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파의문학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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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기적소리/시 장지원

노파 2023. 7. 14. 04:40

 

기적소리

장지원

 

 

여명이 걷어내는 편에서부터

술렁이는 하늘

사계는 쥐 죽은 듯 고요하다

금방이라도 무언가 덮칠 것 같은 묘한 분위기가 아침 공기를 타다

지금의 직감이 내 어릴 적 일과 맥을 같이 하다니

 

40리 밖 내성에서 들려오는 기적소리

조용하던 집안이 갑자기 분주해지며

난데없이 비설거지에 어른들의 일손이 바쁘다

내 여섯 살 때 보릿단을 들고 엎어지는 바람에 왼쪽 엄지를 다친 게 지금도 불편하다

반나절이 지나기 전에 비구름이 몰려오고 하늘이 캄캄해 비를 쏟고 만다

그때 그 상황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다

 

집 주위 배수구에 낙엽을 걷어내 본다. 유비무환有備無患이라 했다

폭우에 안 좋은 기억이 있는 나로선 오늘 같은 날은 약간의 트라우마가 작용한다

어쨌든 가뭄을 생각하면 많은 비가 와야 하는데

오늘 아침 고요를 틈타 금방이라도 저 멀리 내성에서 기적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얼마의 시간이 흐르면 비가 쏟아지겠지

혼란한 마음을 다잡으며 비를 기다린다

 

2023.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