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독백
老波
시인의 새벽은 앵두 알처럼 고운 이슬도 입안에서 굴리다, 삼키지 못하고
낯설어 살짝 뱉어 놓는다.
여린 마음에 비추는 햇살이 밝기 때문이다
시인의 아침은 한 끼의 식사를 위해 겉옷 벗어놓고 얻은 식감으로 소박한 상을 차리는 게다
한 낮의 시인은 가던 길 접어놓고,
서가(書家)의 장돌뱅이 되어 온종일 기웃거리다
서산(西山)에 걸어놓은 넝마를 걸치고 빚진 뱃구레에 달려 주막으로 끌려간다.
하루 해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시간을 돌려놓고 질펀히 앉아 세월을 마시며 거품을 문다.
시인의 잔에도 흐린 달빛이 길을 묻는다.
졸고 있는 호리병을 깨워, 이 밤 걸을 벗이라고 말하면 될까…
2012.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