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파의문학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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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종합문예지 문학세계' 2018년12월호에 「동행Going Together」발표

노파 2018. 12. 6. 11:55

<제13회 세계문학상>

 소설부문 대상(장지원) 수상작 동행Going Together

'월간종합문예지 문학세계' 2018년12월호에 동행」 발표.





소설부문 대상 당선작 동행심사평

 

 

소설부문 대상으로 장지원 소설가의 동행을 선정한다.

동행은 젊은 청춘 남녀의 연애를 주제로 삼아 순수한 사랑을 그려내고 있다. 대학에 입학하고 열렬한 사랑을 꿈꾸었던 남자와 연결되어 꽃피우려던 시도가 중학교 때부터 알던 남자의 여자 친구가 유학에서 돌아오면서 겪는 갈등을 그려내고 있는 청순미 넘치는 싱그러운 추억을 되살려 내었다. 너무 어린 나이에 성의 모든 것을 알고 나이에 걸맞지 않게 사랑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저지르는 요즘 세태를 비판하는 듯 새롭게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한 동작마다 담고 있는 내면의식의 변환을 예민한 감각으로 묘사하여 스토리 전개로 하여금 독자들을 이야기 속으로 빠지게 한다. 시대의 흐름에 제동을 걸어 반성하게 하고 정상적인 궤도로 바로잡고 싶은 의도를 추억을 바탕으로 탄탄한 문장으로 소화시켰다.

 

 

심사위원장 : 채수영

심사위원 : 김종삼 박영교 장윤우 도창희 윤형복 류보상 김천우 윤제철 진전 최병영



당선 소감/지난여름의 기념비

2018년 여름은 대한민국 기상관측 이레 111년만의 가장 더운 한 해 이었던 것 같다.

섭씨 40도를 오르내리는 살인적인 더위는 사람들의 삶에 많은 시련을 지워주었다. 필자가 사는 강원도 봉평도 예외 없이 더위는 기승을 부렸다.

지난 삼복지간 여름은 필자에게 특별한 시간으로 그간 기획했던 소설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생각에 더위를 서제에 불러 앉혀놓고 작심한 작업에 들어갔다. 원고를 쓰고, 다듬고, 현지를 답사하는 일련의 과정은 허투로 쓸 수 없는 순간들이었다. 한 때는 더위와의 싸움, 체력과의 싸움, 자신과의 싸움은 얼마나 치열했던지, 순간을 돌이켜 보면 꿈만 같은 시간들이었다. 3(‘동행’, ‘토사곽란’, ‘탑바위의 전설’)의 소설을 마무리하고 아내와 다시 찾아 나선 현지답사의 길은 소설 속에 주인공으로 감회가 새로웠다.

혹자가 글이란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라고 묻는다면 시련이 피우는 꽃이라고 말 해주고 싶다. 나의 등단의 동기도 그랬다. 일찍 돈벌이를 접고 그 빈 공간을 늘 글로 채웠다. 조금 허하고 조금 빈 한 게 글을 쓸 수 있는 최상의 조건이라는 것을 알기에 이를 즐긴다기보다 소중한 기회라고 생각 한다.

기독교인으로써 앞으로도 나의 일상에 글 쓰는 작업은 제 이의 신앙이다. 글 속에서 삶의 의미를 담고 글을 쓰면서 안식을 찾아가는 순례자의 길이 되길 소망한다. 짧게나마 당선 소감을 말 할 수 있게 기회를 주신 고마운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감사합니다. 하보우아살!



동행Going Together


오늘 마지막 수업이 끝나기 무섭게 선영은 무거운 가방을 들고 급히 강의실을 빠져 나간다. 오늘따라 말쑥한 차림에 중요한 약속이라도 있는 듯 평상시 보다는 멋도 내고 시간을 주름잡듯 서두르는 것이 예사롭지가 않다.

 

선영이 현관을 막 나서려고 할 때 갑자기 굻은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진다.

미처 우산을 준비하지 못한 학생들이 현관에서 소나기를 피하기 위해 조밀하게 모여들었다. 선영이 그 틈에서 시계를 드려다 보고 있었다. 태민이와 데이트가 있는 날이다. 일분 이분이 선영에겐 중요한 시간이다. 여름 날씨조차 그에게 도움이 안 되다니 하늘이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혼자말로

큰일 났네. 이럴 줄 알았으면 마지막 강의를 빼 먹을걸

선영의 얼굴에 수심이 소나기를 퍼붓는 검은 하늘처럼 안색을 변화시키고 있었다. 선영은 조금씩 초조하기 시작한다. 가슴을 진정이라도 하듯이 야속한 하늘을 쳐다보며 마음속으로 주문을 외워본다.

신이시여 이 비를 그치게 해 주소서

비는 그칠 기미가 없이 줄기차게 퍼붓는다. 아스팔트위에 수많은 물방울을 만들며 세차게 쏘다진다. 우산이 없어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리는 학생들의 수자가 늘어만 간다. 맙소사 이제는 발 들여놓을 틈조차 업어 비리한 땀 냄새와 입김이 선영의 비위를 건드리기 시작 한다. 하나하나 뒤틀리기 시작한다.

시간은 10여분을 훌쩍 넘겨 뛰어간다고 해도 약속된 시간엔 갈 수가 없게 되었다.

도대체 선영은 누구와 어떠한 약속이기에 이렇게 긴장과 초조함이 범벅이 되었을까?

강의실 창문에서 선영을 쭉 지켜보던 규민. 선영이 있는 현관으로 비집고 다가간다.

선영아 너 강의 끝나기 바쁘게 가더니 아직 못가고 있어

뜻밖에 규민의 말에 놀랍고 반갑기도 했다. 얼굴빛을 바꾸는 선영

그래 아직 이야

그런데 야단났어. 약속시간이 20분이 늦었으니 어떠하면 좋아야

규민에게 하소연이라도 하듯, 답답한 심정을 토로한다. 규민의 손에 우산이 들려 있음이 순간 선영의 눈에 들어온다.

규민은 선영이 혼자 우산을 들려 보낼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선영아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빨리 가자

규민이 펴든 우산 속으로 선영은 빨려 들어가듯 두 사람은 현관을 나선다.

많은 친구들을 뒤로하고 세찬 비속을 걸어 학교의 정문을 나와 버스 정류장에 도착한 규민과 선영, 비바람에 옷은 흠뻑 젖어 있었다.

기다렸던 버스가 도착하자 규민은 우산을 선영의 손에 쥐어주고 물러선다.

어서 가봐 많이 늦겠다.”

한없이 미안한 생각이 들었지만 선영은 규민에게 목례로 고맙다는 표현을 하고 버스에 오른다.

마침 자리가 있어 선영은 창가에 안아 창유리에 끼인 성에를 손으로 닦는다.

밖에는 규민이가 서서 손을 흔들어 빗속에 시선이 마주친다.

시내버스는 선수촌을 지나 태릉사거리에 오자 빗길에 차들이 거북이 걸음이다. 서서히 몸도 마음도 초조하고 지쳐만 가는 선영. 청량리역이 눈에 들어온다. 시계를 보니 약속한 시간은 1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약속 장소인 커피숍을 들어서는 선영의 차림새는 물에 빠진 생쥐나 다름이 없었다.

서빙을 하는 웨이터가 선영을 맞는다.

밖에 비가 많이 오지요

나의 몰골이 말이 아님을 보고 괠잖다는 듯이 인사를 건넨다. 많이 창피했지만, 태민이 생각을 하니 아무생각이 없었다.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태민이를 두리번거리며 찾았다. 이게 웬일인가. 선영이 만나야할 태민이는 보이지 않았다. 긴장한 눈을 의심이라도 하듯 앞좌석에서부터 하나하나 찍다시피 확인해 보았지만 태민은 없었다.

연인들과 다정히 차를 마시던 사람들이 선영의 이상한 행동에 모두정신나간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하며 힐끔힐끔 보며 자기들끼리 무어라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나와 이곳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태민은 보이지 않았다. 태민에 대한 자신의 잘못 때문에 죄책감과에 사로잡힌 선영의 머리가 어지러운 게 맞다.

선영은 몸도 마음도 비에 젖어 있었다. 한쪽 구석진 테이블에 앉는 선영은 한없이 초라한 여자의 모습이었다.

그 때 웨이터가 다가오더니 조용히 말을 건넨다.

혹시 선영 씨가 맞나요? “

선영은 고개를 끄떡이며 자신을 확인해 준다.

어떤 학생이 1시간은 기다리다가 선영 씨가 오기 5분 전에 이 쪽지를 남기고 갔어요.”

쪽지를 선영의 눈앞에 내민다.

때는 1970년대 서로 연락을 할 수 있는 통신 수단이라곤 전무한 시절이다. 기껏해야 빨간 공중전화 그것도 동전이 있어야 가능하다.

지금 같으면 핸드폰도 있고 콜택시도 길에 널려 있으니 전여 문제가 되질 않는데

선영의 입술은 가냘프게 떨리었다. 쪽지를 받아든 손은 너무 떨려 쪽지를 펴 볼 수가 없을 정도로 긴장을 하고 있는 선영. 물 한 모금을 간신히 삼키고 난 선영의 비참함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영문도 모르고 우리의 만남을 방해하는 비가 원망스러웠다.

선영의 몸과 영혼까지 온통 비에 젖고 범벅이 되어 어디서부터 태민이와의 관계를 풀어야 할 지 정리가 되지 않는다. 혼란은 계속 되고 차가운 눈물이 두 뺨을 타고 흐른다.

손에 든 태민의 쪽지마저 눅눅해 지기 시작한다. 눈물에 가린 희미한 글씨가 보인다.

선영아 기다리다가 간다.”

왠지 네가 오지 않을 것 같은 예감에 그래도 1시간은 기다렸다.”

사실은 태민이는 오늘이 선영과의 마지막 만남으로 이별을 고하는 자리로 나온 것이 분명하다. 태민은 메모를 써 내려 간다. 모든 것이 선영의 탓으로 돌리는 태민.

대학생의 시간관념, 내 자존심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었다.”

그럼 행복해라.” -태민-

태민은 매정하게도 예정된 계획 되로 결별의 수순을 밟고 있는 게다.

 

선영의 눈에 흐르던 눈물이 순간 멎는다. 빗줄기 속을 가르는 번개가 선영의 머리를 사정없이 내리친다. 여기까지 오느라 선영에게는 설 램과 초조, 긴장 에다 뜻하지 않은 비까지 맞으면서도 태민에 대한 기대를 한 순간도 접지 않은 채 달려 왔다. 순간 선영은 머리에 번개는 태우고 부셔 다 깨어지고 말았다.

사과도 해명도 할 기회도 주지 않은 태민이가 원망스럽다. 자기 마음대로 생각하는 태민을 선영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한편 아둔한 선영이 아니다. 헤어지자는 이별의 짧은 메모다.

도저히 용서 할 수가 없었다. 웨이터가 가져다준 물 한 컵을 다 마셔도 아프고 혼란스러운 가슴을 진정 시킬 수 없는 선영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다. 눈물이 가슴을 적시는데도 목이 멘다.

여전히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다. 대학캠퍼스에 대학생이 되었을 제일 먼저 하고 싶었던 것이 멋진 연애 이였다. 연애는 대학생 새내기들의 꿈이요 우상이기도 하다. 우산 속, 거리를 활보하는 연인들의 모습에서 선영 자신의 비참한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빈정 상하는 야유를 보내는 것 같았다.

아무 생각 없어 넋 나간 선영의 가슴은 빗물조차도 삼키지 못하고 입안에서 소용돌이치다 한 숨을 토하고 있다. 너덜하게 찢어진 마음은 검은 아스팔트에 철석 붙어 새내기 대학생의 자존심을 구걸이라도 하는 것 같아 더 참을 수가 없는 선영.

한 참 걷다가 멍하니 서있는 선영

시내버스가 서더니 문이 열리며 카랑카랑한 안내양 아가씨의 목소리가 빗속을 가른다.

빨리 타지 않고 무엇 해. 불암동 가요. 빨리 타. 빨리 타지 뭘 해

깜짝 놀란 선영은 엉겁결에 우산을 접고 버스에 오른다.

선영은 대학생 신분답게 안내양 에게 회수권을 한 장 주면서 고맙다고 목례를 한다.

저녁때가 다되어 선영은 학교기숙사에 도착한다.

 

여전히 기숙사는 활기가 넘치고 내가 있을 따뜻한 곳이라는 생각에 왈칵 눈물이 쏟아지는 것을 선영은 주체할 수가 없어 울음을 터트리고 만다.

같은 방 친구 혜영이가 놀라

선영아 너 무슨 일 있어

너 시내 갔다 오는 길이 잔아

도대체 무슨 일이야 말 좀 해봐

선영은 배가 고픈지

혜영아 미안해 우리 밥 먹으로 가자

혜영의 손을 잡아끄는 선영의 손은 차가우면서도 힘이 없어 보이는 것을 혜영은 느낀다.

너 오늘 서울 가서 무슨 일 있었지

선영은 말없이 식당을 향해 걸으며 혜영의 손을 꼭 잡는다.

혜영아 고맙다. 너는 내 친구야 내 친구 맞지

다음에 애기 다 해 줄게

혜영과 선영은 식당에 들어선다.

매일 먹던 밥 냄새가 선영의 구미를 돋운다. 사실답게 선영의 마음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선영은 정신없이 허겁지겁 트레이를 비운다.

혜영아 나 리필 좀 해야겠어.”

오늘따라 선영이 답지 않은 행동에 혜영도 놀란다. 분명 무슨 일이 있었던 게 분명하다. 선영에게 무겁지 않은 일이었으면 좋겠다. 혜영의 눈이 뚱그래 선영을 쳐다본다.

그래 밥이 최고지.”

여자들 대부분이 스트레스 받으면 먹는 것으로 해소하는 습관이 있다는데

너도 혹시, 너 오늘 딱 걸렸지.”

오늘따라 안하던 행동을 해 나 놀랐잖아

그 때 규민이가 옆에 서서 선영과 혜영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이 아닌가.

선영아 너 언제 왔니. 갔던 일은 잘 되었고

그나 비가 많이 와서 어떻게 했어 많이 늦었지

규민은 선영을 버스에 태워 보내고 장대같이 내리는 비를 맞으며 기숙사로 돌아왔다. 그래도 선영을 걱정하는 마음은 규민의 사랑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선영은 태민이 일로 규민이의 대한 생각은 까맣게 있고 있었다. 규민이의 얼굴을 바로 볼 수가 없었다. 대학의 꿈이 산산 조각나 흩어진 게 불과 몇 시간 전의 일이다 보니 몸 둘 바를 모르겠다.

규민아 우산 고마웠어. 조금 있다 돌려줄게 만나자

셋은 곧 헤어지고 규민은 선영의 표정에서 짐작하던 만남이 틀어짐을 느낄 수 있었다. 재미있었으면 저녁쯤은 먹고 들어왔어야 하는데 식당에서 저녁을 먹는 것과 선영의 의외의 식사 행동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된다.

대충 책상을 정리해 놓고 선영과 약속장소로 나가는 규민.

선영은 규민이를 보자 반가와 한다.

규민아 여기 우산, 정말 고마웠어.”

준비한 음료수 캔 하나를 쥐어주며

우리 마시자

선영이 건배를 내민다.

사실 규민과 선영은 시골에 살면서 고등학교 때부터 쭉 한반에서 공부를 해 왔다.

평소 가까운 친구인데다 두 사람모두 집이 지방이다 보니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다.

대학에 와서도 조금은 살갑게 대하며 지내는 유일한 오랜 친구이다.

선영이 입을 열어 말을 꺼낸다.

규민아 나 오늘 어디 갔다 온지 알아

그렇잖아도 선영의 이상한 행동이 자못 궁금하던 규민으로선 약간의 호기심이 선영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하면서 대답을 한다.

선영아 재미있었어. 조금은 걱정이 되었다. 비도 오고해서

규민의 순수한 마음은 대학생이 되어서도 언제나 반듯한 모양새는 어디 하나 나무랄 때가 없는 게 흠이라면 흠이다. 규민이의 마음 한 구석엔 언제나 선영이 자리하고 있으니 오늘 하루 내내 선영에 대한 생각에 조금은 혼란스럽기까지 했었다.

선영은 다시 말을 잇는다.

그런데 그놈이 대학생 선영이의 자존심을 확 밟았지 뭐야. 그게 다야

순간 선영의 눈에서는 자존의 상한 눈물이 핑 도는 것을 규민은 보고 있다. 선영의 상한 마음 보다 본능적인 질투심이 작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선영의 착한 심장의 박동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규민으로서도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야 그 친구 명문대학이라고 하지 않았어.”

선영은 조약돌을 집어 들더니 저쪽으로 홱 던지면서

명문이면 뭐하니 나 차였다.”

영문도 모르고 당한 오늘의 일을 규민에게 짤막하게 털어 놓으려는 모양이다. 규민으로서는 선영의 위기가 좋은 기회일 수 있다는 생각이 번개 같이 머리를 스치고 자나간다.

선영의 이야기를 듣던 규민은 놀라움과 안도의 한숨을 소리 없이 죽이며 마음의 여유를 즐기는 게 조금은 잔인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선영에 대한 애정은 한 없이 키워만 가고 있었다.

규민은 고등학교 때부터 선영이를 혼자 좋아했다. 대학에 가면 꼭 선영이와 좋은 관계를 맺어야 할 것이라고 혼자 다짐을 해 오던 참이다.

어쩌면 규민에게는 더 없이 좋은 기회가 눈앞에 전개되고 있다는 현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선영에게는 오늘 태민 이와의 일은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대학생의 명예와 자존심에 상처를 남긴 일생일대의 감당하기 어려운 일임에 선영이 괴로워하는 것이 규민의 작은 연민의 정으로 분출 하고 있었다. 규민은 자신의 이런 생각이 친구를 사랑하는 또 다른 감정이라 생각을 하고 있다. 사랑은 흔들리면서 성숙하는 결과라고 했던가.

규민아 나 이제 아무도 안 만나고 누구와도 사귀지 않을 거야

선영이의 실망과 배신에서 오는 절망감은 규민이로서도 감당할 수 없이 먹구름처럼 밀려 와 지는 해의 땅거미와 같이 규민을 덮치고 있었다.

선영의 얼굴은 담담하면서도 두 눈엔 어딘가 새로이 자존심을 찾아야 되겠다는 의지가 불타고 있었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규민이 입을 연다.

선영아 너는 이제까지 모든 일에 자신감 있게 잘 해 왔잖아 사실 알고 보면 남자들 속물이야. 사기꾼이고 녹대다.”

나 규민이만 빼놓고 크크크

규민의 농담 속에 고백하지 못한 진담이 있음을 알까.

선영이 규민을 바라보면서

나 위로하려고 하지 마 너 앞에서 더 비참해 지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마시던 커피도 바닥이 난다. 더 이상 어떻게 선영과 대화를 이어 갈 용기가 나지 않아 마음은 빨갛게 물들고 있었다. 선영을 짝사랑하는 규민의 마음은 봉숭아 씨앗처럼 빵빵하게 찰 때로 차서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았다. 한 번도 고백하지 않은 마음이 오늘따라 이렇게 힘들 줄이야 미처 몰랐다. 차라리 이 자리를 피하고 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규민은 벤치에서 엉덩이를 들었다. 앉았나를 반복하면서 애꿎은 숙제 핑계를 댄다.

선영아 나 리포트 쓰던 게 있어

아무튼 힘내고 잘 자고 내일 보자

어떤 놈이든 선영이 눈에 물물 한 방울이라도 흘리면 그땐 이 규민이가 가만 안 있을 거야 알았지

선영에게 고백하지 않은 사랑이 규민에게 있음을 은근히 대시하는 규민의 가슴이 탄다.

바이, 굿 나이

규민은 선영에게서 도망치듯 헤어진다. 선영은 가볍게 손을 들어 인사를 대신하고 각자의 숙소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8월의 긴 태양이 산허리 긴 굴참나무 가지에 걸려 선영의 걸음을 지켜보는 것 같아 규민의 발걸음이 무겁기만 하다. 한 십여 미터를 걷다. 돌아보는 규민, 선영과 눈이 마주쳤다. 이심전심이랄까, 둘은 각자 오른손을 들어 다시 인사를 나눈다.

아무도 없는 좁은 방에 들어온 규민은 말없이 책상에 앉는다. 비가 그친 창가로 하늘 한쪽에 낙조가 비춰주는 무지개가 보인다. 좋은 징조라 생각하니 무지개의 일곱 색이 가슴에 들어와 너무나 행복했다.

그 때 규민과 헤어진 선영은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문다. 태민이와의 일은 두 번 다시 생각 하지 않으련다.

태민이는 이제 내 마음에서 없는 거야 지워 버리자

대학생활이 남자친구를 사귀고 연애하는 것이 다가 되어서 어떡해

내 꿈이 뭔데 목표까지 앞만 보고 달릴 거야

선영의 시선이 머문 곳에 무지개가 곱게 비치고 있었다. 선영은 규민이가 해준 모든 말이 고마웠다. 자식 규민이 괜찮은 놈이야.

지금 규민이도 이 무지개를 보고 있을까?” 선영의 가슴도 조금씩 뛰고 있었다.

나에게 새로운 행운이 있다면 무지개처럼 아름답게 멋지게 살아 야지. 선영은 나뭇가지에 걸린 무지개를 보면서 혼자 중얼거린다. 선영은 낮에 있었던 일을 되씹으며 태민에 대한 감정이 잘 정리가 되지 않는 모양이다. 자존심이 상해 망가진 가슴의 상처는 시간이 필요 하다.

어둠이 깔리고 요란하던 매미소리도 잦아든다. 오늘 밤은 어느 날 보다도 선영에겐 힘든 시간이다. 공부도 안 되고 해서 침대에 몸을 던져 보지만 정신은 더 맑아지면서 몸은 한없이 뒤척인다.

보다 못한 혜영이

선영아 이제 자자 사실 너 태민씨 몇 번 만났다고, 잊을 사람은 빨리 잊는 게 좋다.”

가까이서 찾아봐. ! 널린 게 사네들이다.”

선영이,

내가 남자에 환장한 여자 아니다. 지가 뭔데 나를 차, 명문대면 다냐?”

내가 태민에게 차인 게 자존심이 상해 그게 아프다.”

사실 어쩌면 선영과 태민은 두 달 전 친구의 소개팅으로 만나 오늘이 5번째 만나는 날인데 날씨마저 우리사이를 방해하는 것 아닌가도 싶었다. 속 좁은 태민이 아닌가 생각하니 이만할 때 정리하는 것, 신이 도운 것 같기도 하다는 선영의 말에 혜영도 머리를 끄떡여 준다.

선영은 다시 마음을 다잡으려고 마음의 기도를 한다.

주님, 이 선영의 마음에 평안을 주소서. 어떠한 일에도 흔들리지 않는 당당한 대학생이 되게 하소서. 선영의 꿈을 펼칠 수 있게 수호의 신이 되어 주소서. 아멘.”

지칠 만도 한 시간, 혜영은 코를 골면서 몸부림을 치면서 잘도 잔다. 세상모르고 자는 혜영이가 부럽다. 선영은 혜영이 차버린 얄은 이불을 끌어다 덮어주고, 잠든 혜영을 한동안 물끄러미 지켜본다. 세상에 제일 편한 사람이 혜영이다.

늦었지만 선영은 눈을 감고 잠을 청한다. 태민의 얼굴과 규민의 얼굴이 번갈아 눈앞에서 어른거린다.

, 네 둘 다 똑 같은 사내고 돼지들이야 아니 늑대가 맞아 나 돼지죽도 아니고 늑대 밥 안 될 거야.”

이불을 얼굴까지 푹 뒤집어쓰는 선영은 무슨 생각을 할까. 그건 선영만이 알 것이다.

같은 시간 태민도 오늘 선영과의 일이 마음에 걸린다. 선영을 생각 하는 태민. 사실 태민이도 대학에 들어온 후 처음 친구의 소개로 선영을 만났다. 태민은 서울 태생으로 부유한 집안에서 자랐다. 주변의 친구들 모두 명문대학에서 함께 공부하는 부러울 것이 없는 학생이다.

몇 번의 선영과의 만남에서 선영의 미모와 마음 씀씀이에 마음이 끌리던 중 지난 주 자신이 다니는 캠퍼스에서 우연히 중학교 때 같은 반 친구 지민을 만난 것이 태민의 마음을 바꾸어 놓은 것이다.

지민이는 중학교 2학년 때 미국으로 유학을 같다. 사정이 있어 얼마 전에 들어와 쉬면서 입시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 미모나 배경 모두가 선영과는 비교가 안 되는 현실에 태민의 고민이 선영과의 교제에 찬물을 끼얹고 만 것이다.

태민은 밤늦도록 포장마차에서 혼자 술을 마신다. 홀가분함과 괴로움 이를 번가라 소주잔을 비우면서 오늘 낮 선영에게 한 자신의 행동에 조금은 부끄럽고 미안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민의 대한 욕심은 어느 때 보다도 뜨겁게 불을 집히고 있었다. 인간의 본능이 짐승의 본능을 능가하고 있다는 게 슬픈 현실이다. 태민의 계산된 마음이 용기를 부추긴다.

그래 잘 끝냈어.”

선영이 보다는 지민이가 좋지

선영아 내 마음이 그러니 이해 해주라. 미안하다.”

취기가 오르면서 태민의 마음도 갈지자걸음을 걷는 인간의 약한 모습이기도 하다.

쉽게 선영과의 교제를 정리 하는 태민. 남자의 근성이라 할까, 취하도록 마시며 자신을 위로하는 지금 이순간의 모습은 자신도 괴로운 듯 술을 퍼 마시는 태민.

간간이 취기는 소주잔에 선영의 모습과 지민의 얼굴을 떠 올려 비춰준다.

태민은 순간순간 머리를 좌우로 설레설레 털면서

아니 내가 왜 이러지.”

사나이가 그럴 수 있지 뭐, 욕하려면 해라 욕이 배따고 들어가나

선영아 미안하다.”

내겐 지민이가 있었다.”

미처 생각을 못 했어

한 젊은 대학생의 취중에 하는 말이다. 태민의 삐뚤어진 인생관이 태민의 입 기운을 타고 밤공기를 가르며 옆자리에 까지 전파 되 들린다.

옆자리에서 술을 마시던 커플이 태민을 힐끔 보며 눈살을 찌푸린다.

자신의 남자 친구를 쳐다보며

속물, 자기도 저치와 같지

왜 불똥이 나한테 튀는 거야

아니야,”

아니야 나야 순진한 양에다 너에겐 믿을만한 마당쇠지

사실 쌍 팔년도 식 사랑을 하는 학생들도 많다. 한쪽은 적당히 즐기고 또 다른 한쪽은 목숨을 바쳐 사수하는 사랑

그런데 저치를 보니 어느 여자진 모르지만 조금은 슬프다.”

펄쩍뛰듯 말을 주고받는 연인들이 부럽기만 한 태민.

12시 통금시간이 되어갈 무렵 하나 둘 자리를 비워주고 떠난다. 태민은 여전히 자신의 감정을 앞세우고 혼자 말을 씨불이며 술을 퍼 마신다.

포장마차 아주머니의 얼굴엔 근심 반의 연민의 정이 흐른다. 태민이 알 리가 없다.

학생 집이 어디야 많이 마셨어

우리도 일 정리하고 마쳐야 해, 그만 일어나지

그제야 태민은 흔들리는 몸을 억지로 가누며 히죽히죽 웃으며 손을 깊숙이 찔러 넣더니 꼬깃꼬깃 한 지폐로 계산을 하고 어두운 골목으로 사라진다.

태민이 떠난 자리엔 빈 소주병과 먹다 남은 안주 몇 개가 너저분할 뿐이다. 태민의 인생관을 보는 듯 씁쓸하다.

뒷자리를 정리하는 아저씨의 말에 날카로운 뼈가 보인다.

부모 등골께나 빼 먹것다.”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웬 사랑 타령이야.”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들이 참 세월 좋다

많은 세월을 이 골목에서 장사를 해온 아저씨와 아주머니 얼굴엔 오늘도 태민이란 주름이 하나 더 늘어나는 것 같았다.

자정 통금을 알리는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들린다. 태민은 무사히 집에 잘 들어갔는지 밤공기는 차갑고 하나둘 꺼져가는 불빛을 보며 싱싱했던 하루가 어둠속으로 사라지고 도시는 내일을 위하여 또 다시 깊은 정적을 끌어안는다.<문학세계>


약력 :

1952~

아호: 一松 / 필명: 老波

경북 영주 부석 출생

삼육대학교 건축학과 졸업

청암고등학교 졸업

現代 韓國 人物 史 등제

2006년 월간문예사조 산사의 가을로 시 등단

韓國 詩 大辭典 등제

2010년 월간 문예사조 단편소설 로 소설 등단

2016년 한국문학을 빛낸 100인 선정 작가

재림문학상 수상(시)

세계문학상 수상(소설)

노파의문학공간 운영 : blog: http://blog.daum.net/tank1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