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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時兆’에 푹 빠진 두 사람

노파 2011. 6. 6. 08:23

‘時兆’에 푹 빠진 두 사람

장지원

 

 

조선시대 영남에서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가는 선비 중에서,

그리 좋지 않은 가문의 자제들이 택하는 길이 있었는데, 그 길이 험하기로 이름난 죽령이다. 죽령에 비해 문경 세제는 양반집 도령들이 이용하는 과거 길이다, 주색의 유혹이 많아 주막마다 풍류의 가락이 끊이지 않았다. 도중에 정신을 잃어버릴 정도로 주색에 푹 빠져, 출발에서부터 인생의 싹을 망쳐 버리는 일도 많았다.

 

내가 처음 방 집사님에게 시조를 전해 준 것이, 1993년 음력으로 섣달 그음 날이었다.

구정 명절을 지내기 위해 우리 가족을 태운 승용차는 부석을 향해 치악산을 넘어 단양엘 도착했다. 지금 같으면 중앙 고속도로가 시원하게 뻗어 있지만, 그때만 해도 영남으로 통하는 길은 유일하게 죽령을 넘어야 했기에, 옛날이나 그때나 예사롭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날따라 폭설이 내리고 도로와 소백 준령이 흰 눈으로 뒤덮어 있었다.

근근이 단양까지 왔는데, 경찰이 죽령고개 입구에서 바리케이드를 치고 체인을 걸지 않은 차는 고개를 오르지 못한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수 없이, 고향의 명절을 지척에 두고 차에서 밤을 지새워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리고 밤을 지나기 위해 차의 기름이나 가득 채워야겠다는 생각에, 산 밑에 있는 주유소엘 찾아갔다. 그런 와중에도 우리를 따뜻이맞아 뜨거운 차 한 잔을 권하는 주유소 사장님과 사모님이 있었다.

 

지금까지의 여행의 자초지종을 서로 이야기하고,

내일 날이 밝으면 재를 넘어야겠다고 하자, 그분들은 자기들이 체인을 하나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내 차에 채워 주겠다며 들고나와 손수 채워 주고, 조심해서 죽령을 넘어가라고 당부까지 잊지 않았다. 눈길에 푹 빠져 중도에 명절을 포기해야 하는 순간에, 주님께서 귀한 인연의 끈을 맺어 주셨다. 눈길을 헤치고 죽령을 넘는 우리 가족은 연신 그 주유소 사장님 내외를 생각하며, 주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다음날 상경 길에 그분들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드리며, 보고 있던 시조 한 권을 건네주었다. 어쩐지 예수 믿는 사람들 같았다고 반가워하며, 우리는 금세 형제 같은 친구가 되었다. 그달부터 지금까지 매달 시조를 보내 주고 가끔 만나기도 한다.

 

그러던 중, 올해 정초에 고향 가는 길에 만나자는 전화하고, 나는 그 사장님, 방 집사님을 만날 수 있었다. 밥상을 가운데 놓고 방 집사님은 느닷없이 고백할 게 있다고 했다. “매달 시조를 보내 주어서, 잘 읽고 있으며, 얼마나 감사한지….” 고맙다는 말을 연거푸 하는 것이 아닌가. 사연인즉, 그가 다니는 장로교회에서도, 봉사하는 단체에서도, 교도소 방문 때에도 시조를 읽고 받은 감화와 은혜를 전파한다는 것이다. 그때마다 사람들이 “아멘, 할렐루야”를 외치며 예수님을 믿기로 서약한다고 말하며, 눈물까지 흘리는 것이었다.

“교도소 방문 때마다, 빼놓지 않고 시조를 들고 말씀을 전하면 힘이 나요.” 재소자들이 “방 집사님의 얼굴에서 빛이 난다”라고도 했다. 당신이 믿는 하나님, 그런 예수님이라면, 나도 믿겠다며 결심하고 서약한 이들이 1,300여 명에 달한다고 했다.

 

그는 겸손하게 “이 일은 내가 잘나서가 아니고 시조의 능력이라고” 고백하였다. 밥이 식는 줄도 모르고 시조를 통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 매달 빼놓지 않고 시조에 푹 빠진 그의 간증에 나도 푹 빠져 있었다. 나는 지금도 내 마음속에 간직하고 다니는 그때 그 체인을 떠올린다. 그의 손을 꼭 잡고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우리 모두를 감동케 한 것은, 시조를 통하여 지금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시조의 놀라운 사역에 고마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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