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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속에 위인전> 아둘람 굴로 도망간 다윗/장지원

노파 2025. 4. 7. 00:02

 

<성경 속에 위인전> 아둘람 굴로 도망간 다윗

장지원

 

 

그러므로 다윗이 그 곳을 떠나 아둘람 굴¹로 도망하매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듣고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

다윗이 거기서 모압 미스베²로 가서

모압 왕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어떻게 하실지를 내가 알기까지 나의 부모가 나와서 당신들과 함께 있게 하기를 청하나이다 하고

부모를 인도하여

모압 왕 앞에 나아갔더니

그들은 다윗이 요새³에 있을 동안에 모압 왕과 함께 있었더라

선지자 갓⁴이 다윗에게 이르되

너는 이 요새에 있지 말고⁵ 떠나 유다 땅으로 들어가라

다윗이 떠나 헤렛⁶ 수풀에 이르니라

 

<노트> 구약 성서 사무엘상 22장 1-5절은 다윗의 도망은 계속 되고, 아둘람 굴로 피신하는 다윗의 이야기이다.

아둘람굴¹: 요세푸스에 따르면(Anti- quities vi. 12. 3), 아둘람 성읍 근방에 있는 동굴이라고 한다. 아둘람은 산지 지역이 셰펠라 쪽으로 낮아지기 시작하는 서쪽 비탈에 위치한 예루살렘에서 남서쪽으로 26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키르베트 엣-셰이크 마드쿠르(Khirbet esh-Sheikh Madhku^r)로 확인되었다. 아둘람 성읍은 다윗이 블레셋 거인과 대면한 엘라 계곡 동쪽 끝자락에 있다. 구릉 지역에는 동굴이 많이 있는데 몇몇 동굴은 아주 크다. 사암층이 아주 부드러워 조개 껍데기로도 벽을 깎아 내릴 수 있다. 수 세기가 지난 지금도 그 껍데기 자국이 남아 있다. 이러한 동굴 중 일부에서 양치기들이 가축을 키웠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박해로 팔레스타인 성읍들에서 쫓겨났을 때 아둘람에서 남쪽으로 몇 킬로미터 떨어진 몇몇 동굴에서 살았다고 전해진다. 일부 동굴에는 로마의 카타콤과 유사한 납골당과 토굴이 있다. 아둘람굴을 은신처로 삼은 다윗은 베들레헴의 우물에서 길은 물을 마시고 싶어했다. 용맹스런 다윗의 부하 셋이 목숨을 걸고 예루살렘 근방 르바임 계곡을 침략했던 블레셋인의 경계를 넘나들며 사랑하는 지도자에게 우물물을 가져다주었다. 이들의 충성심에 깊이 감동받은 다윗은 여호와께 예물로 물을 부었다(삼하 23:13~17; 대상 11:15~19). 이 사건은 추수기(삼하 23:13; 참조 삼상 23:1), 즉 한 해 중 봄과 초여름에 일어났다. 다윗은 이 동굴에서 겨울을 보낸 것 같다.

시 57편 표제에 따르면 다윗이 아둘람굴에서 이 시편을 썼다고 한다. 믿음과 용기를 회복한 다윗은 “사자 중에 처하며…곧 인생 중에라 저희 이는 창과 살이요 저희 혀는 날카로운 칼 같”(시 57:4)은 상황에 처해 있었지만 하나님이 구원해 주리라는 확신을 나타냈다. 그의 태도가 변한 이유는 부분적으로 선지자 갓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갓이 동굴에서 지내던 다윗과 그 일행을 만나 함께 지냈으리라 추측한다(참조 5절 주석).

미스베²: 문자적으로 “망대.” 모압의 산악 지역 곳곳에서 이러한 “요새”의 유적을 발견할 수 있다. 이것들은 산등성이에서 서로 볼 수 있도록 지어졌다. 각 요새에는 정찰대가 주둔해 연락망을 구축했다. 미스베가 정확하게 모압 어디에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기르에서 멀지 않은 모압 산지의 요새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기르는 후에 모압의 수도가 된 것으로 보인다(참조 왕하 3:25~27). 오늘날의 지명은 케라크(Kerak)인데, 와디 케라크(Wadi Kerak)의 비탈에 위치한 마을로, 방어하기에 적합한 고지대에 자리잡고 있었다. 기르에서 22.4킬로미터 떨어진 곳에는 와디 헤사(Wadi H.esa-)가 있는데 에돔의 북부 경계선인 세렛강으로 성경에 나온다. 사울은 왕위에 오른 후 모압과 전쟁을 벌였다(삼상 14:47). 그러므로 사울이 무법자로 선언한 이들은 모압으로 도망갔다. 다윗 또한 증조할머니 룻이 모압 사람이라는 사실에 영향을 받아 거기로 도피한 것 같다.

요새³: 히브리어 므추다(mes.udah). “성채” 또는 “요새”라는 뜻으로, “사냥하다”는 의미의 어근 추드(s.ud)에서 나온 말이다.

갓⁴: 다윗의 생애에서 두각을 나타낸 한 사람이 처음으로 언급되고 있다. 사울이 제사장들뿐 아니라 사무엘의 수하에 있던 선지자들에게도 등을 돌리자, 진실로 경건한 사람들의 마음이 왕에게서 소원해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아마도 다름 아닌 사무엘 자신이 갓을 보내 다윗과 연락을 하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미래의 이스라엘왕은 하나님께 영감받은 선견자와 함께함으로써 크게 도움받을 것이었다. 다윗의 생애 동안 갓은 그와 함께한 선견자이다(삼하 24:11~19). 선지자 나단과 함께 갓은 다윗의 전기를 편찬했다(대상 29:29). 갓이 평생 친구였던 다윗 왕보다 오래 살았다는 사실로 미루어 보아 젊었을 때 다윗을 찾아간 것으로 보인다. 성경에는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갓은 다윗을 찾아 미스바까지 여행했다기보다는 다윗이 아둘람에 있을 때 그에게 가서 모압까지 동행한 듯하다. 성경의 여러 부분에서 다윗과 관련한 정보의 편린을 종합해 보면, 하나님이 그의 자녀들을 돕는 이야기를 설명하면서 많은 상세한 이야기가 빠졌음을 알 수 있다. 모든 이야기를 복원한다면 흥미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선지자를 보내 인도한 것처럼 사울에게도 똑같이 했다. 두 사람의 삶은 대조를 이루며, 하나님은 차별하지 않는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 준다. 하나님의 표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사람은 실패하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진정한 성공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일들을 하나라도 덜 이루기 때문이 아니라, 하늘의 계획이 계속 거부되었기 때문이다.

요새에 있지 말고⁵: 다윗은 모압에 남아 있을 수 없었다. 유다에서 그를 필요로 했다. 사울의 군대는 계속되는 블레셋인의 침략에 무기력했으며(삼상 23:1, 27; 대상 11:15), 상황이 불안정했다. 나발의 이야기는 목자들도 무장 병력의 보호가 필요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삼상 25:15, 16, 21). 사울이 다윗을 증오하는 것이 다윗이 외국으로 도망갈 이유가 될 수 없었다. 과거에 다윗을 수없이 많이 보호했던 하나님이 지금 와서 그를 버리지 않을 것이며, 고난과 시련을 통해 미래의 지도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상황을 전개시켜 나갈 것이었다.

고난을 통한 훈련은 심지어 예수의 생애에서도 효력이 있었다. 우리 구원의 주도 “고난으로 말미암아 온전케”(히 2:10) 되었다. 다윗은 온갖 문제의 요인이 도사리고 있는 유다의 한복판으로 돌아옴으로써 주위 사람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어야 했다. 오늘날 하나님은 어떠한 환경에서도 당신의 자녀들에게 신실함을 보여 주고 싶어한다. 그분은 상황이 어려워질 때 자신의 자녀들이 후퇴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분을 따르는 자들이 기독교의 아름다움을 보여 주고 기독교가 인간 자신과 사단을 섬기는 것보다 훨씬 우월하다는 사실을 드러내기를 원한다.

헤렛⁶: 헤브론 서북쪽 산악지역 끝자락에 위치한 오늘날의 카라스(Khara^s)로 보는 학자들도 있으나 확실하지는 않다.

 

2025.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