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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행복을 심는 분갈이

노파 2011. 5. 18. 13:55

행복을 심는 분갈이

장지원

 

 

5월의 햇볕이 며칠째 옥상 바닥을 뜨겁게 달군다.

겨우내 움츠렸던 화분의 꽃들이 완전히 활착한 것 같다. 주말에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가 있다. 지난해 파다 놓은 부엽토를 열어보니 적당하게 섞어 좋은 화분의 거름이 되어 있었다. 분갈이는 조금 힘든 작업이다. 신선한 흙과 거름으로 분갈이한다고 하니 꽃들이 제일 좋아하는 것 같다. 수년 공들여 키워온 녀석들이다. 올해에도 아름다운 자태와 예쁜 꽃들을 유감없이 피워 주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그 녀석들을 얼러본다.

 

아내와 함께 거름을 준비하고, 분갈이할 화분을 드러낸다.

조심스럽게 꽃들을 다루는 아내의 손이 오늘따라 더 힘이 있으면서 고와 보인다. 새끼를 친 문주란의 화분을 털어낸다.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다. 큰 어미 몸에 두 포기의 새끼가 독립을 기다리고 있다. 작은 몸에 실 같은 생명줄을 하얗게 뿌리 내려놓고 분양을 기다리고 있다. 이미 어미 몸에서 분리되어 있었다. 식물들에도 철학이 숨 쉬고 있어 인간의 지혜를 일깨워 준다.

 

자연의 섭리가 놀랍다.

아내와 나는 두 포기의 새끼 문주란을 새 화분에 쌍둥이처럼 나란히 심었다. 잘 썩은 부엽토로 연한 뿌리를 감싸듯 심고 물을 주었다. 지금은 어린싹이지만 우리에게 성장이란 신비로움을 선물할 것이다. 어미같이 자랄 태면 십 년은 자라야 할 것이다. 아내는 어미 문주란도 새 흙에 심으면서 생각지도 않은 말을 한다.

 

식물도 새끼를 치면 죽을 수도 있는데, 그래 맞는 말이다.

새끼를 퍼뜨리는 식물은 최고로 악조건에서 종족 번식이 이루어진다. 다년생 식물은 추운 겨울을 견뎌 내어야 봄에 꽃을 피우고 씨앗을 퍼트린다. 단년생 풀꽃은 북서풍을 감지하며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며 후손을 남긴다. 씨를 전하는 이유 중 하나가 자기 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 라는 메시지라면, 우리는 홀로 살 수 없는 그들의 새끼를 더 잘 키워야 할 책임이 있는지 질문을 던져 본다. 그러잖아도 나는 그에게 특별한 관심과 애정이 있다. 여러 번 이사하면서도 한 번의 사고도, 다친 일도 없이 여기까지 왔다.

 

가끔 문주란을 보며 대화한다.

난과에 속하는 열대성 식물이다. ‘예반초’라고도 하며 수선화과에 속하는 다년생 식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에 집단 서식하고 있다. 이는 더운 지방에서 해류를 타고 밀려와 수 군락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겨울철 관리가 까다로운 놈이다. 그와의 소통의 시간은 필수적이다시피 늘 열려 있어야 한다. 식물도 자신을 돌보는 주인을 좋아한다. 넓고 푸른 잎은 늘 신선하게 다가와 서슴없이 넓은 가슴에 안긴다. 잎마다 진녹색은 유연하면서도 활기찬 잎사귀는 늘 나에게 안정과 희망의 상징이 된 지 오래다. 가끔은 그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자랑스럽게 자신의 면면을 조용히 보여준다. 마치 여인의 전라와 같이 아름답다. 그와의 대화는 늘 진지하다. 그와 만남이 좋은 인연으로 오래 지속되기를 바란다.

 

따가운 태양 아래 분갈이가 끝나간다.

많은 화분을 종류에 따라 가지런히 정리한다. 긴 겨울이란 터널을 빠져나와 심호흡하는 꽃들이 자식과도 같다. 다음 주에 친정 오는 둘째에게 분양하고 싶다. 벌써 나는 아름답게 꽃 피워 줄 선망의 그림을 벌써 그려본다. 분갈이하는 날씨는 햇볕이 쨍쨍 나야 식물의 활착이 빠르다고 했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 하지만 자연에 대한 이해의 폭이 좁은 게 사실이다. 자연과 인간 둘은 공존하는 공간에서 서로가 인정하고 보호하며, 보존해야 하는 불가분의 관계에서 진리와 철학이 존재한다.

 

자연에 숨겨진 심오한 진리를 모두 찾아 이해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의 삶에 작지 않은 도움이 될 것이다. 미미한 일에 해당하는 분갈이다. 나는 아내와 함께 짧은 시간에 거대한 우주를 갈아엎은 것이다. 그러면서 잠시 철학이란 방석에 앉아 생각의 폭도, 깊이도 키워 보았다. 자연을 접하여 관리하는 일은 조물주가 내려주신 위대한 직분이라고 한다. 나는 그들을 돌아보고 관리하는 청지기다. 이들이 우리 가족들에게 베풀어 줄 아름다운 모습 속에 감춰 놓은 수많은 깨우침을 생각할 때 오월의 푸른 행복이 문주란의 튼실한 잎을 타고 사정없이 흐른다. 나의 가슴을 가득 채우고, 또 어디론가 흘러갈 채비를 한다.

 

201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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