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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오일장

노파 2011. 7. 3. 10:36

오일장

장지원

 

 

내 고향 오일장엔 볼거리가 넘쳐났다.

소백산 국망봉이 눈앞에 우뚝 서 있고 사람들은 그 산속에 사는 곤충과도 같았다. 오 일마다 돌아오는 장날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골짝 골짝에서 쏟아져 나온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지게에 지고, 머리에 이고, 양손에 들고 비지땀을 흘리며 장으로 향하는 걸음은 마치 피난을 가는 행렬과도 같이 길게 이어졌다. 어쩌면 지겹고 고단한 삶의 탈출인지도 모른다.

 

마침 겨울 방학을 해서 어머니와 같이 장엘 가기로 했다.

어머니는 팥 두 되, 수수 한 되를 자루에 넣고 보자기에 싸시더니 방 한구석에서 무엇인가 끄집어내시더니 손안에서 궁체 보자기에 찔러 넣으신다. 어린 나에게는 그것이 무엇인지 무척 궁금했다. 그게 무엇이냐고 물어봤지만, 대답하지 않으셨다. 탑들이에서 소천(지금의 부석) 장터까지는 1.5km 정도의 거리라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다. 동구 밖을 나서면 큰 느티나무가 있다. 오늘따라 이 나무 위에 눈꽃이 하얗게 피어 장에 가는 사람들의 마음에 흥이라도 돋아주는 것 같았다.

 

시장 어귀에 들어서자 영주에서 들어온 중간 상인들이 머리에 인 어머니의 보따리를 낚아챈다. 어머니의 얼굴은 상기되고 미소가 도는 것 같았다. 팥과 수수를 팔고는 얼마의 돈을 받아 세는 어머니의 얼굴은 환하게 빛났다. 조그마한 천 쪼가리에 말아 싼 작은 뭉치가 어머니의 손에 남아 있었다. 아저씨가 “아줌마 그것은 뭐요?” 묻자 “이거도 사요?” 하며 펴 보인다. 그것은 어머니가 평소에 머리를 빗을 때 빠진 머리카락 뭉치였다. 아저씨는 전대에서 20원을 꺼내 어머니의 손에 쥐어 주셨다. 이번에는 어머니의 얼굴에선 약간의 부끄러움이 엿보였다. 나의 궁금증이 이렇게 풀렸다. 어머니가 알뜰하신 것이다.

 

시장 입구에 있는 큰 다리를 건너면 우측엔 소[牛] 전이 보였다.

200여 마리의 소들이 새 주인을 기다리며 잠시도 그냥 있지 않고 뺑뺑 돌며 소리를 지른다. 여기 있는 소 중에는 푸주 간으로 가는 소들도 있다. 어쩌든 큼직한 돈뭉치를 들고 좋아하는 어른들의 얼굴엔 희색이 만연하다. 길 건너편에는 개, 염소, 토끼, 닭을 팔고 사는 사람들로 정신이 없을 정도로 복닥거렸다. 이곳에서는 장날마다 닭싸움이 벌어진다. 어린 나에게는 큰 볼거리요 구경거리다. 닭싸움을 붙여놓고 사람들은 돈을 주고받는다. 이것이 노름이라고 했다. 닭의 눈도 사람들의 눈도 반짝반짝 빛이나 보였다.

 

어머니는 내 손을 잡아끌며 빨리 가자고 하신다.

엄청난 사람들이 둘러서서 약장수 구경을 하고 있었다. 나는 사람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니 뚱뚱한 약장수 아저씨가 “애들은 가거라.” 하여 얼굴이 빨개서 슬그머니 도망치고 말았다. 지금 생각해도 내가 너무 순진했던 게 사실인 것 같다. 쿵작거리는 북소리며 나팔 소리는 온 장거리에 울려 퍼지며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었다. 무슨 약을 파는지 궁금했다. 그 사람 다음 장날엔 맨 그 사람들이 동동구루무를 팔고 있었다. 약 장수가 아니라 온갖 것 다 갔다 파는 장돌뱅이들이었다.

 

어머니의 손에 끌려 고무신 때우는 곳엘 왔다.

어머니는 내가 신고 있는 신발을 벗으라고 했다. 신발 밑창이 뚫어진 것을 어떻게 아셨는지 때워 달라고 하셨다. 깡통을 찢어 못으로 구멍을 낸 솔로 쓱쓱 문지르고는 허연 풀을 바르고 그 위에다 자동차 튜브를 오려 붙이더니 신발같이 생긴 뜨거운 쇠틀에 조여 놓고 한참을 기다렸다 꺼내서 물에 넣어 식혀 내 발 앞에 툭 던지며 “아따 신어봐라.” 하셨다. 새 신발이 되었다. 그날 나는 무척 기분이 좋았다. 어머니는 20원을 주시며 고맙다고 하셨다. 그 돈은 어머니의 머리카락을 판 돈이었다.

생각할수록 어머니가 정말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곱게 잘 신어야 하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하기도 했다.

 

어물전이 서고 있는 골목은 언제나 사람들이 제일 많았다.

이것저것 둘러보고서는 꽁치 10마리를 사셨다. 우리 형제가 육 남매라 여덟 식구니 한 끼는 먹을 수 있겠거니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나는 자청해서 내가 들고 가겠다고 받아서 든 내 팔엔 힘이 들어가고 있었지만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의 시장에 사시는 큰아버지 댁엘 들렷다. 어머니는 꼭 빼먹지 않으시고 큰댁엘 들으신다. 오늘은 꽁치 다섯 마리를 큰어머니에게 덜어 주시고는 서둘러 집으로 향하신다. 나는 조금은 아까운 생각이 들었지만, 어머니가 하시는 일이라 어쩔 수가 없었다. 지금 생각하니 어머니가 정이 많으신 것이다.

 

당시 내가 아는 오일장은 사람들의 삶을 재충전하는 날이라고 생각한다.

뭐든지 내다 팔아 돈도 만들고, 필요한 물건도 사고, 기분도 전환하는 사람들의 얼굴엔 생기가 돌다 못 해 넘쳐흘렀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아내와 함께 그 장날에 가보았다. 그때의 그 장은 사라진 지 오래고 대형마트가 자리하고 사람들은 바쁘게 오갈 뿐 추억과 낭만은 찾을 길이 없었다. 이젠 부모님도 안 계시니 몸도 마음도 생각까지 멀어진 지가 오래되었다. 언제 지나는 길이 있으면 한번 들려서 보아야겠다.

 

201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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