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7월11일[대선지서-이사야10장12-14절]
나의 일을 다 한 후에
장지원
12 이러므로 주 내가 나의 일을 시온산과 예루살렘에 다 행한 후에 앗수르 왕의 완악한 마음의 열매와 높은 눈의 자랑을 벌하리라
13 그의 말에 나는 내 손의 힘과 내 지혜로 이 일을 행하였나니 나는 총명한 자라 열국의 경계를 옮겼고 그 재물을 약탈하였으며 또 용감한 자 같이 위에 거한 자를 낮추었으며
14 나의 손으로 열국의 재물을 얻은 것은 새의 보금자리를 얻음 같고 온 세계를 얻은 것은 내어버린 알을 주움 같았으나 날개를 치거나 입을 벌리거나 지저귀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하는도다
<주> 12 다 행한 후에: 하나님은 성취하셔야 할 일이 있었는데, 그것은 시온과 예루살렘을 심판하는 것이었다. 앗수르는 이 일을 이루기 위해 사용된 하나님의 도구였다. 그러나 그 일이 마쳐진 다음에는 여호와께서 그 교만함과 방자함을 인하여 앗수르를 벌하실 것이었다.
벌하리라: 문자적으로 “내가 책임을 물을 것이다”. 이 절의 첫부분은 3인칭으로 시작했지만 여기서는 1인칭으로 바뀐 것에 주목하라. 아마도 강조하기 위해서 그런 것 같다.
13 내 손: 단 4:30과 비교하라. 사 10:13에 제시된 앗수르의 정책을 분석해 보면 그 나라에 내린 심판이 정당했음을 알 수 있다. 얼른 보면 하나님께서 앗수르를 그분의 일을 이루시는 데 사용하시고, 그 후에 그분이 하고자 하시는 것을 행한 것으로 인해 그 나라를 벌하는 것이 부당하게 보일 수 있다(참조 출 4:21; 9:16 주석). 따라서 여기에 합리적인 이유가 명확하게 제시되어 있다. 앗수르는 자기 자신만을 생각할 뿐 하나님은 생각하지 않는다(참조 사 10:7 주석). 그 나라는 오직 약탈과 정복에만 관심이 있다. 예루살렘을 점령하였을 때 앗수르는 자신과 자신의 신들이 예루살렘과 하나님보다 강하다고 생각했다.
앗수르가 자신의 계획을 이루어 가는 동안 자신이 여호와의 목적들을 성취시키는 데 사용되고 있다는 것,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셨다면 유다 또는 다른 어떤 나라에도 아무것도 행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앗수르는 옳고 그름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계신 하나님이 하늘에 계시다는 사실과 그분은 모든 범죄자들, 심지어 그분을 경배한다고 외적으로 고백하는 자들에게라도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케 하시는 분임을 배워야 할 필요가 있었다. 앗수르는 동방의 여러 나라에서 행한 무자비한 행위들로 인해 여호와 앞에 범죄하였다. 사람과 하나님께 향한 그의 죄악들, 곧 교만함과 방자함 그리고 완고함은 심판을 자초하였으며, 이런 이유들로 하나님께서는 그 나라를 벌하셨다. 하나님께서 나라들을 취급하시는 원칙들에 대해서는 교육, 173 ; 단 4:17 주석을 참조하라.
열국의 경계: 즉 국경선. 대규모 이주 정책을 통해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반역을 사전에 제거하는 것이 앗수르의 목적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메소보다미아와 메대 여러 곳으로 옮겨진 것(왕하 17:6) 그리고 바벨론, 엘람 등 여러 먼 나라 백성들이 사마리아의 성읍들로 이주한 것(왕하 17:24; 스 4:9, 10)은 이 정책의 일환이었다.
그 재물을 약탈하였으며: 참조 14절 주석. 앗수르는 자신의 약탈과 잔인함을 자랑스러워했다. 앗수르 왕들의 명각에는 그들이 노획한 전리품들과 흘린 피를 자랑하는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다. 그들은 그들이 약탈해서 옮겨온 은과 금, 소떼와 재물, 몸에 말뚝을 박아놓은 사람들의 숫자와 성벽 밖에 시체를 쌓아올려 만들어 놓은 무더기들, 자신들이 언덕과 들판에 흐르게 했던 피의 강들 등의 목록을 자세히 기록해 놓았다. 하나님은 이 모든 자랑을 아셨으며, 여기에 앗수르가 마땅히 책망받아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드러낸다.
용감한 자같이: 문자적으로 “독재자같이”, “폭군같이.” 같은 히브리어 단어가 엄청난 힘을 지닌 “수소”로 번역되었다(시 50:13; 사 34:7). 앗수르는 세상의 강한 다른 민족들을 정복하고 굴복시킨 자신의 힘과 능력을 끊임없이 자랑했다.
14 내어버린 알을 주움 같았으나: 참조 13절 주석. 앗수르는 열국들의 보화와 재물들을 단순히 약탈할 노략물로 여겼다. 이 성경 본문에 사용된 것과 유사한 표현들을 사용하여, 앗수르의 왕들은 가깝고 먼 민족들의 보화를 탈취하고 그것들을 실어온 것에 대하여 자랑하였다. 예컨대, 유명한 아슈르바니팔 도서관은 앗수르가 정복 기간에 탈취한 기록들과 물건들로 대부분을 채우고 있다.
날개를 치거나 입을 벌리거나 지저귀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앗수르 군대가 지나간 곳에는 죽음과 파멸 외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앗수르 왕들은 거주민을 한 명도 남기지 않은 채 완전히 초토화시킨 아름다운 지역들을 묘사하고 있다.
2026.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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