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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수르의 징벌

노파 2026. 7. 12. 00:02

 

2026년7월12일[대선지서-이사야10장15-19절]

앗수르의 징벌

장지원

 

 

15 도끼가 어찌 찍는 자에게 스스로 자랑하겠으며 톱이 어찌 켜는 자에게 스스로 큰 체 하겠느냐 이는 막대기가 자기를 드는 자를 움직이려 하며 몽둥이가 나무 아닌 사람을 들려 함과 일반이로다

16 그러므로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살찐 자로 파리하게 하시며 그 영화의 아래에 불이 붙는 것 같이 맹렬히 타게 하실 것이라

17 이스라엘의 빛은 불이요 그 거룩한 자는 불꽃이라 하루 사이에 그의 형극과 질려가 소멸되며

18 그 삼림과 기름진 밭의 영광이 전부 소멸되리니 병인이 점점 쇠약하여감 같을 것이라

19 그 삼림에 남은 나무의 수가 희소하여 아이라도 능히 계산할 수 있으리라

 

<주> 15 도끼가 어찌: 앗수르는 하나님의 손안에 있는 하나의 도구에 불과했으나 자신을 하나님보다 강한 것처럼 자랑하였다. 앗수르의 왕들은 우주의 보좌에 않으셔서 이 땅의 모든 일을 주관하시며, 원하시는 자를 세우기도 하시며 폐하기도 하시는 여호와(참조 단 5:19)에 대하여 거의 알지 못하였다. 이 땅의 어떤 군주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 어떤 일을 이룰 수 없으며, 어떤 나라도 하나님의 뜻에 반하여 계속 존재할 수는 없다. 다른 모든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앗수르는 하나님의 능력 앞에 “통의 한 방울 물”과 같으며 “저울의 적은 티끌 같”다(사 40:15). 앗수르는 하나님의 손이 “열방을 향하여” 펴 있으며, 아무도 그 손을 돌이키게 할 수 없음을 깨달을 필요가 있었다(14:26, 27).

자기를 드는 자: 즉 하나님.

움직이려 하며: 문자적으로 “자신을 위대하게 하고자 하며.”

16 살진 자: “살진”이라는 말이 상징적으로 사용된 것을 보려면 창 49:20; 겔 34:16~18 주석을 참조하라. 삿 3:29에는 이 단어가 “역사”로 번역되어 있다. 거기에 언급된 “용사” 즉 전사(戰士)는 분명히 모두 문자적 의미로 “살진 자”는 아니었을 것이며 오히려 건장하고 튼튼한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여기에서 “살진 자”란 통통하게 살진 앗수르의 방백들이었을 것이며, 아마도 앗수르의 군인들도 해당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손을 펼치셔서 야위고 파리하게 하실 것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앗수르의 힘을 약하게 하실 것이다.

불: 하나님은 그들의 화려한 궁전들을 불태우시고 잿더미가 되게 하실 것이었다(참조 암 1:4). 이사야가 이 말을 선포한 지 한 세기가 지난 후에 앗수르 제국은 폐허가 되었다. 니느웨는 커다란 잿더미로 변했으며, 앗슈르(Asshur), 갈라(Calah), 그리고 두르 샤루킨(Dur Sharrukin)은 사막의 모래로 덮여 버렸다.

17 이스라엘의 빛: 죄와 죄인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은 소멸하는 불이시다(참조 출 24:17; 신 4:24; 9:3; 사 33:14; 히 12:29). 거룩하신 분의 밝음은 구속받은 자들에게는 영광과 기쁨이 되지만 질려와 형극에게는 소멸하는 불꽃이 된다. “질려”와 “형극”은 죄가 가져오는 파괴적인 역사를 묘사하기 위해 이사야가 자주 사용하는 표현들이다(참조 사 9:18 주석). 에스겔은 이 상징적인 표현을 악한 자들을 나타내는 데 사용하였고(겔 2:6), 마찬가지로 바울은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는 저주받은 악의 열매로서 가시와 엉겅퀴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히 6:8).

하루 사이에: 이 단어들은 앗수르에 임한 빠르고 갑작스러운 멸망을 가리킨다. 이사야는 여기서 하룻밤 사이에 산헤립의 군사 185,000명이 죽임을 당한 것과 같은 장면을 내다보고 있다(참조 37:36).

18 그 삼림과 기름진 밭의 영광: 한때 앗수르의 세력은 강력하고 영광스러운 것이었다. 이제 그것은 이 땅에서 사라졌다. 마치 울창하고 아름다운 숲이 불에 사라짐같이. 성경에서 악한 사람들과 나라들은 그 오만함과 아름다움이 잘리게 될 장중한 나무들에 비유되곤 한다(겔 31:3~18; 단 4:10~26; 참조 사 30:27~33).

병인: 히브리어 노세스(noses). “비틀거리다”라는 의미의 동사 나사스(nasas)의 분사 형태로, 이곳의 의미는 문자적으로 “비틀거리는 사람”임. 어떤 사람들은 “환자”를 의미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불가타역과 마찬가지로 70인역에도 “도망하는 사람”으로 되어 있다. 앗수르인들은 모든 지역으로 진군하는 것처럼 보였으며 그들의 전진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선지자는 앗수르가 병들었을 때, 즉 멸망할 때를 미리 내다보고 있다. 그 나라는 “비틀거리며” 약해질 것이다. 나사스(nasas)를 이렇게 번역한 것은 16~19절의 문맥에 적절하게 보이며, 특히 18절의 전반부를 보면 더욱 그렇다.

19 나무: 즉 백성들(참조 18절 주석). 산헤립과 그의 또 다른 원정대는 앗수르로 돌아오는 길에 성공을 거두었으므로, 여기에서는 예루살렘 성문 앞에서 입은 산헤립 군대의 손실(참조 37:36)에 대해 언급하는 것으로 보인다(사 37:37; 참조 왕하 19:36 주석). “불”이 “숲”을 삼킨 후에(사 10:16), 어린아이라도 능히 헤아릴 정도의 매우 적은 수의 “나무”만이 남았다.

 

2026.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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