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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속에 위인전> 다윗을 추격하는 사울/장지원

노파 2025. 4. 10. 00:02

 

<성경 속에 위인전> 다윗을 추격하는 사울

장지원

 

 

아히멜렉의 아들 아비아달¹이 그일라 다윗에게로 도망할 때에

손에 에봇을 가지고 내려왔더라

다윗이 그일라에 온 것을

어떤 사람이 사울에게 알리매

사울이 이르되

하나님이 그를 내 손에 넘기셨도다

그가 문과 문빗장이 있는 성읍에 들어갔으니 갇혔도다²

사울이 모든 백성을 군사로 불러모으고 그일라로 내려가서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에워싸려 하더니³

다윗은 사울이 자기를 해하려 하는 음모를 알고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에봇⁴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고

다윗이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여

사울이 나 때문에 이 성읍을 멸하려고⁵ 그일라로 내려오기를 꾀한다 함을

주의 종이 분명히 들었나이다

그일라 사람들이

나를 그의 손에 넘기겠나이까

주의 종이 들은 대로 사울이 내려 오겠나이까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주의 종에게 일러 주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가 내려오리라 하신지라

다윗이 이르되

그일라 사람들이

나와 내 사람들을 사울의 손에 넘기겠나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들이 너를 넘기리라 하신지라⁷

다윗과 그의 사람 육백 명 가량이 일어나

그일라를 떠나서 갈 수 있는 곳으로 갔더니

다윗이 그일라에서 피한 것을 어떤 사람이 사울에게 말하매

사울이 가기를 그치니라

다윗이 광야의 요새에도 있었고 또

십 광야 산골에도 머물렀으므로 사울이 매일 찾되 하나님이 그를 그의 손에 넘기지 아니하시니라⁸

 

다윗이 사울이 자기의 생명을 빼앗으려고 나온 것을 보았으므로

그가 십 광야 수풀⁹에 있었더니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일어나 수풀에 들어가서 다윗에게 이르러¹⁰

그에게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게 하였는데

곧 요나단이 그에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 아버지 사울의 손이 네게 미치지 못할 것이요

너는 이스라엘 왕이 되고

나는 네 다음이 될 것을

내 아버지 사울도 안다 하니라

두 사람이 여호와 앞에서 언약하고

다윗은 수풀에 머물고

요나단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그 때에 십 사람들¹¹이 기브아에 이르러

사울에게 나아와 이르되

다윗이 우리와 함께 광야 남쪽 하길라 산 수풀¹² 광야¹³에 숨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하온즉 왕은 내려오시기를 원하시는 대로 내려오소서

그를 왕의 손에 넘길 것이 우리의 의무니이다 하니

사울이 이르되

너희가 나를 긍휼히 여겼으니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하노라

어떤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그는 심히 지혜롭게 행동한다 하나니

너희는 가서 더 자세히 살펴서 그가 어디에 숨었으며 누가 거기서 그를 보았는지 알아보고

그가 숨어 있는 모든 곳을 정탐하고 실상을 내게 보고하라

내가 너희와 함께 가리니 그

가 이 땅에 있으면 유다 몇 천 명 중에서라도 그를 찾아내리라 하더라

 

그들이 일어나 사울보다 먼저 십으로 가니라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광야 남쪽 마온¹⁴ 광야 아라바에 있더니

사울과 그의 사람들이 찾으러 온 것을

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아뢰매

이에 다윗이 바위로 내려가 마온 황무지에 있더니

사울이 듣고 마온 황무지로 다윗을 따라가서는

사울이 산 이쪽으로 가매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산 저쪽으로 가며

다윗이 사울을 두려워하여 급히 피하려 하였으니

이는 사울과 그의 사람들이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에워싸고 잡으려 함이었더라

전령이 사울에게 와서 이르되

급히 오소서 블레셋 사람들이 땅을 침노하나이다

이에 사울이 다윗 뒤쫓기를 그치고 돌아와

블레셋 사람들을 치러 갔으므로 그 곳을 셀라하마느곳¹⁵이라 칭하니라

다윗이 거기서 올라가서 엔게디 요새에 머무니라

 

<노트> 구약성서 사무엘상 23장 6-29절에는 다윗을 추격하는 사울, 그의 첩자들을 통해 사울의 추격은 계속되고 다윗은 힘든 도피 생활이 계속된다.

아비아달¹: 놉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대학살 소식을 그일라에 있는 다윗에게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22:20, 21). “그일라로”가 다음에 나오는 동사인 “내려가다”와 일치한다고 이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이 구절은 아비아달이 그일라에서 다윗을 처음으로 만났다는 의미로 생각한다.

갇혔도다²: 다윗이 그일라에 오래 머물렀기 때문에 사울은 다윗이 마침내 갇혔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에워싸려 하더니³: 사울은 다윗을 해하려고 하면서도 하나님이 자신을 인도하고 계시다고 확신했다. 아주 오랫동안 악한 생각만 한 사람에게는 그 생각이 선하게 보여 마음속에 품은 생각과 의도를 실행하는 데 양심에 거리낌이 없게 된다. 예를 들어, 고라는 하나님이 자신을 지도자로 삼으셔서 모세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키도록 했다고 확신했다. 미리암은 모세의 아내를 비난하면서 그것이 옳다고 자신했다. 여호야김은 이스라엘이 바벨론의 포로가 될 것이라는 예레미야의 예언을 받아들이지 않고 예언이 담긴 두루마리를 불태울 때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듯했다(렘 36:22~30).

반면 다윗은 마음속으로 주변 부족 앞에서 자기 민족의 정의와 위엄을 유지하고, 이스라엘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은 누구라도 돕고 싶은 열망이 있었다. 그는 자신의 지파 사람들에 영합하여 사울에게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다. 또한 블레셋 사람들처럼 전리품을 얻기 위해 가까운 지역에 있는 마을을 습격하여 싸우지도 않았다.

에봇⁴: 사울은 제사장들에게 잔학무도한 행위를 하여 우림과 둠밈이 가져다주는 유익의 상실을 자초하였다(참조 28:6). 더욱이 하나님이 사울이 배도한 이후에도 우림과 둠밈을 통해 그와 이야기했다면 그 상실은 더욱 크다 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게 된 사울은 병에 걸린 마음과 조화되는 것은 모두 하나님의 계시로 보면서 양심의 가책을 달랬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하나님의 뜻을 따르겠다는 다윗의 헌신 덕분에 사울이 잃은 에봇은 의심할 바 없이 하나님의 섭리로 다윗이라는 주인을 찾아갔다.

성경은 우림과 둠밈이 정확히 어떤 방법으로 묻는 것에 응답했는지는 보여 주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랍비들 사이에 추측이 무성했다. 바벨론 탈무드에서 신탁을 우림이라 부르는 이유는 그 자신의 발언들에 대해 설명하는 빛을 제공하기 때문이며, 또한 둠밈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선언한 것이 완전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전승에 따르면 돌에는 열두 지파 이름이 새겨져 있으며 대답을 나타내는 데 필요한 글자가 동전에 있는 글자처럼 도드라져 나온다고 한다. 열두 지파 이름에 나오는 철자가 히브리어 철자 모두를 구성하지는 않지만, 전승에 따라 이러한 이름에 “아브라함”, “이삭”, “야곱”, “여수룬 지파”가 첨가되었다(Treatise Yoma 73, a, b).

요세푸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님은 열두 개의 돌을 통해 미리 말씀하셨다. 전투에서 이겨야만 할 때 이 돌은 제사장이 흉패에 넣어 가슴에 지녔다. 군대가 행군하기 전 돌에서 휘황찬란한 광채가 비쳐 나오기 때문에 모든 백성들은 하나님이 함께하여 돕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Antiquities iii. 8. 9). 그러나 우림과 둠밈은 흉패에 달린 돌 열두 개가 아니라 흉패 양쪽에 각각 하나씩 부착되어 있던 빛나는 돌 두 개였다. 빛이 오른쪽 돌을 에워싸면 간청을 들어주신다는 뜻이며, 왼쪽 돌에 그늘이 지면 들어주시지 않는다는 뜻이었다(참조 부조와 선지자, 351). 우림과 둠밈에 나타난 대답이 항상 긍정이나 부정을 뜻하는 것만은 아니었고(참조 삿 1:2; 20:18; 삼상 23:11, 12), 제사장이 여러 질문에 문장 형태로 대답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 성을 멸하려고⁵: 의심할 여지없이 그일라 주민들은 다윗의 도움에 매우 감사했을 것이다. 또 한동안 미래에 어떤 일에 휘말릴지 전혀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렛 수풀에 계속 머물지 않고 그일라로 온 다윗은 자신과 부하들에게 열린 한 성을 발견했고, 그 성 백성들 또한 틀림없이 그같이 많은 사람들의 필요를 최선을 다해 공급했을 것이다. 그러나 소식은 빨리 전해졌다. 곧 사울은 블레셋인들과의 교전 소식을 상세히 들었고 상황은 하룻밤 사이에 바뀌었다. 그일라 사람들은 사울에 충성하여 이스라엘 내에서 그들의 지위를 유지할지, 아니면 쫓겨난 다윗과 친분관계를 유지해 그 결과로 성이 멸하게 되는 위험을 무릅쓰고 사울을 거부한다는 뜻을 비출지 결정을 내려야 했다.

다윗은 그러한 상황을 예측하는 선견지명을 보였으나, 오래된 경험에도 어디로 가야할지 몰랐다. 그일라를 구하기 위해 그 자신이 그일라로 가야하는 바로 그때 하렛에 당도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가 만약 성 안에 남는다면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와 싸워야 할 것이며 그렇게 되면 자신이 그토록 원하지 않는 내부 혁명에 불을 당기는 격이 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이 너를 붙이리라⁶: 하나님이 얼마 전에 다윗에게 싸우라고 지시한 것과는 달리, 그일라를 떠나라고 명하지 않았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인식한 후 다윗 자신의 판단력을 사용하도록 두었다. 자기 자신의 안전보다는 공동체 전체의 안전을 생각하는 훌륭한 통솔력을 보여 주었다.

하나님은 초기에 사울도 이와 동일하게 인도하셨다. 사울은 하나님의 권고에 따라 행동하지 않았다. 다윗은 권고에 따랐기 때문에 유익을 얻었으며 승리에 승리를 거듭했다. 다윗은 조용히 그일라에서 물러났으며 부하들도 주저없이 그를 따랐다. 매일매일 새로운 경험으로 다윗의 마음은 고무되었고 그의 부하들은 사랑하는 지도자에 대한 확신이 충만했다.

십. 헤브론에서 동남쪽으로 6킬로미터 떨어진 고원에 위치한 마을⁸: 헤브론은 해발 915미터인 두 산의 서쪽에 자리잡고 있다. 이 산들 사이에는 깊은 건곡이 있다. 사해로 향하는 동쪽 언덕 경사지에서부터 십 황무지가 시작되며 동쪽으로 수 킬로미터 뻗어있다. 이 지역은 불모지이며 태양이 작열하는 사막지대로, 깊은 건곡이 많이 있기 때문에 은신처로 적격이다. 넓은 지역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요새”는 망대 역할을 했으며, 서로 가까이 위치해 있기 때문에 어느 누구라도 눈에 띄지 않고 이 지역을 가로지를 수 없었다. 아마 다윗은 전략적인 요충지 여러 곳에 부하들을 배치해 두고, 매일 사울 군대의 위치를 보고받았을 것이다. 물과 음식은 거의 구하기 힘들었다.

수풀⁹: 히브리어 호르샤(h.ors∨ah). “호레쉬”(Horesh)라는 지명으로 번역해야 할 것이다. 헤브론에서 엔게디에 이르는 주요 여행로 상에 위치한 십에서 정남쪽으로 2.8킬로미터 떨어진 지점에 있다고 보는 학자들도 있다. 다윗은 식량이나 물을 찾으러 여기에 온 듯하다.

다윗에게 이르러¹⁰: 요나단은 다윗과 만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냈다. 수색대로 파견된 군사 중 몇몇이 사울에게 비밀로 한 정보를 요나단에게 제공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다윗은 많은 이들에게 호감을 사고 있다고 확신했을 것이다.

이렇게 요나단이 찾아와서 다윗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줄 필요가 있었다. 시 11편 제목에는 이 시편이 언제 기록되었는지 나와 있지 않지만, 자신에 찬 어조로 보아 요나단이 찾아온 후에 다윗이 하나님의 섭리가 열릴 것이라는 신뢰를 구절마다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시 11편; 참조 부조와 선지자, 660 661).

십 사람들¹¹: 히브리어 본문에는 정관사가 없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어떤 십 사람들”이라고 번역하는 편이 낫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아 십 사람 모두가 다윗을 배반하려 하지는 않았다. 다윗은 배반당했다는 사실을 듣고, 시 54편을 기록했다.

하길라 산 수풀¹²: 정확한 위치는 알려져 있지 않다. 십 황무지에서 사해로 길게 뻗어있는 백악질의 석회암 등성이라는 견해도 있다.

광야¹³: (제임스왕역(KJV)에는 “Jeshimon”[여시몬]이라고 되어 있음-역자 주). 문자적으로 “황무지”(참조 신 32:10; 시 68:7) 혹은 “광야”(참조 시 78:40; 106:14; 사 43:19, 20). 여기에 “여시몬”이 고유 명사로 나오는 것이 적절한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마온¹⁴: 십에서 남쪽으로 12.8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성읍. 마온 광야는 성읍 동쪽에서 사해 방향으로 뻗어 있다. 현재 텔 마인(Tell Ma‘i^n)으로 알려져 있다.

셀라하마느곳¹⁵: 문자적으로 “분리의 절벽.” 콘더(Conder)는 이렇게 말한다. “엘 콜라(El Ko^lah, 고대 하힐라의 산) 산과 마온 인근 지역 사이에 ‘바위 계곡’이라 불리는 협곡이 있다. 이곳은 틈이 좁지만 매우 깊기 때문에 몇 킬로미터를 우회하지 않고는 지나갈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사울의 시야에 다윗이 들어왔지만 따라 잡을 수 없었다. 오늘날 이 ‘분리의 절벽’은 말라키(Mala^ky)라고 불리며, 히브리어 말레코트(Mahlekot)와 거의 같은 단어이다. 주변지역에는 급류가 흐르는 하상(河床)이 많지만, 마온 근처에서는 셀라(sela‘)라는 단어에서 추론할 만한 다른 절벽을 찾을 수 없다. 그러므로 블레셋인의 급습으로 다윗이 놀랍게 탈출한 현장을 이 협곡으로 보아도 무방하며, 이로써 남부 지방에서 있었던 구사일생의 탈출 역사가 끝났다”(Tent Work, vol. 2, 91).

 

2025.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