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동시장
장지원
경동시장은 언제 장이 서 언제 파장이 되는지 알 수 없다.
없는 게 없어 서울에서 유일하게 큰 시장이다
언제 나와 봐도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이 붐비며 활기가 넘친다.
이곳에 오면 사람 사는 냄새가 골목마다 물씬 풍기어서
가끔 삶이 가라앉을 때
내가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하다
나는 이곳을 찾을 때마다
여러 사람의 삶에서 지혜를 얻고
살면서 방전 당한 배터리를 공짜로 마음껏 충전도 한다.
오늘은 아내의 심부름으로 이곳에 왔다.
날 땅콩을 한 됫박 사고
호두도 일 킬로그램을 사니 임무를 마치는 순간
견물생심 충동구매의 유혹이
나의 발목을 사정없이 잡는다.
나도 모르게 이 골목 저 골목에 널린 물산에 눈길이 멈춘다.
둘째 딸이 오랜만에 다니러 온다는 소식을 받고
시간이 있는 나를 경동시장에 특사로 보내는 아내의 잘못이 크다.
여비를 넉넉하게 주질 않았으니
지금의 내 생각은 마음뿐인데도 또 다른 용기를 내 본다.
잠시 아내의 얼굴을 떠올려 보고
다시 딸의 모습을 번갈아 떠올려도 본다.
나도 모르게 지갑을 꺼내 뒤집어 보니
차비하고 조금은 남을 것 같아 욕심을 부려본다.
조금 전 지나친 가게로 걸음을 옮기는 마음이 무겁지 않아 신바람이 난다.
지금 나는 작은 행복을 찾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멸치를 한 봉지 집어 들고 꽈리고추도 한 봉지 사니
시장 골목이 꽉 차는 것 같아 마음속으로
‘자식들 까불지 마’
어깨에 힘까지 들어가는 게 아닌가.
경동시장엔 나같이 소박하고 여린 마음들이 내 곁에서 필요한 물건들을 사는 것 같아
더 활기가 넘치는 것 같다.
가족이 있어 내 작은 마음도 오늘따라 꽈리고추처럼 한없이 커지는 것 같아
오랜만에 아내의 타박도 멀리 던져버리고, 남편이요 아버지의 자존심까지 세워본다.
오월은 가정의 달
모든 아버지 어머니가 작으면 작은 대로 형편이 허락하는 대로
활기 넘치는 경동시장에서 소중한 가족을 위해 정성껏 마음껏 풍성하게 사랑을 담아갔으면 좋겠다.
삶의 배터리도 공짜로 충전해 오월을 더 자신 있고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우리의 경동시장이 되어 주어서 고맙다.
201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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