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사곽란(吐瀉癨亂)/Acute Gastroenteritis
단편소설/장지원
오월 셋째 주 늦은 봄 날씨는 온몸의 땀구멍을 서서히 열어 놓는다.
후덥지근한 교실 안은 역겨운 냄새로 가득하다.
금방이라도 구토를 할 것 같다.
지원은 갑자기 식은땀을 흘린다.
3학년 1반 5교시 자연 시간은 지옥의 문을 넘어온 느낌마저 들었다.
그때 선생님이 흐트러진 나의 표정을 보시더니
“너 왜 그래.” 하신다.
어금니를 물고 배를 움켜잡고 안간힘을 써본다.
그럴수록 속은 더 뒤틀리고 입에서는 이상한 액체가 고였다.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도시락도 쌀 형편도 못 되어 오늘도 점심을 건너뛰었다.
그런데 배 안에서 무슨 조화인지 천둥소리에 지진까지 일어난다.
점심시간이다.
친구들은 도시락을 맛나게 먹는다.
나는 입에 고이는 침을 삼키다 우물로 뛰어간다.
교장 선생님이 나를 보고 “너 점심 먹었나.” 물으신다.
나는 “예, 먹었어요.” 거짓으로 대답하고는 두레박을 잡았다.
교장 선생님 사택 앞에는 깊은 두레박 샘이 있었다.
퍼 올린 물은 맑았다.
허기진 배를 채워 줄 것 같은 기대감에 단숨에 들이키는 물맛은 정말 시원하고 꿀맛 같았다.
순간 작은 네 배는 봉곳이 차올랐다.
약간의 허기를 잊을 수 있었다.
물을 실컷 마시고 돌아서는데 두레박을 달라고 말없이 손을 내미는 5학년 성근이 형이다.
“야 맛있나.” 무엇인가 부족하다는 암시를 형의 얼굴에서 찾을 수 있었다.
“형도 배고픈 거야.”
말을 건네자 그 형은 말없이 고개를 아래위로 두 번이나 끄떡였다.
그래 배고픈 것이 이마에 쓰여 있었다. 그러나 언제나 밝은 미소는 잃지 않은 형이다.
두레박에 입을 대더니 코를 박고 벌떡벌떡 들이켜는 소리가 얼마나 큰지 내 귀에도 들렸다.
형의 배가 금방 불룩 나온 모습을 보고, 내 배를 보는 순간 형은 씩 웃으며 내 배를 뚝 친다. “뭐, 니 배도 많이 나왔잖나.” 하더니 내 손을 잡고 어디론가 잡아끌다시피 걸음을 재촉한다.
금세 둘은 학교 뒷문을 빠져나와 뒷산을 오른다. 산은 파릇한 풀과 나뭇잎으로 온 산이 파랗게 덮이고 있었다.
여기 앉자. 형은 나를 끌어 앉힌다.
형은 곧 노래를 부른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노래 부르는 형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던 나는 “형 지금도 배고파” 묻었다. 형은 나의 어깨를 툭 치면서 “자씩 너도 배고프면서…”
둘의 배고픔을 달래는 시간도 눈 깜박할 사이 지나간다.
그때 점심시간이 끝나고 5교시를 알리는 들어갈 종소리가 땡땡땡 울린다.
나는 모든 것을 잊은 채 부리나케 뛰어 교실을 들어선다.
그때부터 조금씩 배가 살살 아프기 시작했다.
배탈이 난 모양이다.
선생님은 내게 주의를 주신다.
옆에 앉은 태원이에게 “야 배 아파 죽겠다. 토할 것 같다. 설사도 나올 것 같아”
나를 한참 보던 태원이가 “선생님 야가 아프데요.”
선생님은 들었는지……
칠판에 필기를 계속하신다.
5분의 시간이 흘렀을 것 같다. 그 5분은 1시간보다도 더 길었다.
필기를 마치신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이것 빨리 베껴 써” 하시더니 내게로 다가오셨다.
내 이마에 손을 대시더니 “너 점심에 뭘 먹었노.”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 되겠다. 책보 빨리 싸라.”
나는 책을 챙길 힘도 정신도 없었다. 속은 뒤 틀리고 온몸에 힘은 쭉쭉 빠지는 것 같았다.
멍하니 앉아 있는 나를 보던 태원이가 책보를 싸 주었다.
그런 태원이가 고마웠다.
선생님의 손에 끌려 양호실을 들어선다.
난생처음 구경하는 곳이다.
선생님은 양호 선생님에게 “야가 점심에 뭐를 잘못 먹은 모양인데 잘 좀 봐주소.” 하고는 문을 닫고 나가셨다.
약간의 약 냄새도 났다. 나는 아픈 배를 잡고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오는 선생님은 하얀 가운을 입은 천사 같은 분으로 다가왔다.
양호 선생님은 얼굴이 하얀 피부에 몸이 조금 뚱뚱하신 여 선생님이셨다.
말도 서울말을 쓰시는 게 여느 선생님들하고는 많이 달라 보이셨다.
선생님은 아픈 나를 하얀 천으로 깔린 탁자 위로 나를 눕히더니 내 배를 여기저기 꾹꾹 누르면서 만지시더니 일어나 앉으라고 하였다.
진찰이 끝난 모양이다. 조금은 궁금하기도 하고 무서웠다. 죽을병이라도 걸렸으면 어떻게 하나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은 나에게 “너 뭘 먹었니.” 물으셨다.
“예, 아무것도 안 먹었어요.”
“그러면 도시락은.”
“아니요. 물만 먹었어요.”
알아들었는지 양호 선생님은 약통에서 알약 두 알을 꺼내시더니 물, 컵과 함께 내게 주면서 “먹어 곧 나을 거야” 하셨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약을 넘기는 순간 뒤틀리던 속이 치밀어 올라 나도 모르게 왈칵 토하고 말았다. 노랗고 시큼한 물을 양호실 바닥에 토하고 말았다.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나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선생님 죄송합니더. 죄송합니더.” 아픈 것은 잠시 잊고 미안하고 창피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선생님은 내 등을 두들겨 주시며 괜찮다고 하셨다. 어린 마음에도 그런 선생님이 너무 존경스러웠다.
그 일이 있었던 후 양호 선생님만 보면 얼굴도 못 들고 90도로 인사를 하고는 도망치기가 바빴다. 이러는 내 모습을 보시곤, “자식” 하시며 나를 좋아하시곤 하셨다. 그 선생님이 너무 예쁘고 좋았다.
다시 선생님은 “안 되겠다 너 집에 가서 내가 주는 약 먹고 쉬어야겠다.” 하시며 약봉지와 책 보따리를 내 손에 들려주셨다.
내 등을 토닥토닥 두들겨 주시며 나을 거야 하시며 위로의 말도 해 주셨다.
학교에서 우리 집은 1.7km 정도 걸어야 한다.
늘어지는 몸에 책보는 오늘따라 무척이나 무거웠다.
논둑길을 걸어 큰 개울을 건너야 했다. 바지를 걷고 물에 들어서니 찬기가 온몸을 금방 싸늘하게 식히고 있었다.
송사리가 겁 없이 내 발밑에서 생각 없이 지나가고 있었다. 물고기가 지금의 내 아픈 사정을 알까. 틀림없이 모를 것 같았다. 순간 슬픈 생각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고 말았다. 개울물에 눈물이 떨어져 봤자 표도 없이 흘러가고 만다.
논에서는 사람들이 모내기하려고 논을 갈고 있었다. 모판에서 피를 뽑고 있는 사람들은 따가운 햇볕에 얼굴이 벌겋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논둑에 걸터앉아 참을 먹는 모습도 보였다.
배는 아파도 고픈 배는 어쩔 수 없었다. 먹고 싶은 생각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두 번이나 더 토하고 설사까지 했다. 살이 쏙쏙 빠지는 것 같았다. 파란 하늘이 온통 노랗게 보였다. 내가 죽을병이라도 걸린 것 같아 무서웠다.
마을 어귀에 큰 느티나무가 있었다.
이 나무는 우리 마을 서낭당 나무다.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는 넓은 돌이 있다.
기진한 내가 눕기에 너무 편해 보였다. 잠시 눕자 내 몸뚱이는 서낭당의 제물이 된 것 같았다. 어린 마음에도 섬뜩하였다. 벌떡 일어났다.
자리를 박차고 무거운 책보를 들고 집으로 걸음을 옮긴다.
걸어도, 걸어도 집은 아득히 보이고 누구 하나 도움을 받을 길이 없었다.
한낮의 태양은 사정없이 내 머리를 쪼이고 있었다. 어느새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 된다.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았다.
논에서 힘들다고 울어대는 소들의 울음이 들린다. 이를 재촉하는 아저씨의 고함이 지금 나에게 야속하게 들렸다.
빨리 집엘 가야 한다.
집에 가면 아버지 어머니가 내 아픔을 고쳐 주실 거다. 한 가닥 믿음이 내게는 큰 힘이 되었다.
마을을 들어서는데 이웃 아저씨 한 분을 만났다. “니, 왜 그래노 어디 아프나.”
“예, 배가 아파서요.”
“그래, 내 니를 보니 토사곽란이 걸렸구나. 거기는 딱 뿌리가 최고지 그걸 입에 넣고 질근질근 씹으면 최고다.” 자세히도 일러준다. 후에 안 일이지만, 그만 나는 아저씨가 딸 뿌리라고 하는 말을 딱 뿌리로 잘 못 듣고 말았다.
“그래 딱 뿌리, 딱 뿌리다.”
딱 나무는 한지 만들어 쓸려고 할아버지가 뒷골에 많이 심어 놓으셨다.
가을이 오면 일꾼을 시켜 그 많은 닥나무를 베어 한지와 바꾸어 문도 바르고 책도 매어 쓰셨다.
딱 나무는 우리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보배 같은 나무라고 하시는 할아버지의 말씀을 들은 기억이 새롭게 난다.
그 나무가 어디쯤 있는지는 내가 잘 알고 있다.
집엘 도착하니 기대했던 부모님은 안 계시고 아무도 없는 텅 빈 집 마당에 삽살개가 반갑다고 꼬리를 치며 나를 반긴다.
그가 내 아픈 사정을 알 리 만무하다.
“내가 배가 조금 아프데이, 딱 뿌리가 좋다고 하니, 그걸 캐 먹으러 가련다.”
책보를 마루에 팽개치고는 뒷골로 올라간다.
배는 사정없이 잡아당기면서 아프고 구역질은 여전하다.
뒷골에 가면 없는 게 없다.
우리 할아버지는 구한 말 어떻게 한양에서 탑들이까지 살려 오시게 되면서 뒷골에다가 과실나무를 종류대로 다 심어 놓으셨다.
철철이 우리 주전부리며 제사에 올릴 실과는 이곳에서 마련하곤 하셨다.
밤나무 감나무 배나무 대추나무 살구나무 복숭아나무가 있는가 하면 참 옻나무 오가피 엄나무 닥나무 대나무 두릅나무 약재 나무도 골고루 심어 놓으셨다.
온 동리 사람들에게 유용하게 나누어 쓰시곤 하셨다. 그런 할아버지가 어린 내 눈에도 대단하게 보였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내가 일곱 살 때 돌아가셨다.
조금 전 이웃 아저씨가 말씀하신 토사곽란에 잘 듣는다는 딱 나무가 뒷골에는 많다.
엉금엉금 기다시피 산을 오른다.
딱 나무 앞에서 할아버지 생각이 났다. 할아버지는 한학에도 출중하신 분이셨다.
동리에 뿐 아니다. 면 안에서도 학식과 인품을 알아주신 분이셨다. 그런 할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아버지는 행복해 보이셨다.
나도 조금은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 작가가 되어 글을 쓰는 것도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은 게 분명하다.
딱 나무 밑을 손으로 후벼 파니 노란 뿌리가 내 눈에 들어왔다.
이것을 먹으면 내 아픈 배가 낫는다. 이것을 먹으라고 일러준 아저씨가 고마웠다.
이를 잘라 옷에 쓱쓱 몇 번 닦고서 바로 입에 넣고 씹기 시작했다.
씁쓸한 진액이 입안에 가득 찼다가 목구멍을 통해 위로 넘어간다.
약은 입에서 쓴 법이다.
쓴 약이 아픈 배를 금방 고쳐 줄 것 같았다.
이러기를 몇 번 반복하면서, 나도 모르게 지쳐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몇 시간을 잔 모양이다.
해는 저물고 집에서는 책보는 있는데, 보이지 않는 나를 찾아 나온 가족들이 집집을 헤매며 찾고 또 찾는다.
멀지 않은 집에서 식구들이 나를 찾아 부르는 소리가 잠결에 희미하게 들렸다.
누군가가 내 몸을 흔들어 깨우는 것 같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해는 늦고개로 넘어갔고 어둠이 마을을 내리덮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모습이 희미하게 눈앞을 스치며 지나간다.
할아버지는 안 계셔도 뒷골에 오르면 언제나 그분의 손길을 만질 수도 있고, 숨결도 느낄 수 있어 좋다. 그래서 나는 자주 뒷골을 올라 이곳에서 소에게 풀도 뜯기고 친구들과 즐겨 놀기도 한다.
집에서 나를 애타게 찾는 가족들을 생각하며 산에서 내려간다.
낮에 아프던 배가 씻은 듯이 나았다. 신기하게도 딱 뿌리가 약이 된 것 같았다.
딱 뿌리가 효과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 아저씨가 일러준 말이 고맙기까지 했다.
할아버지가 고쳐 주신 게 분명하다는 믿음이 생겨났다.
온 식구들이 나를 많이 찾았던 모양이다. 어린 마음에도 가족의 고마움을 새삼 느끼는 기회가 되었다.
자초지종을 묻는 아버지의 심문이 계속되었다.
낮에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며, 뒷골에 올라간 그것까지 모두 이야기했다.
갑자기 아버지는 껄껄 웃으신다.
옆에서 듣고 계시던 어머니까지 따라 웃으시는 게 아닌가.
아버지가 말을 이으신다.
“딱 나무뿌리를 캐 먹었단 말이냐?”
나는 “예”라고 자그맣게 대답했다.
“호곡이가 딱 뿌리를 먹으라고 했다고.” 호곡이는 낮에 내게 토사곽란에는 딱 뿌리가 최고라고 일러준 아저씨다.
“설마 호곡이가 니한테 딱 뿌리를 캐 먹으려고 했겠나. 딱 뿌리가 아니고 딸 뿌리라고 했겠지.”
듣자 하니 일이 잘못되어도 한참 잘 못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 얼마나 먹었노?” 다시 묻는 아버지 얼굴엔 약간의 수심이 돌았다. 옆에서 듣고 보고 있던 어머니가 말을 받는다. “죽지 않고 살아왔구먼. 그래요.”
그래 낮에 죽을 것 같은 토사곽란에서 죽지 않고 살아 아무렇지도 않게 이렇게 서 있는 내가 대견했던 모양이다.
할아버지가 나를 돌보아 주신 것이다. 할아버지의 음성을 나는 분명히 들었다.
먹지 않아야 할 나무뿌리를 먹었지만 내 배앓이는 멀쩡하게 나았다. 신기하기까지 참으로 신통했다.
할아버지가 나를 도와주신 것이다. 비록 딸 나무가 아니고, 딱 나무를 먹었을망정 여러 가지 나무를 나를 위해 심어 놓으신 할아버지가 정말 고마웠다.
온종일 먹지도 못하고 배앓이에 시달렸던 나에게 저녁은 성찬이었다.
맛있게 저녁을 먹고 난 나는 하루의 일기를 이렇게 써 내려간다.
양호 선생님의 얼굴이 떠오르고 선생님이 지어주신 약봉지를 만지작거려본다.
양호실 바닥에 토를 했어도 화도 내시지 않고 내 등을 두들겨 주시던 선생님이 정말 아주 고맙다.
혹시나 물으면 그 약 먹고 나았다고 거짓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다.
빈속에 먹은 저녁 탓인지 오늘은 일찍 졸린다.
잠자리를 펴고 눕는다.
꿈에 할아버지가 보일 것만 같다.
정말 보고 싶은 분이시다. 꿈에라도 만나게 되면 할아버지 고맙습니다.라고 인사를 드리고 싶다.
내겐 소중한 분들이 너무 많다.
오월의 산산한 저녁 공기가 콧구멍을 들락거리며 내가 살아있음을 확인이라도 해주는 것 같아 정말 고맙다. <토사곽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