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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동지冬至 의미를 새겨보다/시 장지원

노파 2019. 12. 22. 04:33


동지冬至 의미를 새겨보다

장지원

 

 

동짓달이 되면 어머니가 쑤어주는 붉은 팥죽이 생각나는 때

큰 가마솥은 허연 눈알을 껌뻑거리며 끓는 게 시간이 되었음을 알린 것 같다

한해살이가 고되었는지 문간방 기침 소리가 진하다

마지막으로 꼬던 새끼타래가 문밖으로 내 동댕이쳐진다

한해 머슴살이가 끝났음을 알리는 머슴의 마지막의식이다

한해살이를 보기 좋게 끝내는 머슴의 지혜다

 

나무구박에 붉은 팥죽 담아든 아버지의 걸음이 예사롭지가 않다

소 마구, 정낭, 사랑채, 아래채, 안채 광을 돌며 뿌린다,

마지막으로 대문에다 여러 숟가락을 뿌리며

묵은해 새해의 액운을 지켜주길 소원의 기도를 하늘에 고 한다

해지기 전 온 식구가 둘러 앉아 팥죽 한 그릇을 함께 나누어 먹고는

새 바지저고리로 갈아입은 머슴은 그길로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면 2월 초하루가 지나야 다시 돌아오게 된다. 잠시 머슴의 신분에서 자유롭다

머슴이 돌아간 집은 곧 섣달을 맞아 긴 삼동을 종용히 나야한다

 

출애굽 전 날¹ 해질녘 붉은 양의 피를 문설주에 뿌렸다

애굽의 장자를 죽이는 천사의 칼이 붉은 피가 뿌려진 집은 건너갔다

성전에서 죽임을 당하는 어린양의피가 백성들을 자신의 죄에서 구했다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의피가 우리를 죄의 노예에서 해방시켰다

모두가 유월절踰月節²을 의미하는 구원의 표상이다

여리고성이 함락될 때 기생 라합의 성채에 내려진 붉은 줄³은 구원의 약속이다

 

동지는 어김없이 다가오고 있다

다사다난했던 한해살이가 성과 없이 지나갔어도, 얽혔던, 이어주던 내 손으로 꼰 새끼 타래를 놓고 대가없이 팥죽을 나눌 수 있었으면 좋은 시간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는 큰 신 앞에서 오늘 유월절의 의미를 생각할 수 있다면

동짓날 한 그릇의 팥죽이 의미가 묵은해와 새해를 무난히 이어줄 것이다

 

<노트> 출애굽 전 날¹ 유월절踰月節²: 출애굽기12, 붉은 줄³: 여호수아2

 

2019.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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