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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책을 사든 시인의 손/수필

노파 2013. 4. 10. 09:31

책을 사든 시인의 손

장지원

 

 

이번 시화전이 끝나면 조금은 심심할 것 같다. 이에 미리 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나를 그냥 두지 않았다. 심신을 달래고 충전하기 위해 읽을 책을 사라고 나를 책방으로 내몰고 있었다. 수많은 책이 나를 유혹 한다. 사람들 틈에 끼여 볼 만한 몇 권의 책을 골라 보았다.

역사, 에세이, 자전, 소설 등을 고르니 여러 권의 책이 무거워 보였던지 여직원이 얼른 받아 주며 계산할 거냐며 말을 건넨다. 그렇다고 하자 계산대에 갖다 놓겠다고 밝게 묵례하고 사라지는 뒷모습이 싫지 않았다. 한 권의 책을 더 골라 계산대 앞에 섰다. 그중 같은 책이 두 권이 되었다. 아닌 게 아니라 계산하는 여직원이 이를 지적하다시피 한 권을 빼며 다른 책으로 권하고 나선다. 나는 아니, 맞는다고 하자 조금은 미안한 듯 그럼, 예 계산하라고 했다. 내가 같은 책 두 권을 고른 것은 한 권은 지인에게 선물을 하기 위해서다. 좋은 선물이 되었으면 하는 감사의 마음을 담고 싶은 것이 지금의 생각이다.

내가 책 욕심이 많은가 보다. 그래서 언제나 생각보다 한두 권의 책을 더 사는 편이다. 오늘도 그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말았다. 그래도 아내는 내가 책 사는 것에는 별 토를 달지 않으니 늘 고맙기도 하다. 아내는 나의 이거 수 일투족을 궤도 있다. 전화가 연결되자 어디를 갔다 왔느냐고 물었다. 바람도 많이 불고 심란해서 서울로 책 사러 갔다 왔다고 하자 더 이상 말이 없었다. 손녀 아인 이가 낮잠을 자고 일어나서 칭얼대고 있었다. 깊은 잠을 자지 못했다고 애미가 나선다. 언제나 화상전화에서만큼은 밝게 재롱을 떨어주는 아인데 오늘따라 모든 게 날씨와 연관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나도 이런저런 핑계로 책방엘 들른 것이다. 딸이 준 도서 상품권에 현금을 보태서 일곱 권의 책을 샀다. 한 달 정도는 꼼짝하지 않고 보아도 될 분량이다. 포만감에 점심을 건넌 것도 잊을 정도가 되었다. 조금 지나친 표현 같지만, 양식이란 것이 쌀독에 곡식만이 아니란 생각마저 든다. 마음의 양식은 책이 분명하다. 기독교에선 이를 영적 양식이라고도 한다.

시를 쓰고, 수필을 쓰고, 소설도 쓰고 하는 글쟁이가 아닌가. 그러나 다른 이의 글을 읽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 그래서 오늘도 많은 책을 사 들고 돌아오는 전철에서 읽은 것이 그중에 한 권의 소설이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란 소설인데 잠깐 읽은 이야기는, 평생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는 가난한 어부 할아버지는 오늘따라 운 좋게 낚시에 걸린 큰 다랑어와 씨름하게 된다. 얼마나 큰지 끌어 올리자면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을 알고 만반의 준비를 한다. 날은 저물고 기온도 떨어지는 어두운 바다 위에서 다랑어와의 외로운 싸움이 시작된다. 그는 찾아오는 고독한 시간을 이런저런 생각으로 낚싯줄을 발가락에 감아놓고 비스듬히 허리를 고물에 기댄다. 그러다 갑자기 낚시에 걸린 고기의 나이가 멸살이나 될지를 제 생각에 묻게 된다. 원체 가난하면서도 고운 심성을 타고난 어부임에, 가난한 시인의 생각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둠이 깔리는 바다 위한 척의 고깃배를 생각해 보고 있었다.

한 시간의 시간은 흘러 벌써 양평역이란 안내 방송이 나온다. 하루해도 달리는 전동차를 이탈해 서산으로 도망가고 있었다. 낙조가 차창을 넘어 내 가슴에서 몸부림을 친다고 생각했는데 전철 안의 모든 사람 마음에서 같은 몸놀림을 하고 있었다. 착각은 자유라고 했던가. 어쩌던 나의 감정만큼은 살아있다는 증거다. 전철은 용문까지 가지만 양평에서 내리는 사람들이 많다. 제각기 출구를 찾아 부산하게 움직인다. 나도 그 틈에 끼여 줄을 섰다. 바다 한가운데 할아버지를 두고 나는 혼자 살겠다고 종종걸음을 치며 개찰구를 빠져나온다. 왕십리에서 전철 시간이 빠듯해 참아온 소변이 이제 제 세상을 만났다고 밀물같이 터져 나오는 것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입을 꼭 다물고 뛰었다. 볼일을 보고 나오면서 나는 민족의 독립과 해방을 위해 싸워온 안중근 의사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하루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다.’라는 선생의 말이 생각났다. 선생이 책을 사랑한 것은 나라 잃은 설움에서일 거다. 광복의 투지와 해방의 기쁨은 나의 오줌 줄기처럼 터져 나왔지 않은가. 무지에서의 탈출은 어떤 상황과 경우를 두고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나도 이 시간만큼 육체의 해방과 정신적 광복을 느끼고 있지 않은가.

우리 민족은 옛날부터 학문의 깊이가 있었기에 한글이란 우리글과 말을 갖고 생활하는 우수한 민족임에 틀림이 없다. 많은 팩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고 있다. 책 읽는 독서 인구가 OECD 국가 중의 하위권에 머문다고 한다. 헤밍웨이의 소설 속 할아버지의 마음이 이 저녁 약해질까 봐 조금은 걱정이 된다. 나는 책을 읽을 때마다 남다른 감정을 갖는다. 일곱 권의 책을 다 읽고 나면 내 몸에도 근육질이 조금은 생길 것 같은 생각을 해 본다. 시장했던 터라 한술을 뜨고 잡은 이 글, 미처 마무리하기도 전 졸음이 쏟아진다. 쉼도 먹는 것 못지않게 중요하지 않은가. 나만 혼자 생각 없이 잠자리에 드는 것이 조금은 미안한 밤이 될 것 같다.

 

20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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