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뿐히 나르면 안 되나
老波 장지원
무겁게 짓누르는 눈시울
아쉬웠던 가을도 아니면서 기다린 계절도 아닌데
겨울 한기에
왈칵 왈칵 몰려오는 눈시울이 서러운 날
길 잃은 바람, 갈잎의 소리도 아랑곳 하지 않고 갈지자로 헤매는 세상이 흔들린다
하나 둘 싹이 잘려 나간 들판에 허무의 공간을 키운다
하얀 이빨을 드러내 때 이른 시절의 말미를 알린다
평생을 살아도 남는 게 없다
떳떳이 물려 줄 유산도 없다
윤회의 가슴에 빗줄기는 소리 없이 쳐들어와 숨 쉬기조차 힘들다
계절의 대미도 붙잡지 못한 세월
인생의 연약한 끈마저 잘라 버려야 할 작금의 고통이 만길 벼랑에 앉아 길을 묻는다
움짓움짓 하면서도 나가지 못하는 빨간 초침
분침도 시침도 돌지 않아
고장 난 시계의 운명은 절체절명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연한 빗줄기에 낙엽을 지우고
꽃눈을 갈무리하는 나뭇가지들을 보면서
선순환의 진리가 캄캄한 밤, 외로운 북극성이 된들
흔들리지 말고
추락하지도 말고
한 잎 낙엽 되어
새 길을 묻지 말고 길 없는 벼랑을 사뿐히 나르면 안 되나
2016.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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