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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흘러온 반세기

노파 2012. 6. 16. 14:11

봄 쑥 같이 깊은 어머니의 마음

장지원

 

 

이른 봄 파랗게 돋아나는 쑥을 보면서 이태 전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을 한다.

50년 전 그해 4월도 날씨가 오늘같이 따뜻했던 것 같다. 온 들엔 봄나물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그중에도 쑥이 가장 많아 사람들은 이것을 뜯어 식량에 보태 유용하게 이용하였던 시절을 잊을 수가 없다. 그 시절은 봄이면 으레 겪어야 하는 보릿고개야말로 어른들이나 어린애나 모두가 힘들게 누구나 넘겨야 하는 시절치고는 길고도 가파른 길 몫이었다. 다른 나물은 많이 먹으면 몸이 붓는데 쑥만큼은 그렇지 않아 식품으로서 좋은 식재료라고 생각해도 된다.

 

쑥이 가진 생약 효능은 엽록소 성분과 치네올,세스커텔펜등의 정유 성분을 함유하고 있다. 이는 비타민 A, B1, B2 C 등과 철분, 칼슘, 칼륨, 인 등 미네랄 등 특히 쑥 1g에는 칼슘 93mg과 철분 1.5mg 이 함유하고 있다. 암 예방에는 물론 고혈압 노화 방지뿐 아니라 위장 간장 살균 작용까지 탁월한 효과가 있어 옛날부터 민간에서 부인병에 자주 이용했다. 봄 쑥을 먹으면 무릎이 아파 걷지도 못하던 사람도 거뜬히 일어나 문지방을 넘는다는 속설도 있다. 쑥이 가진 특유의 효능을 뒷받침하고 있다는 예가 되겠다.

 

초등학교 4학년 6교시를 마치고 나는 집에 돌아온다. 4월의 태양이 겨우내 얼었던 몸을 해빙이라도 시키듯 겉옷에서부터 녹아내리는 봄기운은 푹 사그라진 배에 허리띠를 졸라매고 물 한 바가지를 벌떡벌떡 들이키고서야 정신을 차릴 수가 있었다. 아침 어머니가 내게 일러 준 말씀이 생각났다. 어머니가 있을 만한 곳으로 빨리 가야 했다. 조금을 뛰어가다 보니 배 속에선 아까 마신 물이 소리를 내며 배가 아플 정도로 출렁이어서 도저히 더 이상 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천천히 걸어 본다. 배고픈 생각이 들면서 눈은 무엇이라도 먹었으면 좋겠다는 욕심에 찔레나무 밑으로 갔다. 봄볕에 움돋이 찔레가 죽순처럼 올라와 있다.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웠다. 한 움큼 꺾어서 입에 넣고 씹으니 특유의 시원하고 알싸한 맛에 허기를 조금은 잊을 수가 있었다.

 

두봉산 밑 상보 둑에서 쑥을 캐고 계시는 어머니가 보였다. 무척 반갑고 기뻤다. 나도 모르게 ‘어매’하고 불러댔다. 수건을 머리에 쓰신 어머니는 손을 흔들며 아들을 빨리 오라고 화답하신다. 아침 설거지를 마치고 이곳에 와서 출장 캔 쑥이 두 다래끼에 가득 차고 다른 보자기에도 수북하였다. 일손을 멈추고 모자는 잠시 노란 잔디 위에 앉았다. 보자기에서 무엇인가 찾으시더니 내게 불쑥 내미는 것은 다름 아닌 찔레였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찔레다. 나를 주기 위해 꺾어 두었던 모양이다. 조금 전에 오다가 배고픈 참에 찔레를 잔뜩 먹었는데도, 그때 어머니와 먹은 찔레의 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봄이면 전원에 나가 한번은 꺾어서 먹으며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을 해보곤 한다.

 

해가 늦고개로 넘어가려고 해서야 짐을 챙기시는 어머니였다. 나는 다래끼 하나 가득 쑥을 메고 집으로 돌아오는 걸음이 온전치가 않았다. 그래도 어머니와 같이 쑥을 많이 캐 가지고 돌아가는 것 자랑스러웠다. 어머니는 어깨에 다래를 하나 메시고 머리엔 큰 보자기가 무거웠지만 조금도 힘들다는 기색조차 하지 않으셨다. 지금 생각해도 나의 어머니는 강하신 분이셨다. 우리 육 남매를 위해선 무슨 일이고 마다치 않고, 추위며 더위도 가리지 않으신 분이셨던 것 같다.

 

다음 날 아침상엔 쑥과 쌀이 반반인 나물밥을 지었다. 쑥국은 정말 향기가 그릇에 가득했다. 그 시절엔 나물밥을 먹는 것은 누구나 보편화된 때이기는 하였지만 아버지는 가장으로서 많은 심적 부담이 되었던 것 같았다. 아무런 말씀이 없으니 온 식구가 침묵 속에 숟가락 소리만 딸가닥거리다 하나둘 사라진다. 그렇게 보릿고개는 60년대 중반까지 계속되었다. 새마을 운동이 빠르게 확산하며 통일벼가 보급 경작되면서 그 지긋지긋하던 보릿고개는 우리의 생활 속에서 옛 전설로 사라지고 조금은 배곯지 않고 먹고살 수가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우리의 삶의 양과 질을 높게 바꾸어 놓은 게 새마을 운동이었지 않았나 하는 고마운 마음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오늘은 햇살이 푹 퍼진 양평 외곽에서 어머니 생각을 하며 쑥을 캤다. 흙냄새와 풀 냄새가 어우러져 코끝을 자극한다. 전혀 싫지 않은 유혹이다.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노래도 불러 보고 기억을 살려 어릴 때 그 장소로 날아가 보지만 내 눈앞에는 파랗게 돋은 쑥밖에 보이지 않고 어머니는 없었다. 나도 모르게 눈에서 이슬이 맺혔다. 내킨 김에 서럽게 눈물을 흘리며 울면서 돌아가신 어머니를 잠시나마 생각할 수 있어서 내 생애에 메말랐던 감정이 살아나는 것 같았다. 저녁엔 쑥국을 끓였다. 어머니가 끓인 그 맛은 아니었지만 봄이 녹아 나는 향긋한 맛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여전한 것 같다. 쑥에서 우러나 오는 그 깊은 맛을 찾아 언제 날 잡아 부모님 산소를 다녀와야겠다.

 

2012.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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