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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야의 탄생과 통치

노파 2026. 7. 5. 00:02

 

2026년7월5일[대선지서-이사야9장1-7절]

메시야의 탄생과 통치

장지원

 

 

1 전에 고통하던 자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으로 멸시를 당케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길과 요단 저편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2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

3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케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누는 때의 즐거움 같이 그들이 주의 앞에서 즐거워하오니

4 이는 그들의 무겁게 멘 멍에와 그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다

5 어지러이 싸우는 군인의 갑옷과 피묻은 복장이 불에 섶 같이 살라지리니

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7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주> 1 흑암: 히브리 성경에는 9:1이 8:23로 되어 있다. 9:1~7은 8장 끝부분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극도의 불행과 흑암의 광경을 묘사한다. 이사야 시대에는 앗수르 군대가 이스라엘 최북단에 위치한 두 지파인 스불론과 납달리에 불행과 “흑암”(9:2)을 가져 왔다. 이것이 영적인 흑암의 결과임을 깨닫고 이사야는 예언적 안목으로 사람의 영혼에 자리잡고 있는 흑암을 몰아낼(요 1:4~9; 8:12; 9:5) “큰 빛”(2, 6, 7절)을 기다린다. 한때 많은 고통을 겪었던 지역들이 영광과 빛의 계시를 보게 될 것이었다. 그것은 세상의 메시야가 생명과 희망의 기별을 가지고 오실 것을 묘사한다. 흑암의 장막에 덮여 있는 세상(참조 시대의 소망, 34, 35,)에 의의 태양이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할 것이다(말 4:2).

스불론: 이사야가 이 말씀을 기록하던 당시에 이스라엘 땅, 특별히 북쪽과 동쪽 경계지역의 땅들은 큰 고난 중에 있었는데, 이는 디글랏 빌레셀 III세가 그 나라를 침공해서 “게데스와 하솔과 길르앗과 갈릴리와 납달리 온 땅을 취하고 그 백성을 사로잡아 앗수르로 옮”겨 갔기 때문이다(왕하 15:29).

해변길: 고대 세계에서는 큰 도로에 그것을 대표하는 이름이 붙여져 있었다(민 21:22; 신 1:2; 참조 민 20:17; 신 2:27 주석). 어떤 이들은 이 “해변길”을 다메섹에서 시작하여 요단 서편 갈릴리를 지나 지중해에 이르는 그 유명한 대상로(隊商路)와 동일시한다(참조 막 2:14 주석). 다른 이들은 “해변길”을 북쪽으로 두로 및 시돈과 연결된 해안도로와 동일한 것으로 생각한다.

이방의 갈릴리: 왕하 15:29에 언급된 게데스는 갈릴리 지역에 위치해 있으며 도피성이었다(수 20:7; 21:32). 솔로몬 시대에 갈릴리지역이 두로까지 확장되었다(왕상 9:11). “갈릴리”라는 이름은 “원”(圓) 또는 “회전”이라는 의미이다. 신약 시대에 갈릴리는 전보다 좀 더 넓은 지역을 포함하게 되었다. 이 지역은 “이방의 갈릴리”로 불렸는데, 그 이유는 이곳에 늘 혼혈족들이 거주했고 단지 적은 수의 유대인들만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지역은 다메섹과 유브라데, 메소보다미아와 연결되어 있었고 북쪽에 있는 두로, 소아시아, 유럽과 남쪽에 있는 사마리아, 유대, 애굽으로 연결된 길들을 통해 세계와 연결되어 있었다. 예수께서 인류를 위한 봉사사업으로 많은 시간을 보내신 곳은 이처럼 온 세계와 연결돼 있는 바로 그 지역이었다.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문자적으로는 “더욱 무겁게 [만드시거나 여겨지도록] 하심.” 아마도 더 많이 생각하셔서 명예스럽게 하거나 영광스럽게 하시겠다는 의미인 것 같다. 2절에 나타난 “흑암”과 “빛”의 평행 대구에 비추어 1절에 있는 고통과 영화를 대조로 보아야 할 것 같다.

2 큰 빛: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깊은 흑암 속에 살던 갈릴리 백성들에게 갑자기 큰 빛이 비쳤다(참조 요 1:4~9). 선지자의 마음은 온 세상의 메시야의 강림으로 옮겨졌다. 이 말씀들은 그리스도께서 갈릴리 봉사를 시작함으로 성취되었다(참조 마 4:12~16 주석). BC 723/722년에 열 지파가 포로로 잡혀간 이후로 갈릴리는 메시야가 오실 때까지 다른 나라에 정복되었으며, 제사장이나 선지자들의 봉사도 없는 문자 그대로 암흑 가운데 처해 있었다.

3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제임스왕역(KJV)에는 “즐거움을 더하지 않으셨으니”-역자 주). 20개의 히브리어 필사본, 히브리어 난외주 독법, 수리아역 그리고 타르굼 등에는 로(lo) 대신 로(lo’) 즉 “아닌”(not) 대신 “그것에”(to it)로 되어 있는데, 그것이 문맥에 더 일치하는 듯하다. 선지자는 메시야가 백성들에게 와서 평화와 즐거움을 줌으로 더 밝고 행복해진 날에 대한 광경을 제시한다. 그들은 수적으로 증가할 것이며(참조 사 26:15; 겔 36:10, 11), 행복도 증가할 것이다.

추수하는 즐거움: 즉 농사짓는 지역에서 연중 가장 행복한 기간인 추수 때에 일꾼들이 누리는 기쁨과 같은 즐거움. 가을이 되면 히브리 사람들은 기쁨과 감사의 절기인 초막절을 맞이한다(참조 느 8:17). 그들이 기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하심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빌 3:1; 4:4). 그리스도는 사람들에게 평화와 기쁨을 선포하기 위해 오셨다(사 61:3; 눅 2:13, 14).

4 멍에와…막대기를 꺾으시되: 그리스도는 죄의 사슬을 부서뜨리시고 무겁게 짓누르는 죄악과 근심의 짐으로부터 사람을 해방시켜 주시기 위해 오셨다(사 61:1, 2; 참조 눅 4:18, 19; 마 11:28~30 주석).

미디안의 날: 사사시대에 이스라엘은 압제자들의 견디기 힘든 잦은 통치 아래 있다가 마침내 국가적인 영웅에 의해 자유를 되찾곤 했다(참조 제3권, 60~68). 기드온은 압제자로부터 영광스러운 승리를 얻었고 미디안의 세력을 물리쳤으며, 그의 백성들을 해방시켰다(삿 7:19~25).

5 싸우는: 이 광경은 투쟁과 피흘림, 소란함과 혼란 그리고 죽음을 보여 주지만 마침내 궁극적인 승리와 전쟁의 부스러기들을 태우는 모습을 나타낸다. 오랜 기간 지속된 의의 세력과 악의 세력 간의 전쟁은 메시야의 영원한 통치의 서곡인 아마겟돈 전쟁에서 그 정점에 이를 것이다(계 16:14, 16; 19:11~19; 참조 시 46:6~9; 76:2, 3; 사 63:1~6; 겔 38:21, 22; 39:9; 욜 3:11, 16; 슥 9:9, 10; 14:13).

6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이사야는 다가오는 평화로운 시대의 모습을 위대한 평화의 왕이 등장하는 놀라운 예언으로 마무리한다. 평화는 사람의 노력으로는 이 땅에서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사야는 오시는 왕을 묘사하면서 이 땅에 있는 그 어떤 통치자들에게도 붙여지지 않는 용어들을 사용하고 있다.

여기에 언급된 표현들을 완전하고 적절하게 적용할 수 있는 분은 분명 한 분 외에는 없으며, 그분은 바로 그리스도이다. 우리는 세상의 구주와 오시는 왕을 묘사하는 데 그 사상의 높음과 표현의 아름다움 그리고 감정의 강렬함을 성경에서 이보다 더 잘 나타낸 곳을 찾을 수 없다. 이사야는 이 용어들을 기록할 때 영광의 주님에 대한 이상을 보았음이 틀림없다. 다른 구약의 기자들에게 그러하셨던 것처럼 하나님의 손이 그 위에 있었으며 천사가 그의 펜을 지도하였다. 시 110편에서 그리스도는 오실 왕으로 제시되었는데, 그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제사장”이 되실 분이며, 시 2편에서 그분은 철장으로 열방을 깨뜨릴 분으로 표현된다. 그리고 시 45편에서 그분은 위엄 있는 모습으로 말에 오르는 분으로 묘사된다.

정사: 그리스도는 온 하늘과 땅을 다스릴 것이다(참조 단 2:44, 45; 마 25:31; 28:18; 눅 1:32, 33; 고전 15:25; 시 110:1; 빌 2:10; 계 11:15).

기묘자라: 모사라. 또는 “기묘한 모사”(wonderful Counsellor, 참조 11:2, 3; 25:1; 28:29). 이 이름은 지혜로움, 친절함 그리고 사려 깊음을 표현한 것으로, 하늘과 땅과 온 우주의 모든 존재들의 환희와 경배와 찬양을 불러일으키는 이름이다.

전능하신 하나님: 성자인 예수는 성부 하나님과 같은 하나님이다. 그는 영원부터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계신 분이다(참조 시 90:2; 잠 8:22~30; 미 5:2; 요 1:1; 14:9, 11; 시대의 소망, 19).

영존하시는 아버지: 아버지 하나님이 영존하시는 것처럼 그리스도도 그러하다. 이사야가 그분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그분이 모든 인류에게 특별한 의미에서 아버지 곧 사람과 세상의 창조주이시기 때문이다(요 1:3; 엡 3:9; 골 1:16; 히 1:2; 창 1:26). “아버지”라는 말 이외의 어떤 단어도 자녀들을 향한 예수님의 사랑과 관심을 그렇게 충만하게 표현하지 못한다. 그리스도가 통치할 때 그분의 백성을 아버지처럼 통치할 것이다(사 22:21, 22; 참조 계 3:7).

평강의 왕: 참조 슥 9:9, 10; 엡 2:14. 평강은 반드시 의로움과 함께 오며(사 32:17, 18),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그분 자신의 의를 입혀 주고 나눠 주는 의로운 왕이다(렘 23:5, 6; 33:15, 16). 그분은 세상에 평강을 가져다주기 위해 오셨다(눅 2:14; 요 14:27; 참조 빌 4:7).

7 그 정사: 다니엘은 그리스도의 왕국이 지상의 “모든 나라를 쳐서 멸하고 영원히 설 것이라”고 예언한다(단 2:44; 참조 계 11:15). 가브리엘 천사는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고 선언하였다(눅 1:33).

다윗의 위: 다윗은 그리스도의 모형이며 다윗의 위가 영원히 서는 것은 그리스도를 통해서이다(창 49:10; 삼하 7:11~13; 시 89:3, 4, 29, 36; 132:11, 12; 렘 23:5; 33:17; 눅 1:32; 참조 신 18:15; 대상 28:7; 마 1:1 주석).

공평과 정의로: 참조 11:4, 5; 16:5.

열심: 왜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행하시려고 하는가? 거룩한 열정이 그분을 움직였으며 사랑의 영이 그분을 재촉하였다. 게으를 수 없는 사랑이 그분의 것이며, 죄로 인해 잃어버린 인간들을 생각할 때면 은혜와 영광의 과업으로 나가도록 하는 사랑이 그분의 것이다. 사랑보다 더 강력한 힘은 없으며, 사람을 이보다 더 큰 희생 또는 영웅적인 수고를 아끼지 않게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무아의 봉사 정신으로, “공평과 정의로” 통치하도록 그리스도를 이끈 동인(動因)은 모든 것을 끌어안으시는 그분의 사랑이다.

 

2026.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