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6월1일[대선지서-이사야1장1-9절]
유다의 배은망덕
장지원
1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하여 본 이상이라
2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3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4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5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더욱 더욱 패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6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어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유하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7 너희 땅은 황무하였고 너희 성읍들은 불에 탔고 너희 토지는 너희 목전에 이방인에게 삼키웠으며 이방인에게 파괴됨 같이 황무하였고
8 딸 시온은 포도원의 망대 같이, 원두밭의 상직막 같이, 에워싸인 성읍 같이 겨우 남았도다
9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었으리로다
<주> 1.이사야 서론
(1) 표제.
히브리어 필사본들과 70인역에서 이사야서의 표제는 “이사야”이다. 눅 4:17에서는 이 책을 “선지자 이사야의 글”이라 불렀고, 행 8:30에도 “선지자 이사야”로 되어 있다.
(2) 저자.
선지자 이사야가 자신의 이름으로 명명된 이 책의 저자였다. 아모스의 아들이며 왕족의 후손인 그는 젊은 시절(교회증언, V, 749), 즉 웃시야(아사랴, BC 790~739년)의 통치 말엽, 요담의 섭정 기간 중에 선지자로 부름받았다(선지자와 왕, 305). 그 시기는 BC 750년과 739년 사이가 된다. 그의 봉사 기간은 웃시야, 요담, 아하스 그리고 히스기야의 통치 기간에 걸친(사 1:1; 이 왕들의 통치 연대에 대해서는 제3권, 107을 참조하라) 적어도 60년간 계속되었다(선지자와 왕, 310). 이사야가 BC 686년에 단독 통치를 시작한 므낫세에 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과 므낫세가 하나님께 끝까지 충성한 사람들을 학살할 때 이사야가 “먼저 학살당한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선지자와 왕, 382; 왕하 21:16)은 그의 봉사가 BC 686년 히스기야의 사망 직후에 끝났음을 암시한다.
(3) 역사적 배경.
이사야서의 연대는 명확하게 밝혀져 있으며, 그 책이 나온 시대는 근동 역사에 잘 알려져 있다. 이사야는 제6장에 기록된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이상이 주어지기 전에 그의 선지자직에 부르심을 받았으며, 그의 봉사는 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의 통치 시대에 수행되었다(사 1:1). 본 주석에 사용된 잠정적 연대표(참조 제3권, 107, 117, 118)에 따르면, 웃시야는 BC 739년경에 죽었고 히스기야는 BC 686년에 죽어 그의 아들 므낫세가 왕위를 계승하였다. 이 기간 동안의 앗수르 왕들은 다음과 같다: 디글랏 빌레셀 I세(745~727년), 살만에셀 V세(727~722년), 사르곤 II세(722~705년), 산헤립(705~681년), 에살핫돈(681~669년). 이 왕들은 앗수르에서 나온 가장 강력한 통치자들이었다. 그리하여 이사야는 앗수르가 곧 동방 세계의 완전한 패권을 잡을 듯이 보이는 앗수르의 전성기 동안에 그의 사업을 수행하였다.
(4) 주제.
이사야는 격동의 시대에 살았다. 그때는 유다와 이스라엘 모두에게 위태로운 난국의 시대였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죄악의 길로 깊이 타락하였다. 유다의 아사랴(웃시야)와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II세 치하에서 두 나라는 강대하게 성장하고 번영하였다. 그러나 물질적인 번영은 영적인 쇠퇴를 가져왔다. 마침내 온 땅이 그 죄악으로 인하여 철저히 황폐하게 될 것이었다.
임박한 멸망에도 불구하고 이사야는 주께 충성하므로 구원받을 한 남은무리에 관해 계속해서 언급하였다. 이 남은무리를 제외하고, 주의 백성이라고 공언하는 자들은 소돔과 고모라와 같이 철저하게 소멸될 것이었다. 그러나 그 남은 자들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를 신뢰하며 그의 법도 안에서 행하는 것을 배울 것이었다.
이사야는 책의 후반부인 40~66장에서, 이스라엘과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관하여 성경 전체에 걸쳐서 가장 두드러진 소묘들 중의 하나를 제시하고 있다. 여기에는 고난당하는 구주로서의 그리스도에 관한 가장 사실적(寫實的)인 영감의 묘사가 나와 있다(사 53장). 하나님의 무한하신 위대함과 선하심을 성경에서 가장 잘 드러내는 묘사가 여기에 있다.
이사야는 메시야적 선지자로 불리는 것이 마땅하다. 다른 어떠한 선지자도 하나님의 거룩함과 위대하심에 대하여, 그리스도의 인성과 사명에 관하여, 그의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목적에 관하여 그처럼 명백한 표현을 지니지 못한 것 같다. 이사야가 이스라엘의 유명한 선지자들 중 왕으로서 그리고 그의 저술이 모든 선지자의 기록들 가운데 걸작으로 여겨지는 것은 당연하다.
1 시대에: 이 주석에서 사용된 연대기에 따르면 웃시야는 BC 740/739년에 죽었으며, 히스기야는 BC 687/686년에 죽었다(참조 이사야 서론).
아모스(Amoz)의 아들: 이 이름은 성경 전체에서 오직 이곳에만 나온다. 이사야의 아버지에 관해서 더 이상은 알려진 것이 없다. 아모스(Amoz)라는 이름과 아모스(Amos)라는 이름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히브리어로는 이 둘은 분명하게 구별된다.
이사야가…본 이상이라: 이사야는 이 책 전체에 대하여 “이사야의 이상”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여기에서 “이상”은 계시가 전해지는 과정보다는 계시 자체를 의미한다. 초기 시대에는 선지자가 “선견자”로 불렸지만(삼상 9:9) 결국 그 용어는 폐기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지자들이 자신들의 영감 받은 통찰력으로 보통 사람들에게는 드러나지 않은 어떤 것들을 볼 수 있다는 의미에서 그들은 여전히 선견자들이었다. 이상 중에서 선지자의 눈은 이 세계와 영의 세계를 갈라놓고 있는 휘장을 꿰뚫고 나가 여호와가 그에게 드러내기에 합당하다고 여기시는 것들을 보게 된다. 여호와께서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의 중요성, 다가올 일들의 양상, 개인들이나 국가에 대한 하나님의 뜻 등을 보여 주실 수 있다. 종종 경고와 권면과 지시가 주어지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이 이사야의 “이상” 중에서 발견된다. “오바댜의 묵시”(옵 1절)와 “나훔의 묵시의 글”(나 1:1)에서 여호와께서는 그 선지자들에게 에돔과 니느웨에 대한 자신의 뜻을 보여 주셨다. 이사야의 이상들은 주로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한 것들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주변 나라들과 또한 온 세상까지도 다루고 있다. “이사야의 이상”에서 하나님이 사물들을 바라보시는 것처럼 그것들을 바라보며, 또한 하나님이 그것들을 그의 선지자를 통해서 우리에게 드러나도록 작정하셨음을 깨닫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큰 특권이다.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하여: 참조 2:1; 3:1; 4:3; 5:3; 52:1; 62:1; 65:9, 19. 이사야의 기별은 본래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의 유익을 위하여 그들에게 주어진 기별이다. 아마도 상당수의 기별이 설교 형태로 직접 그 사람들에게 선포되었을 것이다.
2 하늘이여 들으라: 참조 신 32:1 주석; 미 6:1. 이사야의 첫 번째 강론은 하나님의 백성이라 공언하는 사람들을 고발하는 일과 더불어 시작된다. 한 민족으로서 그들에게 주어진 그 미증유의 기회들을 전혀 고맙게 여기지도 않고, 또한 그 기회들을 통해서 그 어떤 덕도 입지 못한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운 일이다. 말하자면 이사야는 하늘의 거민들에게 이 이상한 광경의 증인이 되어 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자신들이 범하고 있는 죄악에 대하여 마음이 무뎌진 백성의 상태를 묘사하기 위한 문장 구조로, 요엘이 사용한 문장과 유사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욜 1:2, 3).
다른 세계의 거민들은 하나님의 율법에 관해서 익히 알고 있으며, 또한 이 세상의 거민들이 하늘에 대항하여 반역을 일으킨 것도 알고 있다. 그들은 구원의 계획을 이해하고 있으며, 또한 하나님의 선민으로서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기회들에 관해서도 알고 있다.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그토록 큰일을 많이 행하셨는데도 당신을 너무나도 쉽게 잘 잊어버리는 그들의 놀라운 상태에 대하여 증인이 되어 달라고 요구하시는 것이다. 이 반역한 하나님의 백성은 우주 앞에서 유죄 선고를 받은 상태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 반역자들을 대적하여 지금 막 하시고자 하는 일은 정당한 것이다.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하나님과 그의 백성과의 관계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였다. 아버지가 그의 자녀에게 해 줄 수 있는 모든 일을 하나님이 그의 백성에게 해 주셨다. 하나님이 아버지의 사랑으로 그의 백성을 돌보셨으므로 그들은 아들로서의 특권뿐 아니라 그 의무까지도 받아들여야만 하였다.
거역하였도다: 그들은 하늘에 계신 그들의 아버지의 권위를 부인하고 그가 그들에게 하시는 요구들을 무시하였다.
3 소: 가축들도 그들에게 여물을 주는 자가 누구인지 안다. 생각 없는 짐승들까지도 자신들이 음식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이 어디인지를 알기 때문에 자신들에게 음식을 공급해 주는 사람에게 일종의 애정을 품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에게서는 그런 것을 찾아볼 수 없다! 그들은 배은망덕의 어리석음, 곧 그들의 하늘 아버지의 애정 어린 돌보심을 쉽게 잊어버리고 그것에 대하여 전혀 감사하지 않는 죄를 범하였다. 그들은 말 못하는 짐승들이 지니고 있는 이해력조차 나타내지 못하였다.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여기에서 “이스라엘”이라는 용어는 엄밀히 말해서 유다를 지칭한다. 이는 그들이 야곱의 자손으로서 그 민족의 조상들에게 주어진 약속들을 상속받은 자들이라는 의미로 쓰인 말이다(참조 1, 8절 주석).
4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하나님이 “여호와의 성민”(신 14:2)이 되도록 선택하신 바로 그 사람들이 범죄한 나라가 되었다. 자신들에게 부어 주신 복들에 대하여 감사치 않은 것이 그들이 사악한 상태에 빠지게 된 원인이었다(신 8:10~20; 호 2:8, 9; 롬 1:21, 22). 그들은 자신들이 즐기고 있는 좋은 것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잊어버리고 공공연한 배도와 극악한 불순종의 행위들을 자행하였다. 소극적인 태만이 적극적인 반역의 길을 열어 주었다.
행악의 종자요: 참조 5:4 주석. “거룩한 씨”(6:13)가 되어야 할 자들이 무가치한 열매를 맺는 악한 식물이 되어 버렸다.
여호와를 버리며: 즉 다른 주인 곧 악의 왕을 선택함으로(참조 요 8:44 주석).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 이사야가 매우 좋아하는 표현. 구약의 다른 모든 기자가 이 표현을 사용한 것이 여섯 번밖에 안 되는 반면, 이사야는 혼자서 이 표현을 스물다섯 번이나 사용하였다. 이사야가 이상 중에서 자기의 보좌에 앉아 계신 하나님을 처음 보았을 때, 그는 또한 천사들이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6:3)라고 노래하는 소리도 들었다. 하나님의 거룩한 품성이 이 선지자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그는 하나님은 무엇보다도 거룩하신 존재임을 깨닫고 자신도 그와 같이 되기를 열망하였다. 그 이후로 이사야가 자신의 생애의 최대 과업으로 삼은 것은 이스라엘 앞에서 하나님의 거룩하신 모습을 보존하는 것과 죄를 멀리하고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만홀히 여겨: 하나님의 사랑은 “성내지 아니하”는 사랑이다(고전 13:5. 참조 겔 18:23, 32, 32; 벧후 3:9). 하지만 이스라엘이 너무나도 심하게 이를 거절하고 또한 그의 교훈들을 무시하였기 때문에 이제는 그가 자신의 품성을 스스로 부정하고 그들의 죄된 행위들을 확인하실 수밖에 없으셨다.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그들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와 그와 동행하는 대신에 오히려 그를 멀리 떠났다. 더 나아가서, 그들은 거룩한 길로부터 방향을 돌려 버렸다. 이사야와 동시대의 인물인 호세아는 슬픈 어조로 “이스라엘은 완강한 암소처럼 완강하니”(호 4:16)라고 말하였다.
5 어찌하여: 혹은 “어디에?” 비록 형벌이 필요할지라도 그 몸이 이미 찢어진 상처와 멍으로 뒤덮여 있기 때문에 아버지가 더 이상의 벌을 내리는 것을 주저하신다. 자비로운 아버지는 이전에 맞은 매로 인해 상처가 나 있는 아들의 몸을 다시 치기를 원치 않으신다.
매를 더 맞으려고: 하나님의 백성이라 공언하는 자들이 범죄로 인하여 화를 자초하였다. 죄악에 깊이 빠지면 빠질수록 그들은 더욱더 큰 화를 입게 될 것이었다(참조 5:18). 이사야는 이 문제를 그들과 논의하기 위해 이야기하고자 애쓰면서 그들에게 왜 그토록 어리석은 짓을 하는지 따져 물었다. 여기에 묘사된 것은 자신이 행한 나쁜 짓들로 인해 매를 맞고 또 맞아서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된 고집 세고 반역적인 아들의 모습이다.
더욱 더욱 패역하느냐: “네가 계속해서 반역하느냐”가 더 나은 번역이다. 이 말은 반역에 대한 예언이 아니다. 이사야가 여기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은 그들이 악을 고집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교화를 위한 형벌로 계속하여 그들을 매로 때리셨으며 이로 인해 그들이 고통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6 성한 곳이 없이: 몸 전체가 고통을 받고 있다. 유다와 예루살렘의 어느 곳을 바라보든지 이사야는 거기에서 죄악의 결과들을 볼 수 있었다.
새로 맞은 흔적: 즉 아직까지 아물지 않은, 피가 나고 곪아터진 상처. 죄는 사람의 힘으로는 결코 치료할 수 없는 역겨운 존재이다. 달리 말해서 죄는 아물지는 않고 곪아터지기만 하는 수많은 상처를 만들어내는데, 이 상처들은 붕대로 감을 수도 없고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연고”로 흔히 사용하던 감람유로도 치료할 수 없는 것들이다. 이스라엘은 내적으로 병들었을 뿐 아니라 외적으로도 오랫동안 이어져온 폐해의 두려운 결과들을 드러내고 있다. 그 나라는 지금 위험하고 무질서한 상태에 빠져 있다. 이 환자는 이러한 역겨운 상태 속에서 지금 죽음에 직면해 있다.
7 너희 땅은 황무하였고: 선지자는 이제 그 땅에 대한 상징적 묘사(2~6절)에서 실제적인 묘사로 자신의 말을 바꾼다. 이 묘사는 앗수르 침공 시의 유다의 상황을 적절히 보여 준다. 앗수르 사람들은 자신들의 포학하고 잔인한 특성을 그대로 드러낸 채 방화와 약탈과 살육을 일삼으며 온 나라를 휩쓸었다. 많은 견고한 성읍이 함락되고, 작은 마을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정복당하였으며, 국토의 상당 부분이 황폐한 땅으로 변하였다. 머지않아 종말이 이를 것 처럼 보였다.
황무하였고: 쿰란에서 발견된 두루마리 중 하나인 사해 두루마리 1QIsa(참조 제1권, 32; 이사야 서론)에는 이 부분이 “그 황폐함이 그것을 덮었고”로 되어 있다.
8 딸 시온: 즉 예루살렘(참조 애 2:8, 10, 13, 18; 미 4:8, 10, 13). 시온은 본래 고대 여부스 사람들의 요새였다가 다윗성이 된 곳의 지명이었으나(삼하 5:7; 왕상 8:1; 참조 시 48:2 주석), 후에는 이 이름이 성읍 전체를 일컫는 말로 사용되었다. 시적 표현에서 성읍들은 그 거민들과 더불어서 종종 여성으로 일컬어진다(사 47:1; 시 45:12; 애 2:15).
망대: 즉 수확기에 포도원지기나 그의 가족들이 거하는 오두막. 물론 이 같은 데서 사는 사람들은 지역 사회의 다른 사람들에게서 따로 떨어져서 무방비 상태로 지내게 된다. 이 문제의 시기에 예루살렘의 모습이 바로 이와 같았다.
상직막: 동방에는 오이와 그와 유사한 식물들이 흔했다. 종종 들에 오두막을 세우고 관리인이 도둑들로부터 농작물들을 지키기 위해 여름 동안 그곳에서 지냈다.
에워싸인 성읍: 산헤립이 침공했을 때 예루살렘은 문자 그대로 앗수르 군대에 의해 에워싸였다. 유다의 다른 모든 땅들은 적의 손에 함락되고 오직 그 성읍만 홀로 남아 있었다.
9 만군의 여호와: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에 관한 이사야의 이상 중에서 천사들이 하나님께 대하여 사용한 칭호이다(6:3). 이 칭호는 하나님을 하늘 군대의 사령관으로 나타낸다.
조금: (제임스왕역(KJV)에는 “적은 수의 남은 자”-역자 주). 예루살렘을 제외한 유다의 모든 땅이 원수의 손에 함락되었다. 오직 수도만이 극도로 불안전하고 위태로워 보이는 상태로 남아 있었다. 만일 이 “적은 수의 남은 자”가 없었다면 유다 나라는 분명히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운명을 맞이했을 것이다.
2026.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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