀에 입고 있는 무명 적삼은 흠뻑 젖어 몸에 찰싹 달라붙는다.<중략>
 
피난길에서 만난 미륵


 피난 길 이틀째 간간이 날리는 눈발을 온 몸에 맞으며 걷는 걸음이 너무 무겁게 늘어지는 피난길이다.
 이장 댁 아주머니가 피난 인파에 섞여 안동군 도리원에  들어선다.
 해는 서산으로 넘어가며 바람은 더 차갑게 온 몸을 그냥두지 않았다.
 어둠을 몰고 오는 바람은 허름한 무명 옷깃마저 헤집자 한기에 온 몸이 꽁꽁 얼어붙는 것만 같다.
 제비원 암자에는 벌써 피난인파로 발 디딜 틈도 없었다.
 이장 댁 아주머니는 간신히 벽을 바람막이삼아 봇짐을 두르고 밤을 지낼 준비를 한다.
 저녁을 때우는 등 마는 등 차가운 밤을 가누는 전쟁의 공포를 가슴으로 보듬고 눈을 감아 보지만 두고 온 집 생각 게다가 오늘 저녁 태속에 있는 아가걱정이 앞서는 이장 댁 아주머니
 이때 난데없이
 “아이고 이래서야 안 돼지”
 비명 같은 한 할머니의 외마디 소리가 양수에 파문을 일으키며 아가의 귓가에 희미하게 들린다.
 다시 그 할머니는 말을 잇는다.
 “이 일은 하나님도 알고 부처님도 다 안다.”
 “암자 안에 누구 한 사람 나오소.”
 “이 엄동에 산모가 얼어 죽게 되었데이”
 “퍼떡 나오라카이”
 노파는 이장 댁 아주머니의 팔을 사정없이 잡아끈다. 이장 댁 아주머니는 노파의 손에 끌려 암자 안으로 들어선다. 채면도 없이 노파는 궁둥이를 들이밀며
 “좀 비키라 산모다. 안 보이나”
 “너들 눈이 삐졌나 그러는 게 아니데이”
 순식간에 생긴 일에 주변을 돌아보는 이장 댁 아주머니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다.  
 내 자리를 마련해 주고는 밖으로 획 나가는 노파의 뒷모습에서는 인자함이 묻어난다.
 이 일이 있은 후로 내내 그 노파의 얼굴을 보지 못하는 이장 댁의 마음이 그리 편치 못하였다.
 밤새 생각은 온통 고마우신 할머니 생각에 새우잠에다 뒤척이다 보니 날이 샌다.
 새벽이 문창호지 틈새로 아침을 밝힌다.
 이장 댁 아주머니의 마음은 간밤의 그 노파가 밤새 눈에 밟혀 마음이 편치 못하였지만 배속에 아가는 응급 결에 섣달 추운 밤을 그나마도 잘 보낼 수 있었다.
 아침 햇살이 추위를 가르며 바위에 깎아 세운 제비원 미륵의 얼굴을 조용히 씻겨 내리고 있었다.
 이 난리 통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햇살을 받으며 미소를 보내는 미륵상 그 미륵의 얼굴을 보는 순간 이장 댁 아주머니는 아! 하며 소스라치게 놀란다.
 “그 할머니!”
 “그 노파!”
 “틀림이 없어”
 그렇게도 똑같을 수가 없다는 생각에 눈을 의심이라도 하며 미륵을 한 동안 바라보는 이장 댁 아주머니 어젯밤 내 손을 잡아끌다시피 암자로 데리고 들어간 그 노파의 모습이 지금 나를 보고 있는 미륵과 너무나 똑같아
 분명했다. 이장 댁 아주머니에겐 한 없이 감사하고 고마운 은인이다.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이장 댁 아주머니를 보고 미소를 보내는 미륵
 “간밤 아무 일이 없어서 고맙구나.”
 어제와는 대조적으로 조용한 할머니의 목소리로 이장 댁 아주머니의 귓가에 들린다.
 이장 댁 아주머니의 눈가에는 뜨거운 이슬방울이 조용히 맺힌다.
 미륵의 자비가 햇살처럼 이장 댁 아주머니의 만삭된 배를 어루만지고 있음을 느끼는 이장 댁 아주머니
 전쟁의 아픔도 피난길의 고통도 이 순간만큼은 모든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 같았다.
 이장 댁 아주머니의 눈가에서 조용히 잔주름이 잡힌다.
 닫혔던 입술이 조금씩 달싹거리며 입 안에 말로 기도를 올린다.
 “미륵이시여 당신은 나의 신이시며 내 주인 입니더”
 “간밤에 나를 구해준 그 노파가 아니신겨”
 “이년에게 길을 보여 주시고 깨닫게 해 주시이소”
 “배 속에 아이를 위해서라면 당신의 길을 따르겠니더”


귀향 길


 이장 댁 아주머니는 혼자말로 중얼거린다.
 “참 잘 생긴 미륵이네”
 “내가 이렇게 훤칠한 미륵의 길을 따를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가야지”
 “배 속에 아이가 이 미륵을 닮았으면”……
 “아가야 이 미륵처럼 잘 생긴 아기로 태어나거래이”
 이장 댁 아주머니의 기도는 너무나 진지하기만 하다.
 아침 햇살은 미륵의 가슴에 비췄다가 그 온기로 이장 댁 아주머니의 가슴에 뗏장처럼 잔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인자하게 생긴 미륵이 이장 댁 아주머니의 가슴에 속삭인다.
 “지금은 네 배속에 자라는 아이만을 생각 하거라”
 천둥처럼 들리는 미륵의 말을 가슴으로 품는다.
 이장 댁 아주머니는 설래 봇짐을 정리하여 남편의 손을 끌다시피 제비원 암자를 빠져나온다.
 이장은 영문도 모르고 아주머니와 함께
 걸어온 길을 되돌아 다시 걷기 시작 한다.
 4일 만에 이장 댁 아주머니는 무거운 만삭의 배를 부둥켜안고 마고령을 다시 넘어 남대리에 돌아온다.
 간간이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살던 집에 다시 돌아온 이장 내외는 악몽 같은 4일의 피난길이 생각할수록 몸서리쳐진다.
 피난을 못가고 마을을 지키던 나이 많은 노인들이 반갑다고 손을 붙잡고 그간의 안부를 묻는다.
 “야야 몸은 괜찮았나.”
 “참말로 변고데이”
 “우짜든 잘 돌아 왔으니 됐다”
 그간의 피난길에 있었던 궁금증에 캐묻는 노인들의 얼굴은 며칠사이 부쩍 더 늙은 것 같아 이장 댁 아주머니의 마음도 그리 편하지 않았다.
 그 간의 피곤이 부음처럼 덮치고 이장 댁 아주머니는 고단함을 이기지 못하고 남편이 펴준 요부대기 위에서 이내 곯아떨어진다.
 코까지 고는 아내를 내려다보던 이장은 이제야 아내의 마음을 이해할 것 같다는 듯이 밖으로 나가더니 장작을 한 아름 안고 부엌으로 들어가 아궁이에 군불을 집힌다.
 이장들 집에는 오랜만에 찾아온 평온이 뜨거운 잉걸처럼 집 구석구석을 녹이고 있었다. 
 어느덧 두 달이 지난다.
 설이 지나고 이른 봄의 햇살이 아침을 녹일 때 이장 댁 아주머니의 몸엔 산통이 찾아온다.
 그 인자하던 미륵은 태를 가르고 양수를 터치며 떡두꺼비 같은 사내아이를 품에 안겨 준다.
 어찌나 울음이 우렁차고 큰지 온 동리가 경사가 났다고 기뻐하였다.
 출산의 고통도 잠깐이고 품에서 꼬물 되는 아들의 얼굴을 말없이 내려다보는 이장 댁 아주머니
 초치한 여인의 얼굴에 조용히 미소를 보내는 그 때 그 미륵이 하늘에서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아 이장 댁 아주머니의 얼굴은 안도감에 조용히 빛나고 있었다.<생략>
(2010년7월호 ‘월간 문예사조’에 발표한 ‘길’의 전문은 http://blog.daum.net/tank153/9에서 볼 수 있음)

 이 소설은 시인의 자전적 소설이기도 하다. 생전에 어머니의 이야기와 유년의 시절 살아온 배경을 소재로 구성해 각색한 처녀작이다. 나는 더 사실적이면서도 소박한 글을 쓰기 원한다. 그렇지 않으면 풍자와 해학을 통하여 사람들의 심장까지 파고드는 난센스의 기질도 발휘하고 싶기도 하나 번번이 현실의 높은 장벽에 막혀 좌절 하게 된다.


갈대의 흔들림을 보며
고뇌를 씹고
푸른 잎을 따 몸에 맞는 옷으로 마름질 한다
햇살 정배(淨配)한 여울에 서면
영혼의 날갯짓이 청조(淸操)하다
얽힌 내면의 가슴을 풀어 냇물이 되면
빈 가슴에도 임 들어올 자리가 난다
바람 불면
등 떠밀려 세상을 구경하고
허기져 외로울 때
필 심을 돋아 자신을 살핀다
굽이진 길을 돌아갈 때
청산 여울에 뒤틀린 장부를 꺼내
설렁설렁 흔들어 씻으면
햇살이 좋아 시인의 하루도 가뿐해서 좋다
(詩 ‘시인의 일상’ 전문)


4. 문학의 사상적 내공과 문인의 시야
 
 문학의 사상은 보이지 않는 내면적 세계에서 활동하는 보이지 않는 신의 손이라 할 수 있다.
 세기를 돌아보면 시대마다 해성같이 나타나, 험하고 외롭고 고독한 길을 걸으며 시대상을 자신만의 독특한 문학 사상으로 표현 하므로 암울한 사회의 등불과 같은 역할을 하였다.
 문학의 대가 톨스토이는 도스토예프스키와 함께 19세기 러시아 사실주의 문학을 이끌어 준 위대한 작가이다. 그는 평생 권위주의를 거부하고 인도주의 사상가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넘나들며 작품 활동을 했다. 특히 1869년 발표한 ‘전쟁과 평화’는 크림전쟁으로 인해 상처 입은 러시아의 명예와 영광을 회복하기 위해 쓴 대표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안토체호프는 ‘그는 모든 사람들을 대변한다. 그의 작품에는 문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이 담겨져 있다. 레닌은 ’러시아 혁명의 거울‘이다. 라고 극찬 하였다.
 문학적 사상은 이기심이 없는 자아부정에서부터 발단하여 내면의 세계를 평정하여 그 과묵한 에너지로 세상을 보는 작가의 시야가 받아들이는 수정체의 신비한 결정체라 할 수 있다.
 어떤 장르의 문학이든 사상적 메시지는 그 작품의 생명과도 같다. 소중함을 잘 갈고 가꿀 필요가 있다. 작가의 외로운 고독은 춥고 배고픔으로 진화할 수 있다. 물질의 원소가 변하지 않는 것 같이, 그 영혼의 본질은 변하지 않을 뿐 더러 변해서는 안 된다. 영혼을 환경이 제공하는 요구에 팔아서는 더욱이 안 된다는 것이 저자의 지론이기도 하다.
 사실주의 문학을 지향한다는 게 외옵고 고독한 길임은 분명하다. 문학사에서 보면 수만은 문단의 거장들이 자신의 문학사상을 작품으로 말하였다. 그들의 작품은 지금도 우리들 가슴에서 휴 화산처럼 때로는 활화산처럼 작용하고 있다.

 


시인의 붓 끝에서
구르는 이슬은
살만한 세상에서 보석 같아
고즈넉한 둥지 안에
한 잔의 찻물이 되어 채워지고

시인의 붓 끝에서
흐르는 먹물은
모진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상처 난 가슴을 씻어주는 소독약이 되어
아린 거품을 쓸어 지운다

그래서
시인의 일상은
바람 불지 않은 가지 끝에서도 흔들리고
시인의 삶은
늘 상 상념에 젖어 깃이 무겁다
그럴 때마다
시인의 가슴은
한 방울의 차가운 이슬이 되 붓 끝에서 뚝 떨어져 시가 된다
(장지원의 시 ‘이런 시인’의 전문)
 
 지금도 이런 생각을 해 보는 게 나의 고백이다. 한 방울의 이슬이 있다면, 작금의 갈증을 풀 것인가? 아니면 그 한 방울의 이슬을 붓 끝에 찍어 글을 남길 것인가? 묻는다면 여전히 나는 후자를 택하여 명료한 메시지가 담긴 글을 쓰는 여유로 삶의 마침표를 찍을 것이다.<문학세계>


☐ 장지원 시인의 대표작품


1. 가을의 고뇌
                                      

풀잎마다
세작(細作)을 세우고
촌각에 쓸어가는 바람
어림 반 푼어치도 없이 초미(焦眉)의 시련을 키운다
젊음을 팔아
하얀 영혼을 고르는 억새
쉬엄쉬엄 가는 길이 아니기에
목덜미엔 마른갈증이 있다
말라비틀어진 발목의 심줄을 끊는 콤바인
논바닥엔 유혈이 낭자하다
허무하게 드러낸 가슴
노란 들국화의 입술을 훔치는 바람
모두는 삭풍에 쫓기다
긴 삼동에 빠져
없는 듯
잊은 듯
숨죽여 살아야 하는
그 지긋지긋함 때문일까
이 가을이 더 붉게 물드는 것 같다


2. 갈라파고스의 상념
                                                  

뒤척이는
육신의 갈피 사이
잔잔히 비치는 검은 시울의 이슬
더 깊은 어둠에 빠져 허우적거릴까봐 두렵다

간간이 지나는 바람은
초승달 꼬리를 수평선에 감추어
너울에 밀려오는 긴 그림자
헐렁하던 숨통을 조인다

뜨겁던 밤도 식어
사구를 핥는 유령의 바다
파고까지 높다

적도의 붉은 햇살을 뭉개고
‘길 없는 길’로 영혼을 내 몬다

시각을 멈춰놓고
현실의 갈피 사이에서 모질게도 자라는 상념
여명을 깨우지 못하는 갈라파고스
너의 은밀함을 감추기에 바쁘다


3. 바람아, 바람아 세파를 부추기지 마라


바람은 무심히도 나뭇가지 흔들다
하늘에 전쟁을 부추길 때
우왕좌왕 하는 전사들
민망히도 충돌 하는 공포의 양상

땅은 이유 없이 전쟁터가 되어
물비린내
피비린내가 참혹하다
하늘을 원망하기보다 먼저 초주검이 되어도

이날도 성이 안차 불방망이 휘두르게 하는 바람아
천인공노하여 퍼 붓는 물
핥기고 지나간 곳곳마다
허탈한 덧에 걸린 마음들이 즐비하다

큰 바람 올려는 지
바람아
가지가 많아서인지 우리네 가슴까지 흔들어 어찌하라는 지
세파를 부추기지를 마라
      

4. 우리네 여름 이야기


땀에
범벅이 되어도
절어도
칠월은 살아 있어 여름을 말 한다

하루 해저무면
반딧불이 띄워 놓고
신록의 여름밤 소리를 청 한다

대 자연은 낮은 자세로 다가 와 그들만의 이야기로 들려준다.

견우직녀의 애간장은 똥별이 되어 지고, 아직도 건너지 못하는 은하가 넘쳐 장맛비를 뿌린단다.
칠월의 태양은 등짝에 소금을 뿌리고, 허기진 뱃구레에 꾹꾹 밀어 넣어 양껏 담아보는 늦은 식사, 때맞춰 피워 놓은 모깃불에 긴장된 신화가 머리를 푼다.
처마 끝에 떨어지는 빗물은 누구의 눈물 인지? 닦아도 훔쳐도 끝없이 흘러 한 치의 여유도 주지 않는 장마, 두 눈꺼풀엔 하루의 무게가 실려 검은 차양 받혀놓고 혼을 놓는다.
짧은 입담을 이어 여름 이야기를 더 하고픈 시간, 육신은 무아의 경지 앞에서 몰락한다.

쪽잠에 단꿈까지 꿔가며 우주의 미아가 되어 몽루병 환자처럼 입술을 실룩거려도 본다,
까끌까끌한 삼베 옷 솔기에 치여 잠을 설치는 게 다반사다.
이 여름이 없으면 우리네 삶도 없을 게다


5. 추국秋菊의 사신은 오는데


시절이 던져주고
찾아가는 길목
뒤엉킨
갈피를 찾기조차 힘겨울 때

보란 듯이
비행대를 끌고
추국秋菊의 사신으로 오는 잠자리 떼
이 길을 열어주는 뽀싱뽀싱한 하늘
몸짓에서 바람이 인다. 이 바람은 제격이어서 좋다

이 땅은 묵정밭이 되어도
한 치의 다랑이도 안 된다
이름표 걸고 버티는 우리네

다급한 전령의 목소리가
지경을 넘어
들리는 것 같아, 애 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