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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42년 만의 수학여행

노파 2011. 5. 12. 08:51

42년 만의 수학여행

장지원

 

 

경주 불국사를 병풍처럼 바람을 막아 주는 토함산, 오늘따라 백두대간이 끝나는 산자락을 동해의 해풍이 사정없이 모라 쳐서 차갑기만 하다.

우리 일행은 몸을 녹이기 위해 불국사 경내에 있는 다원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투박하면서도 애교 넘치는 대구지방 애교 섞인 사투리가 언 가슴을 녹여주듯 다정하게 들려왔다.

“어서 오이소 예”하는 낯설지 않은 소리!

내가 20대 대구에서 군 생활을 할 때 대구 아가씨들의 ‘그래서 예, 안 그래서 예’를 붙여가며 이야기를 건네는 이름 모를 그녀 때문에 한 때 본능을 잊을 정도로 심각했던 옛날을 잊을 수 없이 떠 올리고 있었다.

요모조모 차를 설명하며 안내하는 젊은 아가씨 앞에선 내가 격세를 되돌릴 수 없음에 좌절할 수밖에 없어 작설차 한 잔으로 시린 가슴을 쓸어내릴 수밖에 없었다.

잠시 방황을 끊고 일행과 함께 마시는 따뜻한 차 한 모금은 겨울 속에서 느낄 수 있는 멋인지도 모른다.

 

그것도 잠시고 나는 초등학교 6학년 멈추었던 수학여행 그 시절의 단절된 추억을 끊어진 무성영화 필름처럼 이을 수가 있다면 나는 지금 그 작업을 하고픈 것이다. 생각을 접을 수 없어 일행을 따뜻한 다원에 팽개치고 44년 전에 멈추었던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불국사 경내를 들어서니 눈에 들어오는 석가탑의 아름다움이다.

탑신의 양식이 단조로우면서도 선의 흐름이 팔등신 미인을 보는 듯, 내 눈을 의심할 정도였다.

다보탑 역시 깊이 있는 화려한 건축물임에 틀림이 없다. 그 둘의 모습이 1500년이 지난 오늘에도 변함없어 그 자태에 매료될 수밖에 없어서 잠시 넋을 잃고 섰는데 낯선 사람이 다가와 꾸뻑 인사를 하는 바람에 사진을 찍는 사람들에게 미안하다고 인사를 했다. 한마디로 경주 불국사는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문화유산의 보고이다.

거기에다 전통 다원의 차 향기는 우리 일행과 내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으니 신라 천 년의 수도로서 조금도 손색이 없어 그 실상을 보고 확인하기 위해 오늘도 수많은 내, 외국 관광객과 순례 객이 줄을 잇고 있다.

 

급한 발걸음을 다시 승용차에 싣고 토함산 석굴암을 향한다. 차는 금세 나보고 내리라고 한다. 눈 덮인 토함산 중턱을 조심스레 10여 분을 걸으며 옛 생각을 하면서 코끝이 찡하는 내 어릴 적 가난했던 시절, 그러니 44년 전 초등학교 6학년 수학여행을 경주로 가는데 부모님이 여행비를 주지 않아 반 친구들은 가슴 벅찬 수학여행을 천년고도 불국사 지금 내 가선 이곳으로 떠나고 그날 나는 들판 밭 가 모퉁이에 혼자 앉아 서러워 눈물을 흘리며 훌쩍이며 배추 뿌리를 깨물어 먹던 생각을 하며 석굴암을 오르고 있었다.

그때는 왜 그리 서럽고 억울하고 분함에 울었던지 지금은 그때를 생각하며 회한의 눈물을 흘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단숨에 석굴암을 둘러보고 하산하는 나는 너무 기쁜 나머지 미끄러운 눈길도 사슴처럼 뛰면서 내려오는데 줄을 서 올라오는 관광객들의 얼굴을 보니 추위도 잊은 채 하나같이 여유 있는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였다.

동행한 이장님은 나를 보고 말을 거든다.

“오늘은 노파의 날이라”고 부추기며 기뻐해 주었다.

무지와 가난에 치달려 수학여행을 못 보낸 부모님을 용서하고 한을 이루고 기뻐하는 내 행동을 보고 신기한 듯 미소를 보내곤 한다.

나는 이장님에게 이렇게 화답한다.

“오늘은 내 생애에 참으로 기쁜 날입니다. 감회가 남다르고 정말 기쁘네요.”

 

그때 수학여행을 못 간 서러움에 얼마나 울고 울었던지 배가 고파 나도 모르게 허겁지겁 배추 뿌리를 정신없이 먹었던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 지금 생각하니 스트레스를 해소하느라 울고 먹지 않았는가 생각해 본다. 내 어릴 때,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다.

지금 나는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어린 시절의 어두웠던 기억을 찾아 치료하며 아파 싸매었던 매듭을 풀어 새롭게 돋아나는 속살을 보듯 갖고 가기에 거추장스러운 옛 기억들조차도 토함산에 묻고 떠나기에 마음은 한없이 가볍고 기쁘기 이루 말할 수 없다.

 

44년 전 멈추었던 수학여행 그때 그 자리는 허전하고 허기져 배추 뿌리로 채웠지만, 행운의 신은 나의 발걸음을 길게 뛰어놓고 최고의 한정식으로 만년 수학여행의 즐거움을 더해 주었다.

옆에서 같이 걷던 이장님이 隔世之感(격세지감)이란 말로 나에게 은근슬쩍 선물을 챙겨주는 게 아닌가. 귀경길 나는 격세지감이라는 말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내 나이 그리 많지 않아 하나님께 감사를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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