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山寺)의 가을
老波 張志源
설악이 눈에 밟혀
백담사를 오르니
시간의 숨소리라
화답하는 화신이여
내 마음 붉게 그을려 오도 가도 못 하는데,
벼랑에 걸린 노을
뜨겁게 포옹하자
노승이 짓궂게도 범종을 후려친다.
산새들 맨발로 달아나고,
뒹구는 갈잎깃털
해탈한 풍경(風磬)이
문고리를 열어주면
설악의 진풍경도 좌정한 스님 모습
달빛은 창가에 걸터앉아 독경소리 듣자 한다.
-등단작-
등 목
老波 張志源
내 사랑 지켜온 뜨거운 여름
모시적삼 꺼내놓고
임 기다린다.
노을 속에 속살을 들러내듯
땀에 비벼진 허름한 하루
베여진 이마에 일기를 쓰고
긴 그림자
어깨에 늘어질 때
검게 태워 하루를 영글게 한다.
하루의 역함은 등목에 쫓겨 가고
손끝에 밀려오는
세월의 두루마리
하나 둘 별을 뿌려 눈을 뜨게 한다.
어둑히 마음에도
이슬이 맺히고
은하수 풀어 폭포수 쏘다내니
엄살 피우는 향기 담장 안에 진하다
여전히 손은
사랑을 훔쳐 내고
달뜨자, 바가지 안에 임 얼굴 드리우니
가슴에 행복이 부풀어 오른다.
-등단작-2005.7.8
봄
老波
양지 녘 몸 푸는 소리에
겨울이 비켜서면
갯버들강아지의
해묵은 숨비소리
입춘 녹아 흐르는 물속엔
배시시한 얼굴.
솔기로 부는 바람이
허울 저만치 벗어놓자
뚫어진 문구멍에
알몸이 드러난다
창살은 지는 해 붙잡고서
놀다 가라 하는데
우수가 봄을 그려
속달로 부쳐준다
몇 밤을 달려 왔는지
때 묻은 봄 내음이
수줍은 기색도 없이
활짝 웃고 나온다.
-등단작-2005.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