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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어느 외국인

노파 2011. 6. 2. 08:54

어느 외국인

장지원

 

 

먼저 마음속으로나마 이름 모를 외국인 노신사에게 감사를 드린다.

간밤에 서울 지역에 게릴라성 폭우가 쏟아진 아침 나는 평상시같이 출근길을 나선다. 직장인 삼육의료원 서울병원 정문을 지나 에덴동산을 올라온다. 정원을 열심히 치우는 작업복 차림의 카우보이모자를 쓴 중년의 외국인을 보게 됐다. 폭우에 쓸려온 흙이며 오물을 치우고 있었다. 생각지 못한 곳에서 다가오는 감동이다. 나는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였다. 한편으로는 동등한 입장과 위치에서 살고 있는 우리 사회가 외국인에게 비치는 우리의 모습이 어떨까 생각하니 우리들의 이기적이고 다듬어지지 않은 우리 생활의 문제가 아닌지 일단 의심을 해 보기로 했다.

 

겉옷의 땀이 흠뻑 배 있었다.

그 외국인은 이른 아침부터 봉사를 위해 시간을 할애한 것으로 짐작이 된다. 괭이와 삽질을 하는 손놀림은 노작의 익숙한 모습이었다. 들통에 흙을 담아 옮기는 그분에게서는 힘들 다기보다는 자신의 봉사에 만족해하는 모습을 읽을 수 있었다. 얼굴에는 구슬 같은 땀이 흘렀다. 그의 얼굴에서는 잔잔한 미소가 흐르고 있었다. 다음날 같은 시각에도 그 외국인은 잔디 깎는 기계를 밀고 다니면서 길게 자란 풀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동산의 주변 환경이 많이 달라지고 있었다. 분명 이 지역은 관리하는 주체가 있음에도 그분은 왜 더운 날씨에 힘들게 금 같은 시간을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는 것일까? 다가가 물어보고 싶은 충동도 있었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그의 무언의 행동 속에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 선진 국민의 진면모를 보았다. 조금 부끄러운 마음으로나마 감사하다고 표현하고 싶었다. 그 외국인의 집이 어딘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모른다. 그렇지만 그분은 우리를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나라가 좋아서 우리 중에 즐겨 사시는 분으로 다가서고 싶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자기 집 정원을 가꾸지 않고 방치해도 누가 뭐라고 하는 사람 없다.

국가나 단체에서도 이에 대한 시정이나 개선을 명령한다든지 벌금이나 벌칙 같은 제도는 아예 없다. 어떤 집에 들어가면 잡초가 뒤덮여 사람이 살지 않는 폐가나 다를 바 없는 느낌을 받을 정도의 집들도 많다. 내가 다니는 직장 사택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자기 집이 아닌 관사라는 데서 보는 이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늘 우리 곁에 가까이 살았지만, 그의 생활에 접근할 수 없었던, 그분의 삶 속에서 풍기는 우리에 대한 따뜻한 우정이 아닌가. 우리가 미처 느껴보지 못한 뒤늦은 감이 더욱 당황하게 한다. 비록 나라와 피부색이 다르고, 언어와 문화가 다르지만, 이 모든 것을 초월하여 좋은 이웃으로 길이 함께하길 바란다. 여기서 우리는 한 번쯤 우리가 추구하는 생활의 문화도 과감하게 손질하고 나설 수 있으면 좋겠다. 오늘 본 외국인 노신사는 내일도 모래도 에덴동산에서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2003.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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