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
老波
산책길에서
상쾌하던 바람이 코끝에서 아리다
어림없이 재채기에
산새 놀라 달아난 뒤
오감(五感)엔 비상이 걸린다.
전장(戰場)을 빌러준
패잔병의 풀린 신발 끈조차 무겁다.
시력조차도 희미해 지끈지끈 아픈 이마
몸살 몸서리치는 모공의 거친 숨소리
반나절도 버티지 못해 고주박처럼 쓰러진다.
편지를 쓸 수 도 없고
좋은 음악을 들을 수 도 없다
책을 읽을 수 도 없고
머리 둘 곳 없어 홀로 하늘을 오가다
폐허더미에 피어오르는 시푸른 연기처럼
질펀한 휴지더미에 묻혀
산들다* 겨울나기
아까운 하루해 빠진다.
* 산들다: 바라던 소망이 틀어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