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파의문학공간

https://tank153.tistory.com/

노파의문학공간

수필

홍, 유릉에서

노파 2011. 6. 1. 07:43

홍, 유릉에서

장지원

 

 

신록, 그 계절의 문턱을 넘어 왕릉에 선다.

햇살은 소나무 숲 사이를 바쁘게 오간다. 발자국 하나하나도 놓치지 않고 땅바닥에 기록한다. 홍, 유릉은 역사가 쉬는 공간답게 엄숙하면서도 질서정연하게 배열된 정원을 보는 것 같다. 그 시대의 주인을 섬기고 배알하는 듯 착각마저 들 정도로 사적 207호인 금곡릉의 정취는 아름답다. 오월의 태양은 수고하는 모두에게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따뜻하면서도 의미를 부여하는 손길로 어루만지고 조용히 보듬어 주는 것 같다.

 

매표소를 들어서는 순간 잠시 고개를 숙여 묵념한다.

왕릉을 찾는 최소한의 예를 갖추기 위해서다. 산새들의 소리는 궁중 제례악을 연주하는 것 같았다. 주변에 서 있는 크고 작은 소나무들이 걸음을 멈추고 왕의 행차를 시립하는 것도 같았다. 경내는 조용했다. 오월의 태양만이 대한제국의 마지막 유궁을 지키고 있었다.

 

홍릉의 주인은 조선의 26대 고종황제와 명성황후이다.

유릉은 27대 순종 황제와 순명황후, 순정 황후의 능이다. 또 하나의 능이 있는데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영친왕의 능이 있다. 이를 통칭하여 지명의 이름을 붙여 금곡릉이라 부르기도 한다.

 

홍살문 앞에 서서 잠시 대한제국의 마지막을 생각한다.

홍살문 안으로 참도가 눈에 들어온다. 왕도와 신도 양쪽에 서 있는 석물들이 침전을 내왕하는 사람들을 호위라도 해 주는 것 같아 이채롭기까지 하였다. 파란 잔디가 이불처럼 덮여 지나가는 실바람에도 당시 대한제국의 숨결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특히 명성황후의 묘역에서는 당신의 넋이 쉼 없이 내왕하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기도 했다.

 

150여 년의 시간이 흘러 오늘을 돌아본다.

이제는 그때의 억울함과 울분을 삭이시고 편히 주무셔도 됩니다. 끝없는 우리 민족의 집념과 투지가 오월의 파란 잔디 위에서 자라고 있는 것 같았다. 시간과 공간을 이동하며 옛날과 지금을 곰곰이 생각해 본다. 문화유산은 과거를 잊고 사는 우리에게 어떤 존재일까? 자라나는 세대에게는 교육의 장이 되고, 때로는 사색의 공간으로도 잘 사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 홍, 유릉 위에 짙게 물드는 녹음 사이로 하루해가 붉은 깃을 뽑아, 그때를 잊지 않고 기록하고 있는 것 같았다.

 

2011.5.26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교회는 공회전하면 안 돼  (0) 2011.06.03
어느 외국인  (0) 2011.06.02
기다렸던 안식일  (0) 2011.05.30
꿈 이야기/2011.5.22  (0) 2011.05.23
흥선 大院君의 정치  (0) 2011.0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