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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의 말씀을 싸매시며

노파 2026. 7. 3. 00:02

2026년7월3일[대선지서-이사야8장16-18절]

증거의 말씀을 싸매시며

장지원

 

 

16 너는 증거의 말씀을 싸매며 율법을 나의 제자 중에 봉함하라

17 이제 야곱 집에 대하여 낯을 가리우시는 여호와를 나는 기다리며 그를 바라보리라

18 보라 나와 및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자녀들이 이스라엘 중에 징조와 예표가 되었나니 이는 시온산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주> 16 증거의 말씀을 싸매며: 이것은 이사야에게 주어진 일이었다. 이 말씀은 문서를 싸매고 인을 치는 고대의 관습을 언급하고 있다. 애굽의 엘레판티네(Elephantine)에서 발견된 BC 5세기에 유대인들이 남긴 아람어 파피루스들은 아직도 조각된 인장 자국이 남아있는 진흙으로 인봉된 끈과 매듭으로 묶여진 그대로 출토되었다(참조 제5권, 74, 75). 그러므로 문서의 내용들은 믿을 만한 것이어야 하며 파손되지 않은 채로 보존해야 하였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과 율법은 그렇게 되어야 하였다. 이사야는 지극히 중요한 기별을 그 백성에게, 하나님의 생명의 기별을 그 나라에 전파하였다. 그 기별은 충실하게 보전되어야 하였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그분의 거룩한 율법을 주셨고 그 율법을 순종하는 것은 모든 인류에게 생명을 의미하였다. 그 율법이 손상되지 않도록 모든 시대를 통해 그것을 보존하며, 일점일획이라도 변하지 않도록 해서 그것이 쓸모 없어지는 것을 막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참조 마 5:17, 18 주석).

17 낯을 가리우시는: 하나님은 변덕스럽게 어떤 사람 또는 나라들에게서 그분의 얼굴을 숨기시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얼굴을 돌리시는 경우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등을 돌리는 때이다(참조 59:1, 2). 하나님은 듣지 않는 사람들에게 영원히 말씀하시지는 않는다. 하나님께서 그들로부터 그분의 얼굴을 “가리우시는” 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과 그분의 율법에 순종하는 것에서 돌아섰기 때문이다. 그 나라 전체의 경험은 하나님께서 더 이상 응답하기를 원치 않았던 사울의 경험과 유사하였다(삼상 28:6).

나는 기다리며: 다시 이사야가 화자(話者)가 된다. 이것은 12~16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기별에 대한 그의 개인적인 응답이다. 다른 이들이 무엇을 하든지 선지자는 하나님께 순종하며 그분 안에서 확신과 힘을 발견하고자 하는 목적을 확고히 한다.

바라보리라: 다른 이들의 경험이 어떠하든지, 이사야는 하나님을 바라볼 것이며, 그분의 말씀에 귀 기울일 것이며, 그분의 길을 걸을 것이었다(참조 24:15).

18 나와…자녀들: 그들의 이름이 의미하고 있듯이(참조 7:14 주석), 이사야와 그 아들들은 유다 백성들에게 살아있는 상징이 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그들을 통해 하나님은 매우 중요한 기별을 그분의 백성에게 선포하셨다. “이사야”라는 이름은 “여호와께서 구원하실 것이다”라는 의미이다. 사실 이사야의 이름은 그의 이름이 나오는 이 책의 주제이다(참조 이사야 서론). 곧 벌어질 상황과 연관지어 볼 때 이것은 이스라엘과 아람 그리고 앗수르로부터의 구원을 의미했다. 이사야의 첫째 아들인 스알야숩은 “남은 자가 돌아오리라”라는 의미인데, 그 이름을 통해서 그 아이는 배성들에게 남은 무리가 구원받을 것임을 상징했다. 이 당시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하셨던 것처럼 유다를 완전히 멸망시키려고는 하지 않으셨다. 이사야의 둘째 아들인 마헬살랄하스바스는 “부지런히 약탈하고 서둘러서 탈취하라”는 의미이다. 이 아들은 심판이 속히 닥쳐올 것이며 오래지 않아 멸망이 하나님의 은혜를 거절한 자들에게 임할 것임을 끊임없이 상기시켜 주었다. 그분께 충성하고 진실한 자들에게는 임마누엘이라는 아이가 그들 중에 거하시는 그분의 끊임없는 임재에 대한 보증이었다.

 

2026.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