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7월10일[대선지서-이사야10장5-11절]
화 있을진저 앗수르 사람이여
장지원
5 화 있을진저 앗수르 사람이여 그는 나의 진노의 막대기요 그 손의 몽둥이는 나의 분한이라
6 내가 그를 보내어 한 나라를 치게 하며 내가 그에게 명하여 나의 노한 백성을 쳐서 탈취하며 노략하게 하며 또 그들을 가로상의 진흙 같이 짓밟게 하려 하거늘
7 그의 뜻은 이같지 아니하며 그 마음의 생각도 이같지 아니하고 오직 그 마음에 허다한 나라를 파괴하며 멸절하려 하여
8 이르기를 나의 방백들은 다 왕이 아니냐
9 갈로는 갈그미스와 같지 아니하며 하맛은 아르밧과 같지 아니하며 사마리아는 다메섹과 같지 아니하냐
10 내 손이 이미 신상을 섬기는 나라에 미쳤나니 그 조각한 신상이 예루살렘과 사마리아의 신상보다 우승하였느니라
11 내가 사마리아와 그 신상에게 행함 같이 예루살렘과 그 신상에게 행치 못하겠느냐 하도다
<주> 5 나의 진노의 막대기: 하나님의 백성으로 공언한 백성들을 심판하시기 위해 그분은 그들의 죄악을 나열하시면서, 심판을 실행으로 옮길 도구들이 무엇인지를 제시하신다. 하나님은 선고하셨고 앗수르는 그 선고를 실행할 도구이다. 앗수르를 “세내어 온 삭도”로 비유한 7:20과 비교해 보라.
6 한 나라: 유다를 의미하는 말로, 이때에는 사마리아가 이미 멸망했기 때문이다.
탈취하며 노략하게 하며: “부지런히 탈취하고 서둘러서 노략하라”를 뜻하는 마헬살랄하스바스라는 이사야의 아들의 이름과 비교하라. 하나님은 유다뿐 아니라 이스라엘과 다메섹(8:4)에 대한 심판을 앗수르에게 위탁하셨다.
7 그의 뜻은 이 같지 아니하며: 이것은 하나님께서 나라들에 역사하시는 방법에 대한 흥미로운 계시이다. 어떤 세력이 그들에게 내려진 심판을 받아야 할 필요가 있을 때, 하나님은 앗수르를 심판의 막대기로 사용하셨다. 그러나 앗수르는 자신이 하나님의 손에 들려진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앗수르의 지도자들이 알고 있는 바는 그들의 정책들이 전적으로 자신들의 이기적인 유익을 위해 결정되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앗수르가 이스라엘과 유다를 침공한 것은 하나님의 영이 아니라 악한 영의 영향력이었다. 그런 경우에 앗수르는 하나님의 손안에 있는 도구였다고 말할 수 있는가? 하나님의 보호하시는 손은 심판이 선고된 세력으로부터 거두어졌으며, 앗수르는 자신의 이기적이고 악한 뜻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도록 허락되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은 그를 향한 반역이 편만한 세상에서 그분의 주권적인 뜻을 실행하신다. 사람들과 귀신들의 계획은 완전히 뒤집어져서 하나님의 목적이 이루어지게 한다(참조 대하 18:18; 22:8; 단 4:17 주석).
8 나의 방백들: 앗수르의 귀족들의 권세와 영광은 다른 나라의 왕들에 견줄 만했으므로 앗수르인들은 그것을 자랑하였다. 그들의 권세가 너무나 크고 권위가 너무나 영광스러웠기 때문에 이웃 나라들의 군주들은 그들 앞에 아무것도 아니었다. 앗수르의 통치자들은 자신들에게 조공을 바치며 경의를 표하는 속국 왕들의 긴 명단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9 갈로는 갈그미스와 같지 아니하며: 앗수르어로 쿨라니(Kullani)인 갈로는 앗수르가 738년에 정복한 성읍이다. 갈그미스의 피시리스(Pisiris) 왕은 743년에 아르파드(Arpad)에 있는 디글랏 빌레셀에게 조공을 바쳤다. 갈그미스는 유브라데강의 굴곡부 위에 위치에 있으며 예루살렘에서 북서쪽으로 약 615킬로미터 떨어져 있고, 쿨라니(Kullani)는 갈그미스에서 남서쪽으로 약 75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하맛은 아르밧과 같지 아니하며: 하맛의 19개 지역은 743년 또는 그 바로 직후에 앗수르의 세력 안에 편입되었다. 아르파드(Arpad)는 743년과 742년, 741년 그리고 740년에 있었던 앗수르의 군사작전에서 전진기지 역할을 했다. 아르파드는 쿨라니에서 수 킬로미터 떨어져 있으며, 오론테스(Orontes) 강변에 있는 하맛은 다메섹에서 동북쪽으로 약 190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다메섹은 사마리아에서 북동쪽으로 약 160킬로미터 지점에 있다.
사마리아는 다메섹과 같지 아니하냐: 디글랏 빌레셀은 733년과 732년에 다메섹을 침공하였고 727년에 또다시 침공하였다. 사마리아는 살만에셀 V세에게 포위되었으며 723/722년에 멸망당하였고(참조 제3권, 116, 117), 그 주민들은 앗수르에 포로로 잡혀갔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북부와 동부 지역에 살던 대부분의 주민들은 사마리아가 앗수르의 세력에 점령되기 수 년 전인 732년에 이미 디글랏 빌레셀에 의해 옮겨졌다.
10 나라: 앗수르는 9절에 언급된 중요한 성읍들을 성공적으로 정복하였다. 그들의 신들은 앗수르의 공격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하는 데 무력하였다. 앗수르는 자신의 신들이 그들의 신들보다 더 우월하다고 여겼으며, 자신의 광범위한 정복이 이것을 증거한다고 믿었다. 고대의 모든 백성에게 그랬던 것처럼, 앗수르 왕에게 특정 신의 위대함은 그 신을 섬기는 나라의 세력으로 결정되었다. 따라서 예루살렘과 사마리아의 “신들”은 앗수르가 정복한 많은 나라의 신들보다 열등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11 사마리아와 그 신상: 앗수르인들은 다른 나라의 신들도 그들의 신들과 유사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에게 예루살렘의 하나님은 근본적으로 다른 성읍의 신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사마리아의 신들이 사마리아를 구하는 데 실패한 것처럼, 예루살렘의 하나님도 앗수르의 세력에서 예루살렘을 구원할 수 없을 것이었다.
2026.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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