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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노파 2011. 5. 7. 14:38

 

 

단편소설

단편소설 등단작 / 장지원/2010년7월 문예사조 소설 신인상

 

장지원

 

 

때는 1950년 가을

돌담 곁에 서 있는 대추나무에 열린 열매가 소담스럽게 가을 햇살을 받으며 붉게 익어가고 있을 때

고즈넉한 산골 마을에 정적을 깨뜨리는 총성이

가을걷이에 바쁜 시골 아낙의 가슴을 훌고 지나간다.

이놈의 세상을 한탄하는 시골 아낙네의 한숨이 짓는 해를 따라 서산으로 넘어가고 소백산 골짜기에도 어둠이 몸서리치는 전쟁의 공포와 함께 짙게 갈려 내려온다.

 

 

 

다른 두 길

 

6.25 사변이 발발한 지 벌써 넉 달이 차오른다.

경상북도 최북단 태백산과 소백산이 만나는 조용하던 산골 마을 남대리

전쟁 통이라지만 여느 때와 별반 다른 게 없이 일상은 산속에 푹 빠져 흙냄새 조차도 드러내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이 마을 이장 댁 아주머니는 변함없이 오늘도 하루 종일 화전 밭에서 일을 하고 해 동무하여 어두컴컴한 부엌에 들어선다.

난리 통에도 오일장에는 곡 빠지지 않는 남편

언제 올는지 이장 댁 아주머니의 걱정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부석 장터를 가자면 메기재라고도 하는 마구령을 넘어 십리는 족하게 가야 하는데

옛날엔 도적들이 자주 출몰하는 험한 길이기도 한

마구령에는 어둠이 무거운 눈꺼풀처럼 내리 덮이고 있을 때

사립문 밖에서 인기척 소리가 들린다.

약간 소란스러움에 이장 댁 아주머니 저녁 짓다 말고

생각 없이 입 속 말로

“이게 무슨 소리지”

이때 낯선 남정네의 목소리에 놀라는 이장 댁 아주머니

“이장 동무네 있소”

“이장 동무네 있으면 빨리 나오면 좋겠소.”

투박한 이북 말투에 놀란 이장 댁 아주머니

떨리는 가슴을 진정이라도 하듯이 광 창구멍으로 밖의 상황을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소스라치게 놀란다.

시선이 멎는 곳에

석양에 두 눈알만 반작반작 빛나는 다섯 명의 사람

누런 인민군 복장에 별이 달린 모자를 눌러쓰고 총부리를 겨누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국군에게 쫓기고 있는 괴뢰군이 분명하다.

 

순간 이장 댁 아주머니는 두려움은 잠깐이고

부뚜막에 놓인 바가지를 보는 순간

여인네의 지혜와 재치가 번득인다.

부엌 한곳에서 잠자고 있던 지혜를 붙잡는다.

금방 길러온 물동이에서 찬물을 한 바가지 담아 재빠르게 밖으로 나선다.

기다렸다는 듯이 살갑게 인사를 건네는 척하는 이장 댁 아주머니

“젊은이들 어디서 오는지는 모르지만도 여기까지 오느라 욕들 봤다”

“우선 시원한 물 한 모금부터 마시면 좋겠데이”

물바가지를 내미는 이장 댁 아주머니 얼굴엔 약간의 두려움과 소박한 인심이 생면부지 국군에게 쫓기는 인민군 젊은이들의 마음을 순간적으로 사로잡는다.

 

그중 한 청년이 물 담긴 바가지를 낚아채듯이 덥석 잡더니 벌컥벌컥 단숨에 들이키더니

“야! 이레 참 맛있다야 동무네 날래 마시라야”

물바가지를 옆에 서 있는 인민군 젊은이에게 건 내주고는

흴 것 이장 댁 아주머니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입을 연다.

“아지마이 동무 우리 며칠째 밥 못 먹었어야 밥 있으면 날래 좀 주라야”

전쟁의 심각함을 한마디로 말해주는 짤막한 말이 건너오고 긴장감은 잠시 수그러진다.

 

이장 댁 아주머니는 긴장한 탓에

정신없이 밥을 지어 평상으로 차려 나오는데 아주머니의 다리는 후둘 후들 떨리고 있었다.

그사이 전쟁에 지쳐있는 젊은이들

피곤함에 곯아떨어진 젊은이들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군대에 동생을 보내놓고 전쟁을 맞는 이장 댁 아주머니

국군에 입대해 어디선가 이 전쟁을 치르고 있는 하나밖에 없는 남동생 생각에 잠시 가슴에 이슬이 맺힌다.

그러다가

“아니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젊은이들이 잡은 총구멍을 보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어 마음을 다잡아 보는 이장 댁 아주머니

마음을 진정할 수 없는 이장 댁 아주머니의 입술은 핫 여름에 사시나무 떨듯

말마다 떨려 더듬거리고 있었다.

“젊은이들 진지 가지고 왔으니 잠들 깨에소”

이장 댁 아주머니의 기어들어가는 모깃소리만 한 작은 소리에도 젊은이들은 화들짝 깨더니

총을 잡고 사방을 경계하고는 누가 뭐라고 말하지 않아도 밥상 앞으로 앉는다.

“아주마이 동무 고맙습네다. 고맙습네다.”

고맙다는 인사를 웅덩이에 돌 던지듯 던지고는 양푼에 수북한 밥을 허겁지겁 금세 말끔히 비운다.

숭늉까지 모두 비운 청년들

급히 갈 곳이라도 있는 양 평상에서 일어서더니 그중에 한 사람이

“동무들 시간이 없습네다. 빨리 서둘러야 해야”

“아지마이 동무 고맙습네다.”

“우리네 나쁜 사람 아니라요.”

“우리네 갑내다”

젊은이들은 어둠이 짙게 내리는 마구령쪽으로 사라지고

아무도 없는 처마 끝엔 공포가 다시 짓누른다.

가슴 한편에 찾아오는 적막감

등에서 흐르는 식은땀에 입고 있는 무명 적삼은 흠뻑 젖어 몸에 찰싹 달라붙는다.

 

 

 

 

6.25 사변과 1· 4 후퇴

 

인민군들이 떠난 지

한 20여 분이나 지났을까?

그들이 숨어든 마구령 쪽에서 빨간 불꽃의 신호탄이 굉음을 내며 산 중턱을 가르더니 몇 발의 총성이 연달아서 들리기 시작한다.

국군과 북한 괴뢰군 사이에 교전이 붙는 게 분명하다

이장 댁 아주머니는 부석 오일장에 간 서방님 생각에 쉬 잠자리에 들지 못하고 메기재 쪽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전쟁은 끝나지 않고 그해 가을을 보내고 겨울을 맞는다.

1월4일 전장의 새벽이 창살에 비칠 때

삽짝 밖에서 웅성대는 소리에 이장 댁 아주머니도 선잠에서 깬다.

이웃집 영월 어른과 서벽 어른이 마주 서서 무언가 심각하게 말씀을 나누고 있었다.

이때 이장은

어제 부석 장엘 다녀와 술에 곯아떨어져 세상모르고 편하게 자고 있다.

생각다 못해 남편을 깨우는 이장 댁 아주머니

“여보 밖에 좀 나가 보시소오.”

“아무래도 이상해요”

“어제 일도 그랬고”

아내에게 등을 떠밀려 바지춤을 잡고 나가며 잠을 깨워보는 남대리 이장

삽짝 밖에 서 있는 동리 어른들을 보면서

“아이고 어르신네들 잠 안 자고 이 새벽에 무슨 일이 있는겨”

전쟁에 둔감한 젊은 이장은 어제 마신 덜 깬 술을 토하듯

“그러잖아도 어제 장날 면사무소에 갔는데요.”

태연스레 말을 잇는다.

“면장님 말씀이 중공군이 쳐들어와서 밀고 내려오니 피란을 가야 한다나. 말이 있었니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서벽 어른이 말을 받아

고함 섞인 말투로 나무라듯 말을 퍼붓는다.

“자넨 그런 일이 있었으면 빨리 동내에 알려야 하지 무슨 놈이 술독에 빠져 정신을 못 차리노”

 

이야기는 이쯤에서 수습이 되는 것 같아 각자가 꼬리를 감추듯 황급히 각자의 집으로 흩어진다.

아침 상머리에서 이장은 아내에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우리도 파란을 가야 할 그것 같네. 그려”

순간 이장 댁 아주머니는

배 속에 아이를 생각하며 부른 배를 두 손으로 감싸 안는다.

양식과 밥 끓일 냄비와 옷가지를 챙긴 이장 댁 아주머니

서방을 잡아끌다시피 집을 나서 한만은 피난길을 나선다.

어느새 피난을 떠나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나 마구령을 수많은 사람이 줄을 지어 넘는다.

 

피난길에는 온 동리가 다 나온 것 같아 서로 간에 위로와 힘이 되어

한두 시간 후 우리는 부석 장터에 도착한다.

그 넓은 장바닥에 사람 하나 없고 두고 간 빈집을 지키는 개들만이 있을 뿐

텅 빈 장터가 너무 크게 보인다.

인적이 없는 골목길이 마치 공동묘지를 지나는 것 같아 적막하기만 하다.

우리보다 먼저 피난을 가고 부석장터는 공동화된 상태다.

 

한나절 걸었으니 만삭의 이장 댁 아주머니로서는 힘들고 고단한 길이 아닐 수 없다.

여기다 차가운 싸락눈까지 날리니 피난길에 고통은 말할 수 없는 시련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이장 댁 아주머니는 전쟁으로 인한 피난 길 상황을 설명이라도 한 듯

배 속의 아가에게 말을 걸어 본다.

“아가야 조금만 참아라. 안전한 곳으로 같이 가는 거다.”

배 속의 아가는 알아듣는지

이장 댁 아주머니의 얼굴엔 비장한 각오가 역력해 보인다.

북풍은 싸락눈까지 몰고 와 피난길을 순식간에 안동까지 밀어붙였고

모두가 눈 붙일 겨를도 없어 뜬눈으로 밤새 걸어야만 했다.

전쟁과 추위는 피난길에 사람들의 얼굴을 소나무구피처럼 시물시물 부서져 내리게 하였다.

 

변변치 않은 끼니와 옷가지를 의지해 눈도 제대로 못 붙이는 피난살이

너나 할 것 없이 목숨만이라도 부지하면 다행이라 생각한다.

이장 댁 아주머니의 다부진 마음가짐이 강인한 모성애로 붙들어 매어 준다.

-이장 댁 아들은 세월이 지난 지금에야 어머니의 마음을 알 것 같아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며 몹시 송구하여 어쩔 줄을 몰라 한다.-

배속에 아가는 지칠 대로 지친 이장 댁 아주머니를 더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른다.

이장 댁 아주머니와 배속에 아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으니

이 전쟁이 빨리 끝나기만을 차가운 두 손을 모으고 기도로 버틸 수밖에 없었다.

 

 

 

 

피난길에서 만난 미륵

 

피난 길 이틀째

간간이 날리는 눈발을 온몸에 맞으며 걷는 걸음이 너무 무겁게 늘어지는 피난길이다.

이장 댁 아주머니가 피난 인파에 섞여 안동군 도리원에 들어선다.

해는 서산으로 넘어가며 바람은 더 차갑게 온몸을 그냥 두지 않았다.

어둠을 몰고 오는 바람은 허름한 무명 옷깃마저 헤집자

한기에 온몸이 꽁꽁 얼어붙는 것만 같다.

제비원 암자에는 벌써 피난 인파로 발 디딜 틈도 없었다.

이장 댁 아주머니는 간신히 벽을 바람막이 삼아 봇짐을 두르고 밤을 지낼 준비를 한다.

 

저녁을 때우는 둥 마는 둥

차가운 밤을 가누는 전쟁의 공포를 가슴으로 보듬고 눈을 감아 보지만 두고 온 집 생각

게다가

오늘 저녁 태 속에 있는 아가 걱정이 앞서는 이장 댁 아주머니.

이때 난데없이

“아이고 이래서야 안 되지!”

비명 같은 한 할머니의 외마디 소리가

양수에 파문을 일으키며 아가의 귓가에 희미하게 들린다.

다시 그 할머니는 말을 잇는다.

“이 일은 하나님도 알고 부처님도 다 안다.”

“암자 안에 누구 한 사람 나오소.”

“이 엄동에 산모가 얼어 죽게 되었데이”

“퍼뜩 나오라카이”

노파는 이장 댁 아주머니의 팔을 사정없이 잡아끈다.

이장 댁 아주머니는 노파의 손에 끌려 암자 안으로 들어선다.

채면도 없이 노파는 궁둥이를 들이밀며

“좀 비키라 산모다. 안 보이나!”

“너들 눈이 삐졌나 그러는 게 아니데이”

순식간에 생긴 일에 주변을 돌아보는 이장 댁 아주머니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다.

내 자리를 마련해 주고는 밖으로 획 나가는 노파의 뒷모습에서는 인자함이 묻어난다.

이 일이 있었던 후로 내내 그 노파의 얼굴을 보지 못하는 이장 댁의 마음이 그리 편치 못하였다.

밤새 생각은 온통 고마우신 할머니 생각에

새우잠에다 뒤척이다 보니 날이 샌다.

새벽이 문창호지 틈새로 아침을 밝힌다.

이장 댁 아주머니의 마음은 간밤의 그 노파가 밤새 눈에 밟혀 마음이 편치 못하였지만

배속에 아가는 응급 결에 섣달 추운 밤을 그나마도 잘 보낼 수 있었다.

 

아침 햇살이 추위를 가르며 바위에 깎아 세운 제비원 미륵의 얼굴을 조용히 씻겨 내리고 있었다.

이 난리 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햇살을 받으며 미소를 보내는 미륵상

그 미륵의 얼굴을 보는 순간

이장 댁 아주머니는 아! 하며

소스라치게 놀란다.

“그 할머니!”

“그 노파!”

“틀림이 없어”

그렇게도 똑같을 수가 없다는 생각에 눈을 의심이라도 하며 미륵을 한동안 바라보는 이장 댁 아주머니

어젯밤 내 손을 잡아끌다시피 암자로 데리고 들어간

그 노파의 모습이 지금 나를 보고 있는 미륵과 너무나 똑같아,

분명했다.

이장 댁 아주머니에겐 한없이 감사하고 고마운 은인이다.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이장 댁 아주머니를 보고 미소를 보내는 미륵

“간밤 아무 일이 없어서 고맙구나.”

어제와는 대조적으로

조용한 할머니의 목소리로 이장 댁 아주머니의 귓가에 들린다.

이장 댁 아주머니의 눈가에는 뜨거운 이슬방울이 조용히 맺힌다.

미륵의 자비가 햇살처럼 이장 댁 아주머니의 만삭된 배를 어루만지고 있음을 느끼는 이장 댁 아주머니

전쟁의 아픔도 피난길의 고통도 이 순간만큼은 모든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 같았다.

이장 댁 아주머니의 눈가에서 조용히 잔주름이 잡힌다.

닫혔던 입술이 조금씩 달싹거리며 입 안에 말로 기도를 올린다.

“미륵이시여 당신은 나의 신이시며 내 주인 입니더”

“간밤에 나를 구해준 그 노파가 아니신 거야”

“이년에게 길을 보여 주시고 깨닫게 해 주시이소”

“배 속에 아이를 위해서라면 당신의 길을 따르겠니더”

 

 

 

귀향길

 

이장 댁 아주머니는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참 잘생긴 미륵이네”

“내가 이렇게 훤칠한 미륵의 길을 따를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가야지”

“배 속에 아이가 이 미륵을 닮았으면”…

“아가야 이 미륵처럼 잘생긴 아기로 태어나거래이”

이장 댁 아주머니의 기도는 너무나 진지하기만 하다.

아침 햇살은 미륵의 가슴에 비췄다가 그 온기로 이장 댁 아주머니의 가슴에 뗏장처럼 잔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인자하게 생긴 미륵이 이장 댁 아주머니의 가슴에 속삭인다.

“지금은 네 배 속에 자라는 아이만을 생각하거라”

천둥처럼 들리는 미륵의 말을 가슴으로 품는다.

이장 댁 아주머니는 설래 봇짐을 정리하여 남편의 손을 끌다시피 제비원 암자를 빠져나온다.

이장은 영문도 모르고 아주머니와 함께

걸어온 길을 되돌아 다시 걷기 시작한다.

 

4일 만에 이장 댁 아주머니는 무거운 만삭의 배를 부둥켜안고 마구령을 다시 넘어 남대리에 돌아온다.

간간이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살던 집에 다시 돌아온 이장 내외는

악몽 같은 4일의 피난길이 생각할수록 몸서리쳐진다.

피난을 못 가고 마을을 지키던 나이 많은 노인들이 반갑다고

손을 붙잡고 그간의 안부를 묻는다.

“야야 몸은 괜찮았나.”

“참말로 변고데이”

“우짜든 잘 돌아왔으니 됐다”

그간의 피난길에 있었던 궁금증에 캐묻는 노인들의 얼굴은 며칠 사이 부쩍 더 늙은 것 같아 이장 댁 아주머니의 마음도 그리 편하지 않았다.

그 간의 피곤이 부음처럼 덮치고 이장 댁 아주머니는 고단함을 이기지 못하고 남편이 펴준 요부대기 위에서 이내 곯아떨어진다.

코까지 고는 아내를 내려다보던 이장은 이제야 아내의 마음을 이해할 것 같다는 듯이 밖으로 나가더니 장작을 한 아름 안고 부엌으로 들어가 아궁이에 군불을 지핀다.

이장들 집에는 오랜만에 찾아온 평온이 뜨거운 잉걸처럼 집 구석구석을 녹이고 있었다.

 

어느덧 두 달이 지난다.

설이 지나고 이른 봄의 햇살이 아침을 녹일 때

이장 댁 아주머니의 몸엔 산통이 찾아온다.

그 인자하던 미륵은 태를 가르고 양수를 터치며 떡두꺼비 같은 사내아이를 품에 안겨 준다.

어찌나 울음이 우렁차고 큰지 온 동리가 경사가 났다고 기뻐하였다.

출산의 고통도 잠깐이고 품에서 꼬물대는 아들의 얼굴을 말없이 내려다보는 이장 댁 아주머니

초 취한 여인의 얼굴에 조용히 미소를 보내는 그때 그 미륵이 하늘에서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아 이장 댁 아주머니의 얼굴은 안도감에 조용히 빛나고 있었다.

 

 

 

 

미륵의 새 이름 예수는

 

어느새 23년이란 세월이 훌쩍 지난다.

이장 댁 아주머니와 아들은 기독교에 개종하게 된다.

여전히 그 미륵은

예수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이장 댁 아주머니의 마음에 늘 자리한다.

한 여인의 길에 안내자로 때론 몽학선생으로 삶을 깨우쳐 주는 어진 스승으로 변함없는 세월을 같이하게 된다.

 

삶이 힘들 때도

기쁜 일이 있을 때도

이장 댁 아주머니는

그 미륵이 지금 내가 믿는 예수님이라고 믿는다.

지난날을 추억과 감동을 잊지 않으려는 듯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신념을 다잡으시곤 하였다.

 

이장 댁 아주머니는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도

옛날이야기처럼 장성한 아들 앞에서 미륵 예수와의 인연의 고리를 만지작거리시며

한 많은 삶을 마무리하듯이 유언처럼 이야기를 아들에게 들려주었다.

아들은 이장 댁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평생 가슴에 담고 잊을 수가 없다는 듯

그분의 여윈 손을 조용히 잡아드린다.

그분이 돌아가셨을 때 명주 도포를 입으시고 아무 말씀도 없는 그분을 염습할 때 아들의 가슴에서는 차가운 눈물만 흐를 뿐 그분과의 마지막 이별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장 댁 아들은 안동 출장길에 시간을 내어 제비원을 찾는다.

생전에 어머니께서 말씀하시던 미륵 앞에서 걸음을 멈추는 이장 댁 아들

1·4 후퇴 그 난리 통에

그해 겨울 이장 댁 아주머니가 보고 만난 미륵을 보는 순간

어머니와 미륵의 관계를 깊은 침묵으로 일관하며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하는 이장 댁 아주머니의 아들

 

이장 댁 아주머니는 운명하시기 전까지 미륵과의 인연을 예수님과의 특별한 관계로 승화시킨 놀라운 신앙과 믿음의 여인이요

그의 아들에게는 하나밖에 없는 소중하신 어머니시다.

아들은 고개를 무겁게 떨어뜨리며 감사의 기도를 한다.

“당신을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당신이 지키는 세상에 평화를 주소서”

“전쟁이 없는 나라에 안식을 주소서”

“사랑과 자비가 풍성하신 분이시여 당신이 다시 이 땅에 오실 때 이장 댁, 내 어머니를 다시 찾아주소서”

“내 어머니는 당신을 기다리다 지금은 무덤에서 쉬고 계십니다.”

미륵은 이장 댁 아들을 자비의 눈으로 내려다보며

“네 심성이 그때 이장 새댁을 빼어 닮았구나.”

미륵은 오후 햇살에 미소를 섞어 이장 댁 아들을 배웅한다.

 

따뜻한 봄날 오후 이장 댁 아들은 합장한 부모님의 산소를 참배하고

서울을 향한 자신의 애마에 몸을 던진다.

어머니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은 미륵의 자비심과 사랑이

장성한 아들의 가슴에 각인하는 순간

미륵이 아닌 예수라는 새 이름으로 오늘도 먼 길에 동행한 예수님께 이장 댁 아들은 두 손을 모아 감사의 기도를 한다.

 

뻥 뚫린 중앙고속도로를 달려 서울로 향하는 이장 댁 아들의 애마는 어느새 동서울 요금소를 알리는 불빛을 마주한다.

요금소를 빠져나오는 이장 댁 아주머니의 아들

그의 콧노래가 운전대를 토닥토닥 치며 흥을 돋운다. ♠

 

 

당선 소감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가 소설처럼 비춰지고 들릴 때가 있다면 누구나 소설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잊고 사는 것이 현실을 대변하는 것 같기도 하다.

본인 역시 시는 써 보았지만, 소설은 나 자신과 거리가 먼 하나의 문학이라고 늘 생각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기회가 되면 소설에 한 번 도전 해 보아야겠다고 생각하던 중 단 편 소설 ‘길’을 잡게 되면서 처녀작은 쓰게 되었다.

환갑을 내다보면서 소설이란 작은 꿈이 소설 속에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니 새로운 도전의 성취감이 가슴 뿌듯하게 하는 유월이 되었다.

경인년 유월은 나에게 특별한 의미를 찾아주는 것 같아 너무 기쁘다.

저의 작품을 심사해 주신 김창직 선생님과 여러분들에게 감사를 드리며 이 작품을 돌아가신 부모님께 드리고 싶은 마음에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앞으로 작품을 통하여 더 많은 독자들을 만나며 사귀게 되길 바라면서 당선 소감에 가늠합니다. <경인년 여름>

 

 

 

작가 一松 장지원의 양력

 

이름: 장지원(張志源) 1951~

아호: 一松 / 필명: 老波 / 예명: 삿갓

시인/소설가/경북 영주 부석 출생

 

삼육대학교 건축학과 졸업

명지대학교 사회교육대학원 수료

월간문예사조 시 등단(2006년)

월간 문예사조 소설 등단(2010년)

월간 문학세계 수필 추천(2016년)

재림문학상 수상(2005년)

세계문학상 소설 대상 수상(2018년)

청향문학상 수상(2021년)

現代 韓國 人物 史 등재(2005년)

韓國 詩 大辭典 등재(2010년)

2013년 두물머리 세미원 시화전 기획 및 총감독

2016년 한국문학을 빛낸 100인 선정 작가

예술활동증명 완료(2021년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저 서 : 시집, 이브의 초산, 보헤미안의 축일, 낙엽에 쓰는 일기, 사월의 유희, 보랏빛 향기, 하늘 높이 날아라, 석양의 표효 산문 다수

blog: http://tank153.tistory.com/ 운영

e-mail: tank153@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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