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에 위인전> 놉 제사장을 죽인 사울
장지원
사울이 다윗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나타났다¹ 함을 들으니라
그 때에 사울이
기브아 높은 곳에서 손에 단창을 들고
에셀 나무² 아래에 앉았고
모든 신하들은 그의 곁에 섰더니
사울이 곁에 선 신하들에게 이르되
너희 베냐민 사람들아 들으라
이새의 아들이 너희에게 각기 밭과 포도원을 주며 너희를 천부장, 백부장을 삼겠느냐
너희가 다 공모하여 나를 대적하며³
내 아들이 이새의 아들과 맹약하였으되
내게 고발하는 자가 하나도 없고
나를 위하여 슬퍼하거나
내 아들이 내 신하를 선동하여 오늘이라도 매복하였다가 나를 치려 하는 것을 내게 알리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 하니
그 때에 에돔 사람 도엑이 사울의 신하 중에 섰더니 대답하여 이르되⁴
이새의 아들이 놉에 와서
아히둡의 아들 아히멜렉에게 이른 것을 내가 보았는데
아히멜렉이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묻고
그에게 음식도 주고 블레셋 사람 골리앗의 칼도 주더이다
왕이 사람을 보내어
아히둡의 아들 제사장 아히멜렉과 그의 아버지의 온 집 곧 놉에 있는 제사장들을 부르매
그들이 다 왕께 이른지라
사울이 이르되
너 아히둡의 아들아 들으라
대답하되 내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사울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이새의 아들과 공모하여 나를 대적하여 그에게 떡과 칼을 주고 그를 위하여 하나님께 물어서 그에게 오늘이라도 매복하였다가 나를 치게 하려 하였느냐 하니
아히멜렉이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⁵
왕의 모든 신하 중에 다윗 같이 충실한 자가 누구인지요
그는 왕의 사위도 되고 왕의 호위대장도 되고 왕실에서 존귀한 자가 아니니이까
내가 그를 위하여 하나님께 물은 것이 오늘이 처음이니이까⁶ 결단코 아니니이다
원하건대 왕은 종과 종의 아비의 온 집에 아무것도 돌리지 마옵소서
왕의 종은 이 모든 크고 작은 일에 관하여 아는 것이 없나이다 하니라
왕이 이르되
아히멜렉아 네가 반드시 죽을 것이요 너와 네 아비의 온 집도 그러하리라 하고
왕이 좌우의 시위자⁷에게 이르되
돌아가서 여호와의 제사장들을 죽이라
그들도 다윗과 합력하였고 또 그들이 다윗이 도망한 것을 알고도 내게 알리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나
왕의 신하들이 손을 들어 여호와의 제사장들 죽이기를 싫어한지라
왕이 도엑에게 이르되
너는 돌아가서 제사장들을 죽이라 하매
에돔 사람 도엑⁸이 돌아가서 제사장들을 쳐서 그 날에 세마포 에봇 입은 자 팔십오 명을 죽였고
제사장들의 성읍 놉의 남녀⁹와 아이들과 젖 먹는 자들과 소와 나귀와 양을 칼로 쳤더라
아히둡의 아들 아히멜렉의 아들 중 하나가 피하였으니
그의 이름은 아비아달¹⁰이라
그가 도망하여 다윗에게로 가서
사울이 여호와의 제사장들 죽인 일을 다윗에게 고하매¹¹
다윗이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그 날에 에돔 사람 도엑이 거기 있기로 그가 반드시 사울에게 말할 줄 내가 알았노라
네 아버지 집의 모든 사람 죽은 것이 나의 탓이로다
두려워하지 말고 내게 있으라¹²
내 생명을 찾는 자가 네 생명도 찾는 자니
네가 나와 함께 있으면 안전하리라 하니라
<노트> 구약 성서 사무엘상 22장 6-23절은 놉 제사장을 죽이는 사울의 이야기이다.
다윗과…나타났다¹: 이 장에 나오는 나머지 이야기를, 히브리 문서에서 때때로 사용하는 대로 다른 주제를 논하기 전에 한 주제를 결론으로 끌어가기 위해 엄격한 연대 순서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보여 주는 실례로 보는 성경 주석자들도 있다. 이 구절을 그렇게 해석한다면, 도엑이 제사장 아히멜렉을 고발한 것과 놉에서의 학살이 다윗의 처음 탈출 직후에 있었지만, 다음 장에서 아비아달이 그일라에 도착한 것을 설명하기 위해 학살 사건을 도입할 필요가 생길 때까지 다윗과 그의 부하들의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해석은 다윗이 실제로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몰랐다는 아히멜렉의 자백에 주로 근거를 두고 있다. 이 추론이 비논리적인 것은 아니다.
이야기가 연속적인 사건을 서술하고 있다고 보는 시각 또한 타당하다. 그럴 경우 다윗과 그의 부하들이 나타났다는 것은, 아둘람 요새에 위치한 은신처에서 나와 헤렛 수풀에 진을 쳤음이 알려졌으며, 이 소식을 전해들은 왕은 부하들에게 반역자와 공모했다며 불만을 터트렸다(8절)는 뜻이다. 그리하여 목자였던 도엑은 기회를 잡아 아히멜렉을 밀고하기에 이른다(9, 10절). 도엑과 같은 신분의 사람이 다윗을 성소에서 보았을 때 그가 거기에 온 실제 이유를 알았다고 생각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다윗이 사울의 심부름을 가는 길에 자문을 구하기 위한 목적으로 그곳에 들른 것에 이상한 점이 없었을 것이므로 그 당시 도엑은 이것을 신고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아히멜렉의 대답은 사건의 순서를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는 다윗이 방문했을 당시 아무것도 몰랐다고 해명함으로써, 배신으로 추정된 행위를 한 때와 제사장들이 사울 앞에서 심문을 받을 때 사이의 시간 간격이 얼마나 되는지에 상관없이 자신을 논리적으로 변호했기 때문이다(참조 14, 15절 주석). 그러므로 반드시 다윗이 성소를 방문한 직후에 제사장 학살과 놉에서의 대학살이 일어났다고 볼 수는 없다(참조 부조와 선지자, 658 659).
에셀나무²: (제임스왕역(KJV)에는 “라마에 있는 한 나무”로 되어 있음-역자 주). 라마와 기브아는 꽤 멀리 떨어져 있었으므로(참조 1:1 주석), 사울이 라마에 위치한 나무 아래 앉아 있으면서 기브아에 있을 수가 없다. 여기서 히브리어 라마(ramah)는 겔 16:24, 25에서처럼 “높은 곳” 즉 “높은 대(臺)”로 번역해야 할 것이다. 기브아의 높은 곳은 아마도 그 성읍 사람들이 좋아하는 만남의 장소였을 것이다.
공모하여 나를 대적하며³: 정신병에 가까운 질투심에 사울은 자신을 동정하면서, 다윗을 잡으려는 계획이 좌절된 것을 자신을 뺀 모든 사람들의 탓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이제 그는 자신의 부족이 유다에서 온 적수를 돕기 위해 정보를 숨겼다며 비난에 열을 올린다. 사울은 아들조차도 자신에게 등을 돌리고 반역죄를 지었다고 생각했다. 이전에도 한 번 아들을 죽이겠다고 위협한 적이 있다(14:44). 이제 그는 백성들이 전에 없이 요나단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음을 알았다.
도엑이…대답하여 가로되⁴: 목자장 도엑은 왕과 함께 자신의 지위를 높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복수할 기회가 왔음을 알아챘다(참조 21:7 주석). 도엑은 다윗에게 음식을 주었을 뿐 아니라 그를 위하여 하나님께 묻고 무기까지 제공해 준 제사장(10절)에 비하면 요나단과 베냐민 지파는 잘못이 없다고 사울에게 말한 것이나 다름없다. 도엑은 상을 후하게 주며 높은 지위도 주겠다는 유혹를 받고서야 자청해서 정보를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참조 부조와 선지자, 659).
아히멜렉이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⁵: 아히멜렉은 다윗을 도왔다는 죄목은 부인하지 않았지만 불충했다는 죄목은 부인했다. 그의 대답으로 이 사건이 언제 일어났는지 의견이 분분하다(참조 6절 주석). 다윗이 기브아에서 도망간 즉시 이 사건이 일어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아히멜렉의 대답에서 그가 그 순간까지 다윗이 더 이상 사울의 가장 충실한 신하가 아니며 왕의 집안에서 존귀히 여김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에 무지했다고 해석한다. 다윗이 오랫동안 도망자이자 범죄자였는데도 사울에게 그가 “왕의 모신도 되고 왕실에서 존귀한 자가 아니니이까”라고 말할 만큼 아히멜렉이 무지하고 어리석을 리가 없다.
이러한 결론은 동사를 현재 시제로 번역한 영어 성경에 근거하고 있다. 실제로 히브리어 본문에는 제임스왕역(KJV)에서 “goeth”로 번역된 수르(sur)라는 동사 하나만 있다. 이 절에서 “is”가 세 번 나오지만 원문에 첨가된 것이다. 여기 나오는 수르라는 동사의 형태는 현재와 과거의 의미가 모두 될 수 있기 때문에, 지금 논의 중인 기간과 관련하여 문장을 매우 모호하게 만들고 있다. 따라서 시제는 문맥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 아히멜렉의 말을 문자적으로 번역해 보면 다음과 같다. “왕의 모든 신하 중에 다윗만큼 충실한 자가 누구인가? 그는 왕의 사위이며 당신의 분부대로 따르는(또는 따랐으며), 왕실에서 존귀한 자가 아니니이까?” 문맥상 과거형을 쓰는 것이 옳은 것 같다. 이러한 문장을 영어로 번역할 때 필요한 동사를 삽입하는 것은 번역자가 제일 좋다고 판단하는 대로 맡겨야 하겠지만, 그럴 경우 본질적으로 의견 차이가 생기기 마련이다. 아히멜렉의 말은 분명 그 당시(최근이든 오래 전이든) 왕의 존귀한 대표자라고 생각한 사람을 도왔다는 뜻이다.
내가 그를 위하여…오늘이 처음이니이까⁶: 제임스왕역(KJV)이나 개정표준역(RSV)보다는 개정역(RV)이나 미국표준역(ASV)의 다음 번역이 원문에 가깝다. “내가 그를 위해 하나님께 묻는 일을 시작한 것이 오늘입니까?” 이 말은 만약 다윗의 처지를 알고 나서 지금 그를 위해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기 시작한다면 사울의 공식적인 적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겠지만, 사울과 다윗 사이에 분쟁이 있음을 알기 전에 한 행위는 충성심 문제와 아무 상관이 없다는 의미이다. 아히멜렉은 사울의 문책-사울의 생각을 거슬려 우림과 둠밈을 사용한 것-에 대해, 사울과 참으로 가까운 사람, 충성되고 헌신적이었던 사람을 위해 여호와께 여쭈었으며, 왕을 대신한 사자에게 도움을 제공했다고 진술함으로써 침착하게 답했다. 그가 마지막 한 말은 상황을 전혀 알지 못했다고 부인한 것이다.
시위자⁷: 히브리어 라침(ras.im). 문자적으로 “달리는 자”라는 뜻이며 명백히 여기서처럼 시위대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사무엘은 이스라엘이 요구한 왕이 아들을 취하고 그들 중 일부를 징집하여 “병거 앞에서 달리도록”(8:11) 할 것이라고 경고했을 때 이 직책을 두고 한 말이었다. 사울은 시위병이 손을 들어 여호와의 제사장 치기를 거부하자 좌절감을 느꼈다. 왕이 요구한 것은 충격적인 행동이었다. 오늘날 이교도 가운데서도 의사(醫師)는 신성하게 여겨지며 아무도 감히 손을 들어 그를 치려고 하지 않는다. 하물며 사울은 지극히 높으신 자의 종을 얼마나 존중해 주어야 하겠는가!
에돔 사람 도엑⁸: 여기에 나오는 에서의 자손은 질투가 심하고 화를 잘 내며, 악의를 품고 악한 본성에서 나온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어떠한 핑곗거리라도 얻으려 갈구하는 사울의 마음을 닮은 사람으로 등장한다. 이제 이스라엘의 왕으로부터 허락을 맡은 도엑은 아히멜렉과 그의 동료들이 신성한 예복을 입고 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손을 들어 하나님의 종을 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날 여든다섯 명이 이기적인 탐욕 앞에서 쓰러져 갔다. 사울이 아각을 살려 주면서 자신에게 종교적인 열정이 있다고 공언했을 때(15:20)와, 광란에 휩싸여 유대인 역사상 전대미문의 만행을 저질렀을 때가 얼마나 큰 대조를 이루는가.
남녀⁹: 무고한 사람들이 죄를 뒤집어 쓴 채 고통을 받았다. 놉의 주민들은 성막과 제사장의 가족을 놉으로 이주시키는 것(참조 21:1 주석)과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그러나 사울은 무분별하고 극악무도한 증오심에 사로잡혀 성읍 전체를 쓸어버렸다. 이전에 블레셋인들이 성스러운 도성 실로를 파괴한 적이 한 번 있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적이었지만 성읍 전체를 절멸했다는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아비아달¹⁰: 놉에서의 유일한 생존자로 기록되어 있다. 다윗의 “뒤를 좇아” 도망한 그는 다윗이 하렛 수풀을 떠나 그일라로 향할 때 다윗에게 이르렀다(참조 23:2, 6 주석).
다윗에게 고하매¹¹: 문자적으로 “다윗이 알도록 했다.” 다윗은 그 전에 소식을 전해듣지 못한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다윗이 놉을 방문한 것과 관련하여 잔학 행위가 이전에 있었다기보다는 아비아달이 그일라에 도착하기 직전에 일어났음을 나타낸다.
내게 있으라¹²: 다윗이 아비아달을 일행으로 환영할 때 얼마나 기뻤을까? 우림과 둠밈을 보았고(23:6) 놉이 초토화되었지만 하나님의 손이 에봇과 그것을 지키는 제사장 위에 있음을 알고 용기백배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윗이 그 비극의 끔찍한 면면을 전해 들었을 때, 대제사장의 죽음과 그와 함께 다른 사람들이 죽임을 당한 데에는 자신에게 책임이 있음을 깨닫고 자책감에 사로잡혔다. 이제 남을 속이려는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더라면 하고 후회하고 있다. 그 해를 되돌려 다시 살 수 있다면 그는 기꺼이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를 되돌려 놓을 수는 없다. 자책감이 무섭게 밀려왔지만 “앞에 있는 것을 잡는”(빌 3:13) 수밖에 없었다.
시 52편은 다윗이 도엑의 행위를 들은 후에 쓴 것이다(참조 52편 표제). 다윗은 사람이 하나님의 영원한 은혜에 의지하지 않고 오만하게 반항하며 그분의 계획에 맞설 수 있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도엑은 면도날같이 날카로운 혀로 기만과 재난을 뿌림으로 협잡과 악의 화신(化身)이 되었다. 그러나 그가 뿌린 대로 거두게 될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202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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