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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겨울이 떠나는 길목에서

노파 2013. 3. 7. 09:21

겨울이 떠나는 길목에서

장지원

 

 

겨울이 떠나는 시간이다. 산비탈에선 얼었다 녹은 산사태 밥이 허물어지는 산허리에 비해 너무 곱게 쌓인다. 도태되고 생성되는 일을 반복하는 자연은 실로 위대하다 못해 경이롭다. 자생적 생성, 그 힘의 원리는 어디에서 왔으면 무엇일까? 우연한 길목에서 필자는 발목이 잡혀 잠시나마 짧은 사유의 시간에 편승해 본다.

 

한번은 길을 가다가 우거진 산에서 간벌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자랄 수 있게 하는 작업이라고 했다. 인간의 노력이 계획적으로 자연에 간섭하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자연은 인간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반대로 사람들은 자연을 대할 때 무한한 것에는 소홀한 나머지 유한한 것에는 애착과 집착을 갖는다. 햇볕과 바람, 물과 공기(산소), 영양과 휴식, 생과 사 같은 큼직큼직한 명제들도 있다. 인간이 생각하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그 법칙과 원리는 자연의 유동적 파생에서 비롯된다고 해도 큰 잘못이 없다는 것이다. 일찍이 자연은 자율적으로 엄격한 규율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조물주가 그들의 임무를 제한적인 것 같으면서도 열린 공간 활용을 지향할 수 있도록 생의 주기를 부여하였다.

 

아마존의 자연은 신비하기만 하다. 인간이 침입하지 않으면 영원히 그 처녀성을 유지하며 유익한 벗으로 인간을 지켜 줄 것이다. 아프리카에 널려있는 광활한 자연은 문명이란 이기에 잠식당한 지가 오래되다 보니 그 해악이 점차 나타나게 되고, 직, 간접적인 피해는 사람들이 감당해야 하는 절박한 위기에까지 와 있다. 지구의 온난화, 극지방의 해빙, 가뭄과 홍수, 살인적인 더위와 이에 상대적인 한파, 등의 자연적인 재해는 인간을 죽음이란 벼랑으로 내몰고 있다. 모두가 낯선 땅에서 살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리기가 어렵다.

 

자연은 그들 스스로 개체의 수를 조절하는 규정이 있다. 사람이 간벌하지 않아도 자신을 희생하여 자리를 내어 준다. 고사한 수목은 일정한 공간을 확보하고 거름이 된다. 그 영양분으로 수많은 생물이 활동하게 되면서 자연은 언제나 생동감 있게 살아 인간의 삶에 절대적으로 이바지하게 된다. 자연 가운데는 인간이 살면서 필요한 모든 것이 숨겨져 있다고 한다. 필요한 만큼 적당하게만 사용할 수 있다면 삶은 건강하고 풍요롭게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인간의 욕심이 자연의 순환적 행위를 지배하고 강제로 개체를 훼손하여 일락을 취하려는 이기주의 때문에 자연의 순환적 진리는 그 균형을 잃어버린 지가 오래되었다. 방관할 수 없는 게 자연의 복원이다. 더 늦기 전에 빌려 쓴 시간과 물질을 자연에 돌려줄 수 있어야 할 것 같다.

 

산사태가 빠지는 산기슭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해 본다. 인간이 자연과 다른 하나를 찾으라고 하면 그것이 무엇일까. 훼손된 자연을 복원하는 노력일 것이다. 인공적인 활동은 자연에서는 찾아볼 수 없을뿐더러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인간의 생각이 그러할지라도 실제 살아 숨 쉬는 자연의 참모습을 그대로 복원하기란 인간의 한계가 있는 것 같다. 인간이 간섭하지 않는다면 자연은 재생하고 복원하는 초미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그것이 성경에서는 조물주의 안식년 제도다. 칠년 주기마다 땅도 사람도 쉬어야 한다. 때에 따라서는 그 이상의 많은 시간이 필요한 일도 있다. 무분별한 난 개발과 자연의 인간 종속화는 자연과 인간을 동시에 병들게 하는 원인과 결과를 동시다발적으로 초래하게 하는데, 이를 우리는 재앙이라고들 말한다. 사람만이 자연에서 휴식을 취하며 여유를 즐길 수 있어서는 안 된다. 자연의 필요도 충족시켜 주며 공존하는 엄격한 규율을 적용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대자연의 일원이 되는 영장으로서 사람다운 자격이 있다고 본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의 난맥상의 대자연과의 충돌은 피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산과 강 그리고 해안에 인공구조물을 만들어 자연의 자정적 신비로운 활동을 억제하는 일은 인간의 불필요한 노력이 아닌가. 제공권 탐사, 개발, 정복 등 동식물의 유전공학 역시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엄중한 규정을 마련하고 인간으로서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음을 인지할 필요가 있음을 다시 한번 고민 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은가. 산이 허물어지고 강이 썩고 해안이 침식되고 인간 삶의 본질을 흔들어 혼란스럽게 하는 거 현상적인 변이는 자연이 인간에게 이야기하는 기가 막힌 메시지요, 외침으로 들을 수 있는 눈과 귀가 필요하다고 본다.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대자연의 움직임에 둔감하여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라고 절박한 마지막 때의 경고를 성경에서는 일찍이 기록해 두고 있다. 자연과의 교감은 우리의 삶에서 꼭 필요한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시간과 공간 그리고 삶을 균형 있게 배치해 트라이 하게 살 수만 있다면 자연도 인간을 굳이 배척하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멀지 않아 육신의 허리가 무너지고 공간 이동이 있을 때 산사태 밥처럼 다른 모습으로 자연의 일원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각자는 자신에게 던져보면 어떨까.

 

2013.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