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바지
장지원
지난 해
여름바지
장롱에서 꺼내 옷걸이에 걸다
요즘 티는 놈 하나 들이고보니
이놈이 내 치부를 드러낼 줄 미처 몰랐다
해를 두고 제 멋대로 자라 굴곡진 세월
금방 지진이 지나간 것처럼
혼란스러움이 눈에 거슬린다
줄자를 꺼내 놈들의 키 재어보니
102 · 100 · 98 해를 두고 거꾸로 자라
도토리 키 재기라도 할 테면 난처할 것 뻔하다
서둘러 혼 내 잡는 일 밖에 없다
두고 보기 힘들어 수선 집으로 차출을 가는 시간
예견된 운명
싹둑싹둑 잘려나가는 지난 세월
주섬주섬 모아 쓰레기통에 버리면서 하는 말
‘지난 세월에 미련 두면 스타일 구긴다.’
되돌릴 수 없이 잘라버리고 일상으로 돌아오는 길
여울에 비치는 98의 작달막한 모습
수선 집 아저씨의 말 같이
잔물결 속에서 조금씩 흔들리며 자리 잡아가겠지
20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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