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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의 영광된 미래

노파 2026. 6. 12. 00:02

 

2026년6월12일[대선지서-이사야4장1절]

예루살렘의 영광된 미래

장지원

 

 

1 그 날에 일곱 여자가 한 남자를 붙잡고 말하기를 우리가 우리 떡을 먹으며 우리 옷을 입으리니 오직 당신의 이름으로 우리를 칭하게 하여 우리로 수치를 면케 하라 하리라

 

<주> 1 그날에: 즉 3:24~26에 묘사된 날. 3장과 4장 사이에는 내용상 어떤 구분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 점에서 볼 때 여기에서 장을 나누는 것은 4장의 의미를 모호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4장은 3장의 연속이 되어야 마땅하다. 이와 유사하게 적절치 못하게 장과 장을 나눈 경우들에 대해서는 삼상 4:1; 24:1; 왕하 7:1; 11:21; 24:20 주석을 참조하라. 이사야가 타락한 시온의 딸들에 대한 하나님의 응징의 절정을 묘사한다.

일곱 여자: 그날 곧 그 전쟁의 날에(참조 3:24~26 주석) 히브리 남자 청년들이 앗수르 군대에게 죽임을 당하거나 포로로 끌려갈 것이었다. 이 때문에 결혼할 수 있는 남자 한 명당 여러 명의 결혼하지 않은 여자들이 있게 될 것이었다. 그 여인들은 얼마 되지 않는 남아 있는 남자들에게 자신들과 결혼해 주도록 간청할 것이다. 사치하고 여유로운 생활을 하고 호화롭게 향내를 풍기며 뻐기고 다니던 이 같은 여인들이 남자 한 사람당 여러 명씩 따라다니며 결혼 생활이 줄 수 있는 보호와 위안을 구할 것이었다. 그들은 자기들이 먹을 음식과 입을 옷을 위해 스스로 기꺼이 일을 할 것임을 밝힐 것이다. 이 같은 일들은 이스라엘에서 일반적으로 남자들의 책임으로 여겨지던 것들이었다(출 21:10). 일부다처제가 이미 보편화되어 있던 나라들에서는 이 같은 상황이 다중 결혼을 눈에 띄게 증가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1절에 묘사된 상황을 직접적으로 오늘날의 교회에 적용한다. 그들은 “일곱 여자”는 일반 그리스도인들을, 또한 “한 남자”는 그리스도를 상징한다고 말한다. 그들은 이 여자들이 그리스도교를 신실하게 “붙잡지”(참조 마 25:1~13) 않고 그저 피상적이고 외형적으로, 또한 자신들의 개인적 유익만을 위해서 믿는다고 설명한다. “일곱 여자”는 “하늘에서 내린 참떡”(요 6:32)을 먹지 않고 그들 자신의 떡을 먹으며,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의 옷(마 22:11, 12)을 입지 않고 그들 자신의 옷 곧 사 64:6의 “더러운 옷”을 입는다. 사 4:1을 이처럼 적용할 때 이 성경절은 독선과 위선의 반대되는 의미의 신실한 신앙생활을 강조하는 것이 된다. 또한 “일곱 여자”를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딤후 3:5) 기독교의 분파들에 비유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사야의 말에 대한 표상적 적용에도 어느 정도 영적인 가치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는 선지자가 선포하는 말씀에는 언제나 본래의 근본적인 의미 이외에도 부수적인 의미들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구절에 관해서는 부수적 적용과 관련된 어떤 언급도 성경에서 찾아볼 수 없다. 본 주석가들이 이 구절에 대하여 직접적인 역사적 의미만을 부여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사 3:16~4:1의 기별은 그 문맥을 통해서 분명히 알 수 있듯이 본래 이사야가 살아 있던 바로 그 시대에 예루살렘에 살던 사람들에게 주어진 기별이었다.

 

우리로 수치를 면케 하라. 히브리어 본문에서는 이 문장이 명령문으로 되어 있다. 히브리 여인들에게 아이가 없는 것은 죄에 대한 일종의 형벌인 수치와 불명예로 여겨졌다(창 30:23; 삼상 1:6; 눅 1:25). 유다의 여인들은 어머니가 되기를 갈망하면서 남아 있는 남자들에게 자신들의 남편이 되어 줄 것을 호소하였다.

 

2026.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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