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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경동시장

노파 2011. 5. 11. 08:12

 

경동시장

장지원

 

 

경동시장은 언제 장이 서 언제 파장이 되는지 알 수 없다.

없는 게 없어 서울에서 유일하게 큰 시장이다

언제 나와 봐도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이 붐비며 활기가 넘친다.

 

이곳에 오면 사람 사는 냄새가 골목마다 물씬 풍기어서

가끔 삶이 가라앉을 때

내가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하다

나는 이곳을 찾을 때마다

여러 사람의 삶에서 지혜를 얻고

살면서 방전 당한 배터리를 공짜로 마음껏 충전도 한다.

 

오늘은 아내의 심부름으로 이곳에 왔다.

날 땅콩을 한 됫박 사고

호두도 일 킬로그램을 사니 임무를 마치는 순간

견물생심 충동구매의 유혹이

나의 발목을 사정없이 잡는다.

나도 모르게 이 골목 저 골목에 널린 물산에 눈길이 멈춘다.

 

둘째 딸이 오랜만에 다니러 온다는 소식을 받고

시간이 있는 나를 경동시장에 특사로 보내는 아내의 잘못이 크다.

여비를 넉넉하게 주질 않았으니

지금의 내 생각은 마음뿐인데도 또 다른 용기를 내 본다.

잠시 아내의 얼굴을 떠올려 보고

다시 딸의 모습을 번갈아 떠올려도 본다.

 

나도 모르게 지갑을 꺼내 뒤집어 보니

차비하고 조금은 남을 것 같아 욕심을 부려본다.

조금 전 지나친 가게로 걸음을 옮기는 마음이 무겁지 않아 신바람이 난다.

지금 나는 작은 행복을 찾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멸치를 한 봉지 집어 들고 꽈리고추도 한 봉지 사니

시장 골목이 꽉 차는 것 같아 마음속으로

‘자식들 까불지 마’

어깨에 힘까지 들어가는 게 아닌가.

 

경동시장엔 나같이 소박하고 여린 마음들이 내 곁에서 필요한 물건들을 사는 것 같아

더 활기가 넘치는 것 같다.

가족이 있어 내 작은 마음도 오늘따라 꽈리고추처럼 한없이 커지는 것 같아

오랜만에 아내의 타박도 멀리 던져버리고, 남편이요 아버지의 자존심까지 세워본다.

 

오월은 가정의 달

모든 아버지 어머니가 작으면 작은 대로 형편이 허락하는 대로

활기 넘치는 경동시장에서 소중한 가족을 위해 정성껏 마음껏 풍성하게 사랑을 담아갔으면 좋겠다.

삶의 배터리도 공짜로 충전해 오월을 더 자신 있고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우리의 경동시장이 되어 주어서 고맙다.

 

201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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