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밑에서 주워왔다” 원조··· 순흥 청다리 또다른 슬픈 역사
[중앙일보] 입력 2020.11.24 캡쳐
“엄마 난 어디서 태어났어?”
“넌 다리 밑에서 주워왔어.”
어렸을 적 엄마의 농담에 안 울어본 아이가 없었을 테다. 왜 세상의 엄마는 하나같이 제 아이를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며 놀렸을까. 그 문화적 원형 나아가 역사적 맥락은 무엇일까. 있기는 할까.
놀랍게도 경북 영주시 순흥면에 그 현장이 있다. 아기를 주워 와 키운 다리. 소백산에서 발원한 죽계천이 소수서원과 선비촌 사이를 흐르는데, 이 사이에 놓인 청다리가 바로 전설의 진원지다. 순흥에는 실제로 청다리 밑에서 아이를 주워 와 키웠다는 기록이 전해온다. 순흥 청다리가 팔도의 온갖 다리로 확산했다는 얘기인데, 여행작가 이종원(54)씨는 순흥 청다리를 “전 국민의 심정적 고향”이라고 농 삼아 이른다.
단종 애사 외전
오늘날에는 짓궂은 농담거리로 쓰이지만, 청다리의 기원은 참혹한 역사를 담고 있다. 수양대군(1417~68)이 단종(1441~68)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르자 수양대군의 동생 금성대군(1426~57)이 소백산 남쪽 자락 순흥으로 유배를 온다. 금성대군은 유배지에서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 발각돼 죽임을 당한다.
모의에 가담한 사람만 죽은 게 아니었다. 애먼 순흥 사람 수백 명이 청다리 아래로 끌려가 죽임을 당했다. 순흥 30리 안에는 사람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지경이었으며, 청다리 아래의 피가 죽계천을 따라 10리 밖 마을까지 흘렀다고 한다. 피가 비로소 멈춘 마을, 순흥면 동촌 1리는 아직도 ‘피끝마을’이라고 불린다. 1457년의 참상을 역사는 정축지변(세조 3년)이라 이른다. 영주시가 그 뒷이야기를 기록했다.
‘수백 명의 선비와 가족이 모두 희생되었다. 그때 살아남게 된 어린아이 몇을 관군이 서울로 데려다 키운 데서 자연스레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는 말이 생겼다. 어두운 그늘에서 명예회복 받게 되길 바라는 의미로 다리 비명은 ’제월교(霽月橋)‘라 부르게 됐다(영주시, ‘선비의 고장 영주’ 53쪽).’
제월교는 ‘제월광풍(霽月光風)’에서 비롯된 말이다. ‘장맛비가 멎은 뒤 맑은 하늘 같은 기운’이라는 뜻으로 훗날 명예를 되찾는다는 의미가 더해진다. 풍기 군수로 부임했던 퇴계 이황(1501~70)이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지금 다리 옆에 서 있는 비는 재현품이고, 숙종 36년(1710) 다시 세운 비가 영주박물관에 있다.
되살아난 은행나무
정축지변이 순흥 땅에 남긴 상처는 깊었다. 세조는 수많은 순흥 사람을 죽였고, 순흥을 폐부(廢府)하고 현(縣)으로 강등시켰다. 이후 긴 세월 순흥은 잊힌 땅이 되었다. 순흥 사람이 외려 역사의 참상을 되새긴다. 금성대군 신단(사적 491호)에서 여전히 제사를 올린다. 신단 근처 은행나무도 그날을 증언한다. 권화자(60) 영주시 문화관광해설사의 설명을 옮긴다.
“잎이 오리발처럼 생겨 압각수(鴨脚樹)라 부르는 은행나무다. 어릴 적부터 ‘순흥이 죽으면 이 나무도 죽고 나무가 살아나면 순흥도 살아난다’는 말을 들었다. 정축지변 당시 나무도 불에 타 죽어 버렸는데, 1682년 순흥부가 다시 설치되자 잎이 돋아났다고 한다. 1200년 묵은 은행나무치고는 키가 작은 편인데 한 번 죽었다 살아났기 때문이다.”
순흥의 향토 음식 메밀묵도 그날의 역사에서 비롯된다는 설이 유력하다. 갑자기 수많은 남자가 죽는 바람에 순흥에 농사지을 사람이 거의 남지 않았다. 그래서 아무 데서나 잘 자라는 메밀을 키웠던 게 순흥 메밀묵의 기원이 됐다고 한다.
순흥 청다리에 관한 다른 야사도 내려온다. 소수서원에서 기숙하던 유생들이 청다리 건너 저잣거리에서 마을 처녀들과 놀다 아기가 생겼고, 그 아기를 청다리 밑에 버렸는데 마을에서 아기를 주워 키웠다는 줄거리다. 영주문화연구회 배용호(69) 이사는 “유림을 비하하려는 일제의 거짓말이라는 해석이 유력하다”고 설명했다. 소수서원은 1543년 풍기 군수 신재 주세붕(1495~1554)이 세웠다. 정축지변이 일어나고 86년 뒤 일이다.
영주=글·사진 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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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원
첫 눈이 오는 날
설렘 머리 이고 떠나는 시간여행
먼지 앉은 책갈피 속
잠자던 기차표 한 장이 곰삭은 가슴을 흔들어댄다
풍기역 플랫폼을 바람이 거칠게 쓸어간다
대합실 구석에 쭈그리고 앉은 시간은 세월에 그을린 민낯 그대로
후미한 사투리가 졸던 추억을 깨우기에 충분하다
길섶에서 길게 누워 있는 선비 촌
한 세기 죽계 수 흐름을 지켜보는 소수서원
이 시절 앞에서 잠시 허청대는 시간
한나절 더 걸어 유년의 추억이 숨 쉬는 부석사를 가다
가파른 백팔 돌계단 오르면
세속에 찌든 마음
가뿐히 내려놓을 수 있는 무량수전이 있어 좋다
첫눈이 내리는 날
추억을 더듬어 찾아 나온 길
간간이 흔들리는 풍경소리 시간이 멈춘듯하다
2019.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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