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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영장산(靈長山)을 오르는 사람들

노파 2011. 5. 7. 13:02

 

영장산(靈長山)을 오르는 사람들

장지원

 

 

초봄의 따스한 햇살이 안내하여 산책길을 나선다.

필자가 성남에 온 지도 벌써 10일이 되는 날이다. 그동안 자잘 구릿한 일들을 하다 보니, 주변 환경을 접할 시간적 여유 만들지 못하였다. 조금은 늦은 감이 들었지만, 지금이 기회라는 생각 끝에, 점심을 챙겨 먹고 집을 나선다. 오늘은 계획대로 성남의 영장산을 꼭 접수하리라. 결의 찬 생각에 좋은 결과를 기대하며 가벼운 발걸음을 옮겨 본다.

 

초행길이라 아는 길도 물어 가라고 했다. 지나가는 노신사의 앞을 막고, “영장산을 갈려 합니다. 어느 쪽으로 가면 됩니까?” 길을 묻는다. 나의 몰골을 훑어보더니 손짓으로 수정 구청을 가리키며 친절하게 일러주는 그분의 인품이 돋보였다. 좋으신 시민을 만난 것 같아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았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보폭을 넓혀 여유롭게 산을 오른다.

 

산을 찾는 사람들의 기대 심리란 어떤 것일까.

오를 때의 각오와 내려갈 때의 생각을 어떻게 합리적으로 조절할 수 있을까. 이를 도외시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생각의 화두를 던져 본다. 20분 정도 정상을 향해 오르는 길섶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을 접하게 된다. 지난여름 폭풍에 쓰러진 나무들 사이로 빠끔히 등산로만 뚫어 놓았다. 25년 정도의 수령을 가진 나무들이 즐비하게 쓰러져 있다. 누구의 눈길조차도 받지 못하고 백골이 되어가고 있다. 사람으로 말하면 한 참 혈기 왕성한 나이에 얼마나 고단했으면 견디지 못하고 몸을 던졌을까. 오늘 우리 사회의 어두운 현실을 생각나게 해 가슴이 멍하다. 산 중턱쯤 올라가는데 눈앞에 나타난 다랑이 밭들이 길을 막아선다. 누구의 것인지도 모를 정도로 일구어 놓은 손바닥 같은 채소밭, 그 경계를 앞다투어 높게, 쓰러진 잡목들을 잘라 지경을 쳐 놓은 모습을 보고 많은 상념에 잠기게 되었다.

 

영장산 공원으로 알고 오르는 필자에겐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지난 5, 60년대 화전을 연상케 하는 웃지 못할 그림을 보고 있다. 순간 막다른 골목에서 탁류를 만난 황당무계함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순간 부끄러운 몸부림도 쳐 보았다. 누구나 운동 삼아 또는 심심풀이로 채소를 가꾼다고 하겠지. 어느 사람도 다른 눈으로 보지 않고 좋게 봐 줄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내 생각은 매우 다르다. 어쩌면 우리는 아직 정신적으로 빈곤과 고단한 삶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문제의 정답을 기술할 필요가 있어 질문을 던져 본다.

 

자연에서 고단한 삶을 내려놓은 푸르던 나무들, 그들 유 혼이 쉬지도 못하게 사지와 몸통을 몽땅 잘라 인간의 고단한 삶의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 이즈음에 우리는 다시 한번 냉정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라고 한 법정 스님의 말이 생각난다. 다른 말로 바꾸어 말하면 산은 산다워야 하고, 물은 물다워야 한다. 사람은 사람다워야 한다. 성찰에서 비롯된 말이 아닌가. 그렇다면 공원 안에서 생각 없이 작디작은 채소밭에 목숨을 걸 그것까지는 없지 않은가. 시민들의 대범한 생활 문화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화두를 던져 본다.

 

나지막한 영장산 정상에 오르자 성남시에서 시민들을 위해 준비한 운동 기구들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낮이라 그런지 대부분의 연세가 60을 넘긴 어르신들이 대부분이다. 왕년 생활전선에서 힘들었던 짐들을 내려놓고 조금은 여유로운 모습들이 보기가 좋다. 영장산, 큰 신령이라는 이름을 지니고 숱한 세월을 지나왔다. 산 이름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를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오늘, 이 산을 오르면서 보고 느끼고 생각했던 것들을 필자의 말로 하고 싶다.

 

개인이 됐던, 사회가 됐던, 산이 됐던, 조화와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 산을 오를 때와 내려갈 때, 한 사람의 인간다움은 한결같아야 한다. 산은 산으로서의 모양과 기능을 다할 수 있도록 잘 보존되어야 한다. 그 누구도 흠집을 내서는 안 된다. 인간의 고단함을 자연에 전가해 사사로운 이득을 취해서도 안 된다. 본의 아니게 허물고 피곤하게 해서는 더 안 된다. 자연도 말은 못 하지만 피곤하고, 쉬고 싶을 때가 있다. 영장산, 그 이름이 말하고 있듯이, 이 산을 오르고 이용하는 사람들 모두가 신령한 깨우침이 있기를 기대해 본다.

 

201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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