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6월7일[대선지서-이사야2장5-11절]
주의 날에 있을 교만한 자의 심판
장지원
5 야곱 족속아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빛에 행하자
6 주께서 주의 백성 야곱 족속을 버리셨음은 그들에게 동방 풍속이 가득하며 그들이 블레셋 사람 같이 술객이 되며 이방인으로 더불어 손을 잡아 언약하였음이라
7 그 땅에는 은금이 가득하고 보화가 무한하며 그 땅에는 마필이 가득하고 병거가 무수하며
8 그 땅에는 우상도 가득하므로 그들이 자기 손으로 짓고 자기 손가락으로 만든 것을 공경하여
9 천한 자도 절하며 귀한 자도 굴복하오니 그들을 용서하지 마옵소서
10 너희는 바위 틈에 들어가며 진토에 숨어 여호와의 위엄과 그 광대하심의 영광을 피하라
11 그 날에 눈이 높은 자가 낮아지며 교만한 자가 굴복되고 여호와께서 홀로 높임을 받으시리라
<주> 5 야곱 족속: 이사야 선지자가 이 기별을 기록할 당시에는 북방 왕국의 열 지파가 아직은 사로잡혀 가지 않은 상태에 있었다. 비록 이사야의 기별이 주로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을 향한 것이긴 하지만(참조 1:1 주석),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빛에 행하”라는 그의 호소는 여기에서 열두 지파 전체에게로 대상이 확대된다. 북방 왕국의 배도가 거의 무르익은 때였는데도 하나님의 자비는 여전히 이스라엘에게 구원의 날이 지나가기 전에 하나님께 돌아올 것을 호소하였다.
우리가 여호와의 빛에 행하자: 1~4절에 묘사되어 있는 이스라엘을 위해 예비된 영광스런 미래가 선지자를 고취시켜 “여호와의 빛에 행하”라고 하는 고무적인 호소를 하게 하였다. 하나님이 그를 사랑하고 섬기는 사람들을 위해 예비해 두신 것에 대한 이상을 본 사람은 통상적인 성취로는 더 이상 만족을 느끼지 못한다.
하나님의 자비의 초청을 받아들였다고 하는 사람의 고백은 그가 자기에게 주어진 의무에 충실한 때에만 진실성이 뒷받침된다. 실로 순종의 행위가 따르지 않는 믿음의 고백은 “죽은” 것이다(약 2:26). 성경은 여호와의 말씀을 듣긴 하지만 그 말씀을 행하는 데에는 게으른 사람을 움직이는 모래 위에 자기의 집을 짓는 사람에 비유하고 있다(마 7:26, 27).
여호와의 빛: 즉 하나님이 당신의 종 선지자들을 통하여 보내신 은혜로운 진리의 빛. 이사야의 시대에는 이 빛이 약속된 메시야를 통해서 나타나게 될 구원의 빛이었다. 메시야가 이 땅에 오셨을 때 그는 스스로를 “세상의 빛”이라 칭하셨다(참조 요 8:12 주석). 그는 “참빛” 곧 “사람들의 빛”이셨다(요 1:9, 4). 빛이 그들 중에 있을 동안에 그 빛에 행하라고 하신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향한 우리 주님의 진지한 호소와 비교해 보라(요 12:25, 26. 참조 요 1:9~12).
6 주께서 주의 백성 야곱 족속을 버리셨음은: 그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위해 예비하신 영광스런 미래를 깨닫기는커녕 오리려 사실상 배도를 한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에 빠져 있었다. 그들은 이제 더 이상 여호와께 참되고 신실하고 순종적인 백성이 아닌 자신들이 범한 큰 죄악으로 인해 내쳐지고 버려진 사람들이다. 그들이 이미 하나님께로부터 돌아섰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이제는 그들과 함께하시지도, 그들을 위하시지도 않고 오히려 그들을 대적하신다. 바로 이것이 이사야가 방금 전에 말한 영광스런 미래와는 현저하게 대조적인 그들의 엄연한 현실적 상황이었다. 6~9절이 현재 이스라엘의 실제 상황을 설명하고 있는 데 반하여 10~22절은 “여호와의 날”(12절)에 경험하게 될 피할 수 없는 결과를 묘사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배도하였기 때문에 그날은 세상의 나머지 모든 사람들에게와 마찬가지로 “야곱 족속”에게도 흑암과 공포의 날이 될 것이다.
동방 풍속이 가득하며: 팔레스타인의 동편에는 술객과 점쟁이와 술사가 많기로 이름 나 있던 바벨론이 있었다(단 2:2, 27; 4:7; 5:7, 11).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서 당신의 은총을 거두신 것은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동방의 거짓 종교들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블레셋 사람같이: 팔레스타인의 거민들은 “길흉을 말하는 자나 복술자의 말을” 들으며 많은 가증한 일들을 행한 것으로 인해 이스라엘 앞에서 쫓겨남을 당하였다(신 18:10~14). 바벨론처럼 블레셋에도 초자연적인 일들을 행하는 사제들과 점쟁이들이 있었다(삼상 6:2). 또한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라 공언하는 자들까지도 그들의 본을 따르고 있었다. 그들은 빛을 구하기 위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대신에 흑암의 왕과 결탁되어 있던 지도자들에게로 나아갔다.
손을 잡아 언약하였음이라: (제임스왕역(KJV)에는 “그들이 만족하였음이라”-역자 주). 이렇게 번역된 히브리어가 어떤 단어인지 명확하지 않다. 어떤 사람들은 이 단어를 “그들이…와 손을 잡았음이라”로 번역하기도 한다. 이 두 번역에는 모두 이스라엘이 이방인들과 “손을 잡”음으로 그들과 협력 관계를 맺게 되었다고 하는 동일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이방인들과 “손을 잡”았다는 것은 곧 그들과 협정을 맺고 협력 관계를 시작하였음을 의미한다. 이스라엘은 이제 더 이상 구별된 특별 백성이 아니었다. 그들은 정치, 무역, 종교 및 죄악에서 주변 세계와 하나가 되어 있었다. 고후 6:14과 비교해 보라.
7 은금: 유다는 이제 물질적 이윤 추구를 자신들의 최상의 관심사로 여기는 상업적인 백성이 되어 있었다. 그들은 금과 은에는 부유하였지만 의와 믿음에는 가난하였다. 웃시야의 긴 치세는 유다가 크게 번성한 시대였다. 그는 블레셋 사람들과 아라비아 사람들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또한 암몬 사람들로부터는 공물을 거둬드렸다(대하 26:7, 8). 이 같은 번영이 사치와 도덕적 타락의 결과를 가져왔다. 산헤립이 히스기야에게 받았다고 주장하는 공물의 양을 통해서 이사야의 시대에 유다의 부유함이 어느 정도나 되었는지를 대강 짐작할 수 있다. 그 공물에는 금 30달란트(약 2.25톤. 미터법으로는 약 2톤. 참조 제2권, 108)와 은 800달란트(약 30톤. 미터법으로는 약 27톤), 그리고 보석들과 다른 여러 종류의 보물이 포함되어 있었다.
마필. 여호와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말을 많이 두지 말”라고 명령하셨다(신 17:16). 그는 또한 사무엘을 통하여 왕을 임명하는 일은 그에게 말들과 병거들을 제공해야만 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라고 지적하셨다(삼상 8:11, 12). 솔로몬은 많은 말과 병거를 가지고 있었다(왕상 10:25~29). 웃시야도 이 문제에서 솔로몬의 선례를 따랐음이 분명하다. 구약 시대에는 말이 주로 전쟁을 수행하는 데 사용되었다. 말과 병거의 수효를 늘리는 일은 사람들로 그들의 눈을 하나님을 신뢰하는 데서 물질을 신뢰하는 데로 돌리게 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었다. 미 5:10, 12, 13은 여호와가 복수의 날에 우상들과 복술들과 점쟁이들과 함께 말들과 병거들도 훼파하실 것이라고 선언하다.
8 우상도 가득하므로: 아하스의 치세는 왕과 백성이 모두 참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숭배의 길로 나아간 도덕적으로 엄청나게 타락한 시기였다. 바알의 형상들이 만들어졌고(참조 제1권, 154, 155), 이방신들에게 사람을 희생제물로 드렸으며, 예루살렘 이곳저곳에 제단들이 세워졌다. 또한 전 국토에 걸쳐서 우상에게 분향하기 위한 목적으로 수없이 많은 산당이 봉헌되었으며, 솔로몬의 놋 제단이 세워져 있던 성전 뜰의 바로 그곳에는 이방 신을 위한 제단이 세워졌다(대하 28:2~4, 23~25; 왕하 16:10~14).
9 천한 자도…귀한 자도 굴복하오니: “천한”이라는 단어와 “귀한”이라는 단어는 번역자들이 “사람”이라는 의미의 히브리어 아담 (’adam)과 여자와 구별되는 “남자”라는 의미의 히브리어 이쉬(’is∨) 사이의 구분을 나타내기 위한 목적으로 첨가한 것이다. 여기서 아담은 인간을 의미하고 이쉬는 여자와 반대되는 의미로서의 남자를 의미한다. 시 49:2의 히브리어 원문을 통해서 분명히 알 수 있듯이 단순히 아담 곧 인간이 되는 것보다는 이쉬 곧 남자가 되는 것이 더 영예로운 일로 여겨졌다. 여기서의 의미는 사람들이 여호와 앞에서 굴복당하고 쇠퇴하게 된다는 것이다. 지금은 마음속에 자존심과 거만함이 가득하기 때문에 그들이 자신들을 하나님께 굴복시키지 않는다. 하지만 주가 오시는 그때에는 자신들을 굴복시킬 수밖에 없을 것이다(참조 사 2:10~12).
그들을 용서하지 마옵소서: “여호와의 한 날”(12절)이 이르러 오면 죄인들을 위한 은혜의 시기가 영원히 지나가 버리게 될 것이기 때문에 이제는 더 이상 그들에게 회개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참조 호 13:14; 히 9:28). 하나님께서 그들을 용서하실 수 없는데, 이는 그들이 용서받기를 원치 않기 때문이다.
10 바위틈에 들어가며: 팔레스타인에는 위험이 닥칠 때 피하여 숨을 수 있는 천연적 은신처인 틈새와 동굴들이 많이 있었다(참조 삿 6:2; 15:8; 삼상 13:6; 14:11; 24:3; 왕상 18:4). 여호와의 큰 날에 사람들은 공포에 휩싸인 채 이 땅에 내릴 재앙들을 피할 수 있는 곳을 찾아서 어디든 숨을 만한 곳이 있으면 그리로 도망할 것이다(참조 계 6:15). 사해 두루마리 1QIsa에는 사 2:9의 마지막 구절과 10절 전체가 빠져 있다.
11 그날: “그날”은 “여호와의 한 날”(12절) 곧 예수께서 그의 백성은 구속하시고 악인들은 멸하시면서 이 땅의 통치자로 다시 오시는 날이다(13:9; 34:8).
눈이 높은 자: 사람들이 하나님께 대항하였으며, 또한 자신들의 의견을 하나님의 명령보다 더 높였다. 하지만 마지막 큰 심판의 날에는 지상에 있는 교만과 오만이 가득한 이 사람들이 하늘의 여호와 앞에서 낮아지게 될 것이다(참조 3:11).
여호와께서 홀로: 시 46:10과 비교해 보라. 하나님이 그 권능과 영광으로 임하실 때 모든 육체는 그의 앞에서 풀과 같은 존재가 될 것이다. 그때에는 이 지구뿐이 아닌 온 우주의 창조주요 유지자로서 그의 크고 위엄 있는 모습이 있는 그대로 다 드러날 것이다. 그는 높임을 받아 모든 백성의 심판자요 온 우주의 통치자로서 그의 영광의 보좌에 앉으신다.
202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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