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6월9일[대선지서-이사야3장1-12절]
유다에 대한 심판
장지원
1 보라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예루살렘과 유다의 의뢰하며 의지하는 것을 제하여 버리시되 곧 그 의뢰하는 모든 양식과 그 의뢰하는 모든 물과
2 용사와 전사와 재판관과 선지자와 복술자와 장로와
3 오십부장과 귀인과 모사와 공교한 장인과 능란한 요술자를 그리하실 것이며
4 그가 또 아이들로 그들의 방백을 삼으시며 적자들로 그들을 다스리게 하시리니
5 백성이 서로 학대하며 각기 이웃을 잔해하며 아이가 노인에게, 비천한 자가 존귀한 자에게 교만할 것이며
6 혹시 사람이 그 아비의 집에서 그 형제를 붙잡고 말하기를 너는 의복이 오히려 있으니 우리 관장이 되어 이 멸망을 네 수하에 두라 할 것이면
7 그 날에 그가 소리를 높여 이르기를 나는 고치는 자가 되지 않겠노라 내 집에는 양식도 없고 의복도 없으니 너희는 나로 백성의 관장을 삼지 말라 하리라
8 예루살렘이 멸망하였고 유다가 엎드러졌음은 그들의 언어와 행위가 여호와를 거스려서 그 영광의 눈을 촉범하였음이라
9 그들의 안색이 스스로 증거하며 그 죄를 발표하고 숨기지 아니함이 소돔과 같으니 그들의 영혼에 화가 있을진저 그들이 재앙을 자취하였도다
10 너희는 의인에게 복이 있으리라 말하라 그들은 그 행위의 열매를 먹을 것임이요
11 악인에게는 화가 있으리니 화가 있을 것은 그 손으로 행한 대로 보응을 받을 것임이니라
12 내 백성을 학대하는 자는 아이요 관할하는 자는 부녀라 나의 백성이여 너의 인도자가 너를 유혹하여 너의 다닐 길을 훼파하느니라
<주> 1 예루살렘과 유다: 유다와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공언하는 자들을 대표하는데, 이사야의 시대에 그들은 이미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나 있으면서도 여전히 뻔뻔스럽고도 공허한 신앙 고백을 하고 있었다. 유사한 상황이 오늘날에도 이 세상에 널리 퍼져 있으며, 따라서 마지막 때에도 입술로는 하나님을 경배하지만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나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이와 동일한 기별이 필요하다. 참조 마 15:7~9 주석.
의뢰하며 의지하는 것: 여호와께서 삶에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요소 곧 양식과 물을 이제 막 유다로부터 제거하시려 하는 중에 있다. “의뢰하는 양식”이라는 표현이 쓰인 레 26:26; 시 105:16; 겔 4:16; 5:16; 14:13을 참조하라. 물론 이사야가 여기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은 실제 기근이 분명하다. 하지만 전체 문맥은 이 실제 기근을 훌륭한 지도자가 결핍되어 있는 상황에도 적용하고 있는 것 같다. 음식이 결핍되면 몸이 고통을 당하는 것처럼 지도력이 결핍되면 나라 전체가 고통을 당할 수 있다. 훌륭한 정치가들이 쫓겨나면 그 후에는 행정의 책임이 연약한 자들의 어깨에 놓이게 된다. 그 결과로 나라가 쇠퇴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참조 2~5절).
2 재판관과 선지자: 2절과 3절은 나라의 대들보 역할을 하였던 여러 계층의 사람들을 열거한다. 그 어떤 나라도 그 같은 지도자들이 없이는 존속되는 것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유다에서 이 같은 사람들이 제거될 것이며, 나라가 쇠약해지고 붕괴되는 결과가 그 뒤를 따를 것이었다. 하나님은 당신이 일부러 그 나라에서 그 같은 사람들을 제거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다. 그분은 단지 인과(因果)의 법칙에 따라 이루어지는 일에 주목하도록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으실 뿐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그들이 원하는 사람들을 자신들의 지도자들로 삼도록 허락하셨으며, 이렇게 뽑힌 지도자들은 백성이 통치받기를 원하는 방식대로 그들을 통치하였다.
3 귀인: 또는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개정표준역(RSV)). 이 절에도 계속해서 군대의 관리들과 행정직에서 봉사하는 관료들 등과 같이 나라를 부강케 하고 번창시키는 데 꼭 필요한 사람들이면서도 유다에서 쫓겨나게 될 훌륭한 지도자들의 목록이 열거되어 있다. 바로 이런 유형의 사람들이 느부갓네살에 의해 바벨론으로 끌려갔다(참조 왕하 24:14; 렘 24:1; 단 1:3, 4).
4 아이들로 그들의 방백을 삼으시며: 아이들 수준의 두뇌를 가진 사람들이 나라의 내정을 이끌어가게 될 것이었다. 능력이 결핍된 사람들이 나라를 통치하도록 선택될 것이다. 능력 있는 지도자들이 절대적으로 부족할 것이며, 그 결과로 상황이 점점 더 악화되어 갈 것이다. “아이들” 곧 생각이 명확치 않고 행동에 사려분별이 없는 변덕스러운 사람들이 의사를 결정하고 나라의 운명을 좌지우지하게 될 것이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나라의 파멸이 신속하고도 확실하게 다가 올 것이다.
5 백성이 서로 학대하며: 지혜롭고 능력 있는 통치자들이 있는 나라들은 부정과 압제로 인해 고통당하지 않는다. 평등과 공명정대를 촉진시키고자 하는 국가 지도자들의 단호한 결단은 문명의 파괴를 가져오는 학대를 방지해 준다. 어떤 나라의 국민들이 자기의 이웃들에 의해서 지속적으로 학대를 당하게 되면 그들의 신뢰와 번영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부정과 속임, 폭력과 압제가 있는 곳에서는 나라가 내리막길을 걷게 되며, 또한 심판의 날이 분명히 이르러 오게 된다. 이것은 어느 세대를 막론하고 동일하게 해당되는 원칙이다. 이것은 이사야 시대에 유다에게 해당되었던 원칙이었으며, 또한 오늘날 우리의 시대에도 온전히 해당되는 원칙이다. 타락은 혼돈과 파멸로 나아가는 길을 예비한다.
아이가…할 것이며: 나이가 어리고 경험이 미약한 어린아이들이 노인들의 권고를 경멸하게 될 것이다. 십계명에 나와 있는 것처럼 동료 인간에 대한 사람의 첫째 의무는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다(출 20:12. 참조 레 19:32). 말세에 당할 고통들에 대한 예언들 중에는 “부모를 거역하”는 자녀들과 “자긍하며 교만”한 사람들과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는 자들이 포함되어 있다(딤후 3:1~4).
6 너는 의복이 오히려 있으니“ 사람들은 물질을 많이 소유한 것이 반드시 다스리는 능력의 훌륭함을 입증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무시하고 재물이 많은 사람들에게 지도자가 되어 주라고 제안할 것이다.
이 멸망을 네 수하에 두라: “이 멸망”이라는 말을 통해서 화자(話者)는 그 나라 전체가 마치 황폐해진 집처럼 되었음을 언급하고 있다. 이때는 이미 번영의 시기에서 멀리 벗어나 있는 시기이다.
7 나는 고치는 자가 되지 않겠노라: 이것은 “멸망”(6절)을 다스리는 자가 되어 달라고 권함받은 형제가 하는 답변이다. 그 호소는 거절되었고, “고치는 자”의 자리는 채워지지 못하였다. 다른 사람들의 상처를 고치는 일은 그 자신에게는 아무런 득도 없는 일이다. 만일 회복해야만 하는 어떤 일이 있다면 다른 사람으로 그 일을 하게 하라. 그 일을 할 만한 자질을 갖추었든 갖추지 못했든 관계없이 그는 지도자의 책임을 맡는 일을 거절할 것이다.
8 예루살렘이 멸망하였고: 산헤립이 침공한 때에(참조 제3권, 119, 120) 유다 왕국은 그 영토의 상당 부분이 이미 폐허가 되어 있었다. 히스기야 왕은 이전에 이 앗수르 왕으로부터 힘에 버거운 징세를 바치도록 강요당한 적이 있었다(참조 2:7 주석). 비록 산헤립이 예루살렘으로 입성하는 데는 실패하였지만 예루살렘을 제외한 영토의 나머지 지역들은 이미 그의 수중에 들어가 있었다.
그들의 언어와 행위가: 이사야는 여기에서 그 나라가 왜 수치를 당해야 했는지, 또한 왜 그 나라에 완전한 파멸이 이르러 올 수밖에 없는지 그 이유를 진술하고 있다. 이는 그 백성이 이미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에 그분이 더 이상 그들에게 복을 주실 수도, 또한 그들을 보호하실 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의 백성임을 공언하는 그들이 말과 행동 모두에서 그분에 대하여 반역을 범하고 있었다.
그 영광의 눈을 촉범하였음이라: 문자적으로는 “그의 영광의 눈앞에서 반역을 행하였음이라.” 이는 곧 “그가 임재하신 가운데서” 그 같은 일을 행한 것을 의미한다(참조 9절). 하나님은 오래 참고 인자하시며 범죄한 자들에게 심판을 행하시기 전에 오랜 기간 주저하는 분이시다. 하지만 비록 오랫동안 지체되긴 할지라도 심판의 날은 분명히 이르러 올 것이다.
9 그들의 안색: 문자적으로는 “얼굴들에 대한 그들의 관심.” 이는 곧 “그들의 편파성”을 의미한다(참조 행 10:34). 이 악인들은 옳고 그른 것을 상관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자기들이 좋아하는 대로 행할 뿐이다. 그들은 공의는 염두에도 두지 않고 그저 편리한 것만을 추구한다. 하나님이 보실 때 바로 그들 자신의 태도와 행위가 그들이 죄인들임을 입증하는 증거가 된다.
그 죄를 발표하고 숨기지 아니함이 소돔과 같으니: 소돔 사람들은 공공연히 범죄를 행하는 사람들이었다. 그 성읍은 그곳의 죄악으로 유명하였으며, 그 거민들은 자신들이 악한 사람들로 평판받는 것을 즐거워하였다. 그들은 바른 행동을 하는 것처럼 꾸며대는 일 따위는 전혀 하지 않고 오히려 세상 앞에서 공공연히 자랑삼아 뻔뻔스러운 죄악들을 행하였다. 이 같은 부류의 죄인들은 하나님께 공공연히 반역하는 자들로, 그들은 전혀 사실을 숨기고자 시도하지 않았다. 이 단계는 선을 행한 것처럼 꾸미는 것으로 악행을 덮고자 하는 시도는 더 이상 하지 않는 단계였다. 그들은 악행과 불법적 행위를 공공연하게 드러냈으며, 또한 잘못을 행하여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이스라엘의 성읍들이 마치 그 평지에 있던 방탕한 성읍들과도 같았다. 이제 파멸의 때가 무르익었다.
그들이 재앙을 자취하였도다: 죄는 스스로 멸망의 씨를 뿌린다. 죄인의 악행은 그의 영혼을 불사르고 그의 존재 자체를 파괴하는 죄악의 쓴잔이 되어 그에게로 돌아온다. 악을 행하는 자들은 누구든지 선의 보응이 아닌 악의 보응을 받는다.
10 너희는 의인에게 복이 있으리라 말하라: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심은 것을 수확한다. 의인들은 좋은 씨를 심기 때문에 그 씨가 자라서 그들에게 좋은 수확을 가져다준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심는 그대로 거두어들인다는 이 큰 교훈을 깨달아 알아야만 한다. 부모들이나 교사들이 범할 수 있는 잘못들 중에 젊은이들에게 그들이 악한 것을 심을지라도 선한 것을 거둘 수 있다는 생각을 갖도록 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은 없다. 냉혹한 운명이 죄인에게 이미 저주를 선포하였다. 그러므로 누구라도 시온에 있는 죄인에게 그의 미래가 밝을 것이라고 이야기하지 못하게 하라. 하나님이 이미 저주를 선포하셨기 때문에 그 같은 일이 일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직 죄를 버리고 바른 삶을 사는 사람만이 하늘의 복을 기대할 수 있다.
11 악인에게는 화가 있으리니: 이것은 하나님이 독단적으로 내리시는 판결이 아닌 본질적 사실에 대한 진술이다. 악을 심으면 악을 거두는 것보다 더 분명한 일은 이 세상에 없다. 사람들이 죄악을 심으면 그들 자신과 그들의 주변 세계가 분명히 슬픔과 고뇌를 수확하게 된다. 이스라엘은 그 죄악으로 인해 스스로를 파멸하고 있었다. 죄에서 돌이킬 수 있도록, 또한 그 결과로 나라가 구원받을 수 있도록, 이 사실을 모든 사람의 마음에 영원히 각인시킬 필요가 있었다. 의의 설교자는 그 누구보다도 더 위대한 애국자요 또한 더 훌륭한 시민이다. 이사야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러한 삶을 살았으며, 또한 그것이 어느 정도는 성공을 거두기도 하였다. 개혁이 일어나고 그로 인해 그 같은 개혁이 없었으면 신속히 그 땅을 삼켜버렸을 파멸에서 나라가 구원된 것은 주로 그의 설교의 결과로 일어난 일이었다.
보응을 받을 것임이니라: 근자에 발견된 사해 두루마리 1QIsa(참조 제1권, 32; 이사야 서론)에는 이 구절이 “(그에게로) 보응이 돌아올 것임이니라”로 되어 있다.
12 내 백성을 학대하는 자는 아이요: 때로는 이 말이 당시 유다 왕들의 나이를 일컫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사야의 시대에는 현저히 어린 나이에 그의 치세를 시작한 통치자가 없기 때문에 이러한 적용은 그 타당성을 찾기가 매우 힘들다. 요담은 25세(왕하 15:33), 아하스는 20세(왕하 16:2) 그리고 히스기야 또한 25세(왕하 18:2)에 각각 보좌에 올랐다. 아사랴(웃시야)는 왕이 될 때 16세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의 치세가 거의 끝나갈 무렵에 가서야 이사야가 그의 사역을 시작하였다(참조 사 6:1). 므낫세와 요시야는 각각 12세(왕하 21:1)와 8세(왕하 22:1) 때 왕위에 올랐다. 이사야 시대의 왕들이 실제로 어린아이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들이 임명한 관리들 또한 실제 어린아이들로 보기는 어렵다. 이 말이 의미하는 바는 당시의 통치자들이 그들의 사고방식과 능력에서 어린아이들과 같았다는 것이다. 왕궁에서도, 가정에서도, 또한 그밖에 어느 곳에서도, 경험 있는 지도자를 찾아볼 수 없었다. 물론 이 말은 특히 아하스에게 해당되는 말이었다. 그는 이사야가 부르심을 받은 후 몇 년이 지나서 보좌에 올랐으며, 후에 선한 왕인 히스기야에게 왕위를 계승한 왕이었다.
관할하는 자는 부녀라: 이 말 또한 그 나라가 지도력을 전혀 갖추지 못한 사람들에 의하여 통치되었음을 의미한다. “아이”와 “부녀”를 문자 그대로 이해해서는 안 되지만 그럴지라도 16~24절에 묘사되어 있는 오만하고 방종한 “시온의 딸들”이 나라의 지도자들을 통해서 간접적으로나마 분명히 국사(國事)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그 같은 여인들은 자기들의 남편들을 돕는 대신에 오히려 그들에게 장애가 되었으며, 자신들의 자녀들에게 의의 길을 가르치는 대신에 오히려 그들을 죄악의 길로 가도록 인도하였다.
너의 인도자: 지도자의 책임은 실로 매우 중요하다. 이는 그가 인도하는 대로 백성이 따라가기 때문이다. 지도자들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면 온 나라가 잘못된 길을 따라가게 된다. 이사야 시대의 지도자들은 국가 지도자나 종교 지도자를 막론하고 모두 자칭 하나님의 백성을 죄악과 파멸의 길로 인도하고 있었다. 오늘날의 세계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그리고 확실하게 죄악의 길로 인도하고 있는 악한 세력의 영향 아래 놓여 있다. 그 길의 종국은 영원한 파멸이다. 지구 역사에서 올바른 지도력이 오늘날보다 더 절실히 필요한 시기는 일찍이 없었다.
2026.6.9
'테마'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시온의 딸들이 교만하여 (3) | 2026.06.11 |
|---|---|
| 여호와께서 심판하시려 일어나시며 (0) | 2026.06.10 |
| 여호와의 한 날 (0) | 2026.06.08 |
| 주의 날에 있을 교만한 자의 심판 (0) | 2026.06.07 |
| 장차 올 왕국에 대한 약속 (1) | 2026.06.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