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근(楊根) 나루
장지원
갯버들이 푸른 잎 사이에서 솜털을 날린다.
하얀 꽃가루를 뭉실뭉실 토하여 낸다. 산책 나온 사람들은 비위라도 상한 듯 모두가 형형색색의 마스크를 하고 걷는다. 戊子年 봄은 유난히도 꽃가루가 많이 나는 것 같다. 시민들의 생활에 작은 해라도 되지 않을까 염려가 되기도 하다.
양근(楊根) 이라는 지명은 말 그대로 버드나무의 뿌리에서 유래된 말이다.
봄 한 철 날리는 꽃가루 정도는 깊이 감수해야 할 듯싶다. 요즘은 환경과 건강을 생각하는 현대인들에게는 무관한 생각마저 들어 그들의 모습이 그리 낯설지 않다. 나도 알레르기성 비염 때문에 봄 한 철 지내기가 그리 쉽지 않다. 역사적인 명소 양근 나루를 찾는 내가 예의나 품의를 갖추지 못하고, 하얀 마스크를 착용하고 이곳을 찾았다. 어느 사람이나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한다. 마음이 조금은 편해지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양근 나루는 현재의 양평읍 사무소가 있는 갈산 뒤편에 자리하고 있다.
1930년대까지만 해도 한강 교역의 중심 역할을 하던 나루이다. 요즘은 문명과 역사의 뒤안길에서 조용히 그 이름만 지킬 뿐이다. 사람들의 발길조차 뜸 한곳이 되었다. 내가 양평으로 이주해 온 지 꼭 16개월 만에 찾은 곳이다. 숱하게 나루터의 표지판을 보면서 지나치던 곳이다. 산책하던 길옆에 자리하고 있기에 나루터는 내 눈에 낯설지 않았다.
풍수지리학의 대가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여주 땅을 동방의 성인을 모실 곳으로 좋게 극찬하였다. 세종대왕과 소헌왕후 심 씨의 합장 왕릉으로 모셔진 곳이 여주이다. 북쪽으로 한나절 가면 필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양평과 용문이 있다. 양평의 옛 이름이 양근 이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양근 나루의 역할이 컸었다. 한양으로 가는 강원도 영서지방과 충청도 내륙지방에서 흐르는 한강의 큰 지류다. 남한강 하구에 있는 수도의 관문이기도 하다. 교역의 중간 교착지로 그 명성이 대단했던 곳이 바로 양근 나루터다. 아쉽게도 지금은 그 흔적조차도 찾아보기 어렵다. 이에 대해 이곳 사람들조차도 무덤덤한 게 필자에겐 조금은 이상하게 보였다.
‘양근은 산이 높고 계곡이 깊어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가 크다.’ 가거지(家居之)로서 일찍이 배제 시킨 지역이기도 하다. 조선 야사에서는, 조광조가 이곳 양근에서 살 곳을 찾았다고 한다. 이 고장이야말로 예로부터 외진 청정지역이다. 팔당댐 상류에 위치하다 보니 상수 보호 지역으로 원형이 그대로 잘 보전된 고장이기도 하다. 다르게 말하면 지금까지 경기도에서 가장 낙후된 지방으로 알려져 있다. 어찌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 인구 20만의 쾌적한 도시, 살기 좋은 전원도시, 문화의 도시 만들겠다고 야심에 차 있다. ‘물 맑은 양평’이란 캐치 플레이어를 내걸고 수도권 전철은 양평 사람들의 숙원 사업이기도 하다. 이에 걸맞게 고층 아파트를 짓는 건설회사 서너 사가 경쟁한다. 그 현장에서 뿜어 나오는 열기가 지역주민들 가슴에 낙후의 늪에서 탈출하는 절호의 기대감을 안겨주고 있다. 양평만의 희망이 아닐 수 없다.
옛날 같으면 양근 나루는 연일 붐볐을 것이다.
강원도 지방과 용문산에서 나오는 약초와 산채들의 보따리가 한양으로 가기 위해 배를 기다렸다. 장사치들과 어부들의 목선이 바쁘게 드나들었다. 농사하기 위해 강 건너 광주 땅의 넓은 들을 오가는 농부들에겐 최고의 교통수단이 되었다. 지금도 양평 오일장은 규모로 보아서 전국에서 빠지지 않는 난전 장이 선다. 용문산에서 나는 산나물과 약재료는 외지 사람들이 찾는 단골 상품으로 자리 잡은 지도 오래다. 옛날에는 장날마다 양근 나루는 새벽부터 충청도와 강원도 경기도에서 모여드는 물산이 장사진을 쳤다. 이를 사기 위해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장사꾼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시간을 맞추어 떠나는 배를 얻어 타기란 여간 어렵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은 나루 위로 거대한 양평 대교가 지나간다.
근대화의 바람을 타고 콘크리트와 강철로 만들어진 구조물인 다리가 옛 나루의 얼굴을 짓누르다시피 광주 방향으로 웅장하게 놓여 그 위로 자동차가 질주하며 달린다. 옛날의 나루터를 아는 사람조차 그리 많지 않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사람들의 발길이 뜸하다. 그러다 보니 할 일 없는 사람들이 수시로 찾아 술과 가무를 즐기는 장소로 전락하고 말았다.
잠시 그 시절을 거슬려 정적이 도는 나루터에 앉아 푸른 강물을 본다. 횡포 돛단배 대신 잊혀가는 추억의 나룻배 만들어 띄워 본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리다.
“여~어 여보시오 선비님 빨리 배를 타시오, 이 배가 오늘은 마지막 배요.”
허름한 행장으로 나룻배에 오르는 나를 쳐다보는 사공은 다시 이렇게 말을 건넨다.
“대체 무슨 생각을 그리하다 배 떠나는 줄도 모르시오”
“어디로 가는 선비시오?”
잠시 꿈이라도 꾸는 것 같았다. 타임머신을 타고 17세기 그때의 양근 나루에 선 나와 지금은 사뭇 다르다.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고 그리움과 아쉬운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강물에 얼이 빠져 멍하니 서 있는 나에게, 나룻배 사공의 거릉거릉한 목소리가 나로 하여금 정신을 차리게 한다. 추억과 상념이란 꿈에서 벌떡 깨어나게 한다. 그렇다 내가 눈 깜박할 사이 역사의 파노라마 앞에서 잠시 꿈을 꾸고 있었다. 발걸음 소리 나는 쪽을 응시하자 연인 한 쌍이 웃음을 섞어가며 주고받는 말소리가 들린다. 내가 앉아 있는 곳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들의 대화 속에는 양근 나루라는 단어를 들을 수가 없었다. 시대가 밀어낸 뒤안길에서 아쉬움이 대순처럼 치밀어 오른다. 두 젊은이를 억지로라도 앉혀 놓고 이 나루의 역사와 내력을 이야기해주고 싶다. 그런 마음이 불현듯 일어나다가 나는 더 깊은 상념에 주저앉고 만다.
힁한 나루터엔 학생들이 졸업식 뒤풀이를 한 밀가루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다.
온통 회를 칠 한 것 같다. 먹고 버린 소주병과 맥주병이 휴지와 함께 바람에 굴러다닌다. 쓰레기장이 따로 없다. 이 상황에서 무슨 놈의 역사며 주체 사관을 이야기할 수 있단 말인가. 얼굴이 뜨뜻한 나를 벤치에 끌어 앉힌다. 내가 이곳을 찾게 하는 것은 사연이 있다. 지난 가을 이곳에서 ‘양근 나루’라는 시를 쓰고 6개월 만에 다시 찾게 된 것이다. 그날 이후 사람들의 발길이 없었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온통 오물로 뒤덮여 있다. 이 고장의 명소가 관리하는 사람 없이 방치되어 있다. 오늘 내 앞에서 힘들어하는 양근 나루가 불쌍하고 측은하게 내 앞에 서 있다.
주머니에서 목장갑을 꺼내 끼고 오물을 줍기 시작하였다.
내가 양평에 오기 전 수락산을 자주 올랐다. 그때에도 수없이 오물을 주워서 치웠다. 그때 아내는 늘 내게 말 했다. ‘주우면 무엇 하느냐? 버리는 사람이 더 많은데 부질없는 일이요’ 핀잔 섞인 소리를 많이 해주었다. 그러나 오늘은 나 혼자 나온 것이 다행스럽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약간의 시간이 흐르면서 등골을 중심으로 땀샘이 열리는 것을 느낀다. 경내가 말끔해진 것을 본다. 순간 봉사를 통하여 느끼는 뿌듯함이 가슴에까지 북받쳐 오른다. 봉사와 상쾌한 마음, 두 마리의 토끼를 단번에 잡은 행복감이 내 가슴의 폭을 한층 넓혀 주는 것 같았다.
주운 오물을 재활용과 일반 쓰레기로 분류한다.
까만 비닐봉지로 네 봉지가 되었다. 이를 벤치 옆에 두고 나루 경내를 꼼꼼히 살펴본다.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엔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아기 똥 풀이란 노란 꽃잎을 나비처럼 펼치고 손짓하듯 나를 반기고 있었다. 왜 아기 똥 풀이라고 했을까? 이 꽃을 보는 순간 모든 사람의 마음 씀씀이가 이 아기 똥 풀꽃만 같아도 이 나루는 깨끗이 보존되리라, 내 마음은 갑자기 공허함을 느낀다. 흐르는 강물에 무거운 마음을 던지고 또 던져 본다. 사람들의 양식 있는 생각과 행동이 어쩌면 더러운 이름을 가진 들꽃 한 포기만 못 할 때가 있다. 아기 똥 풀꽃은 말없이 오늘도 후미진 들판에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아기 똥 풀꽃, 그는 지저분한 이름표를 달고도 이처럼 내 앞에서 당당할 수 있어 너무 감동적이다. 그의 모습은 어느 곳 하나 빈틈없이 완벽한 신사 같았다. 잠시 벤치로 돌아온 나는 아기 똥 풀꽃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양근 나루 주변은 다시 무거운 침묵에 빠진다. 간간이 지나가는 청둥오리들의 군무가 옛날 번잡했던 나루와는 대조적으로 절도 있게 행군하고 있다.
나는 오늘 아기 똥 풀꽃의 아름다움을 다 말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이미 그의 고운 얼굴에서 찾을 수 있었던 교훈을 되새겨 본다. 누가 보든 안 보든 그의 자태를 인정 해주든 말든 꽃으로 나에게 다가오는 그가 너무 아름다웠다. 불쾌하게 널려 있던 쓰레기 더미가 있는 한 나루는 오염되고 말 것이다. 옛날 번성했던 나루라 할지라도 그 기능을 상실하고 말 것이다. 이 나루를 찾는 사람은 불쾌감에 자리를 빨리 뜨고 말 것 자명한 사실이다. 고상한 척하는 도도한 시민이 너무 많다. 모순된 우리의 삶을 아기 똥 풀꽃은 말없이 내게 설명하고 있었다. 아무리 갑 나가는 진주가 있으면 무엇 하나 수많은 사람이 발견하지 못하고 그냥 생각 없이 지나친다. 이 모순된 생활을 바로잡아 보자고 마음먹는 순간 아기 똥 풀꽃은 환한 미소로 맞아줄 것 같다. 깨끗해진 나루터 경내를 나는 한 번 더 둘러본다. 강바람이 마음의 묻은 찌든 때까지 씻어 하얗게 표백까지 해주는 것 같았다.
아직도 이 나루를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기억하자. 이곳은 그 추억의 삶이 갈피마다 비늘처럼 일어난다.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장소이다. 비록 알아주지 않는 이름의 들꽃이지만 양근 나루의 역사 산증인으로 오늘도 오가는 사람들의 따뜻한 친구로서 묵묵히 이 나루를 지켜 줄 것으로 믿는다.
내가 양평을 알게 된 사연은 실로 가슴 아프다.
이야기하자면 얽힌 실타래를 푸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여기서 생략하기로 하자. 3월 초봄의 날씨치고는 제법 따스함을 피부로 느낀다. 내 삶은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힁한 갯벌처럼 가라앉는다. 대책 없는 시간에 찾아드는 두려움과 공포가 아직도 나를 떠나지 않는다. 버릴 수 없는 실낱같은 기대가 질척한 진흙탕에서 씨름하고 있다. 나도 모르게 발길 닿은 곳이 양근 나루터이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밥은 안 먹어도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행복하다.
달빛 쉬어가는 양근(楊根) 나루
수초 갈피마다 옛 추억 묻어나
상념이 자란다.
굽이진 강 허리마다
삼 도(三 道)의 이야기 섞이어
숱한 삶의 애환 싣고
말없이 흘러왔다 흘러가는데
나 갈잎 의지하여 양근(楊根) 나루를 함께 떠나다
유령처럼 다가오는 도시의 불빛 보고
영혼은 혼비백산 도망가다
이 빠진 옹기처럼 먼지 쌓인 나루터에 주저앉아
양주(楊州)로 한양(漢陽)으로 떠나는 뱃길을 기다리는데
철 이른 달맞이꽃 내 마음 훔쳐본다
구름 속에 숨어 버리고
밀려오는 그리움마저 강 언덕에 토를 하며
미투리 한 켤레 들고 날 밝기 기다리는데
잠 못 이루던 외기러기 그리움에 떠나고
빈 둥지 홀로
밤이슬에 젖은 별을 쓰러 담다
수레바퀴 되돌리지 못하는 자책에
양근(楊根) 나루의 밤은 깊어만 간다. (시, 노파 / 양근 나루)
정신없이 써 내려가는 글 속에서 귓전을 울리는 소리가 들린다. ‘3도를 떠돌다 지친 몸이 잠시 양근 나루에 도착을 알린다. 하룻밤 쉬어가는 나그네가 어디 나뿐인가?’ 숱한 삶의 애환을 실어 나르던 나루에서 상념에 잠기다 잠시 김삿갓의 시를 떠올려 본다.
“가뿐한 내 삿갓이 빈 배와 같아
한 번 썼다가 사십 년 평생 쓰게 되었네,“ (시, 김병연 / 내 삿갓 중에서)
김병연은 알량한 입신양명을 위해 과거에서 조부를 탄핵한다.
장원을 하고도 조부를 비난한 양심의 가책은 병연으로 하여금 표면 지적하는 긴 방랑의 시작을 알린다. 그의 이름 세자는 김삿갓이란 이름으로 바꾸어 정처 없이 전국을 떠돌게 된다. 이름 없는 시인으로 알려진 이 시는 그의 생애의 말년에 지은 것 같다. 인생의 여정이 그가 생각하듯 그렇게 가벼울 수 있을까? 정녕 김병연이 쓴 삿갓에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세상에 누가 누구를 탓하겠는가 ‘모든 것이 내 탓이오.’라는 말이 생각난다. 어쨌든 나는 이곳 양근에서 오래 머무를 수 없다. 어디론가 가야 하기에 떠나는 배를 기다리고 있다. 현실 속에서 양평의 새로운 도약처럼 돛을 올릴 수 있을까를 깊은 고민에 빠진다. 오늘도 나는 양근 나루터의 지킴이가 되어 생각 없이 버리고 간 사람들의 버려진 양심을 주워 담는다. 아기 똥 풀꽃이 내게 가르쳐준 평범하면서도 어려운 진리를 곰곰이 생각한다. 나는 기약도 없는 뱃길을 기다린다. 흐르는 남한강물은 변함없이 텅 빈 나루에 왔다가 말없이 흘러간다. 나도 언젠가는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원앙 한 쌍이 한가롭게 나루를 찾아와 손을 내민다.
20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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